천국에 사는 사람들은 지옥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래도 좋은 점이 있는데, 뭔지 아니?
나는 고개를 젓는다.
여긴 땅보다 높잖아. 땅 사람들보다 더 빨리 천국에 도착할 수 있어. (『구름 사람들』, 121쪽)
1. 천국에 사는 사람들은 지옥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
이유리의 첫 장편소설 『구름 사람들』은 '구름-땅', '불행-행복', '빈-부'와 같은 명확한 이분법으로 전개됩니다. 소설에선 분홍빛 구름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나오는데요. 구름에서 삶을 살아간다니! 푹신하고 따뜻한 삶이 그려지지만… 그들은 온갖 멸시와 빈곤 속에서 살아갑니다. 심지어 그들 삶의 터전인 구름은 아직 연구조차 되지 않은 다양한 유해 물질로 구성돼 있습니다. 멀리서 봤을 땐 '아름다운 분홍빛 구름'처럼 보이지만, 그들에게 구름은 불행과 가난으로 이루어져 둥둥 떠다니는 불쾌한 덩어리일 뿐입니다. 심지어 땅 사람들은 그들을 눈엣가시 정도로 여겨 '인공 강우제'로 분홍빛 구름 자체를 없애려고 합니다.
다음달쯤, 시에서 드디어 인공 강우제를 뿌릴 거라는 소문이 돈다.
구름 사람들은 아무도 겁먹지 않는다.
인공 강우제가 뿌려지면 어떻게 될지 몰라서가 아니다. 반대로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구름이 녹아내려 비가 되겠지. 우리는 분홍색 빗방울과 함께 1.5킬로미터 아래로 떨어질 것이다. 모든 게 착착 뭉개지고 깨져 곤죽이 된다. (9쪽)
책을 읽으며 문득 조세희 작가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떠올랐는데요. 한국 현대문학의 대표적 고전으로 유명한 이 소설은 1978년에 초판이 출간된 책으로, 70년대 도시 재개발로 인해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서민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70년대의 이야기를 담았으니 현재 우리가 직면한 문제와는 동떨어진 것처럼 느껴지지만… 이상한 점은 40년이 훌쩍 지난 지금, 우리에게 『난쏘공』은 너무나 잘 읽힙니다. 조세희 작가는 『난쏘공』이 읽히지 않는 사회가 왔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만, 이유리 작가의 『구름 사람들』을 읽고 제가 중학생 때 읽었던 『난쏘공』이 다시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아버지를 난장이라고 불렀다. 사람들은 옳게 보았다. 불행하게도 사람들은 아버지를 보는 것 하나만 옳았다. 그 밖의 것들은 하나도 옳지 않았다. 나는 아버지, 어머니, 영호, 영희 그리고 나를 포함한 다섯 식구의 모든 것을 걸고 그들이 옳지 않다는 것을 언제나 말할 수 있다.
(…)
천국에 사는 사람들은 지옥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우리 다섯 식구는 지옥에 살면서 천국을 생각했다. 단 하루도 천국을 생각해 보지 않은 날이 없다. 하루하루의 생활이 지겨웠기 때문이다. 우리의 생활은 전쟁과 같았다. 우리는 그 전쟁에서 날마다 지기만 했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93쪽)
보통 '하늘'은 '천국'처럼 긍정적인 의미를 가지는 경우가 참 많은데요, 『구름 사람들』에서 오히려 하늘을 사회적 약자의 공간으로 그려놓은 게 신선했습니다. 천국에 사는 사람들이 지옥을 생각하지 않듯, 『구름 사람들』에서 땅 사람들은 구름 사람들이 어떻게 살든 말든 신경조차 쓰지 않습니다. 다만 구름 사람들은 끊임없이 땅 사람들의 삶을 부러워하고 질투하는데요. 소설에선 주인공, '오하늘'의 시선으로 땅 사람들의 윤택한 삶이 묘사됩니다.
유치원에 보냈대. 유치원!
유치원이요? 개를요?
그래! 개를! 유치원에!
개들이 다니는 유치원도 있어요?
그렇단다. 거기서 뭘 하느냐니까 간식도 먹이고 낮잠도 재우고 산책도 시켜준대. 친구들도 만나고. 친구들! 개 친구들! (24~25쪽)
손님들이 얼마나 많은 음식을 남기는지 알면 구름 사람들은 소스라치게 놀랄 것이다. 밑반찬은 물론, 심지어 가끔 고기를 남기고 그냥 가기도 한다. 처음에 나는 앞치마 주머니에 비닐봉지를 끼운 채로 그 모든 것들을 챙겨 담았다. 어느 날 그걸 본 사장이 봉지를 가로채 모두가 보는 앞에서 쓰레기통에 처넣고는, 나를 가게 뒤로 끌고 가 누구 장사 망하게 할 일 있냐면서 윽박질렀다. (29~29쪽)
이윽고 커다란 노트북이 테이블 위에 펼쳐진다.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김연수가 콘센트에 노트북 전원코드를 꽂는 것을 지켜본다. 나와 동갑인데 저런 걸 가지고 있다니. 굉장한 부자구나. 아니면 어디서 빌려온 걸까. (214쪽)
이야기가 진행되는 내내 오하늘에겐 가난이 엎치고, 여러 불행이 덮칩니다. 그녀의 엄마는 도망가고, 아빠는 경찰에 붙잡히며, 동생은 인터넷 방송을 따라 하며 유독한 구름을 먹는 방송을 진행하다 결국 죽게 됩니다. 믿었던 사람에게 받은 것이 결국 기만일 뿐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기도 합니다.
이러한 오하늘의 삶을 두고, 작가 이유리는 이렇게 말합니다.
소중한 사람을 모두 잃은 오하늘은 끝내 행복해지지 못한다. 이대로 소설을 끝내버리는 게, 오하늘이 사는 세상을 이 모습으로 완결 지어 영영 닫아버리는 게 미안하고 두려웠다. 그래서 에필로그를 썼는데 그 안에서조차 하늘은 그다지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아니, 그가 행복해지길 원하는지조차 나는 알 수가 없다.
미안해.
마음속 세계에 대고 그렇게 말하면 하늘은 표정 없는 얼굴로 나를 돌아본다. (작가의 말, 349~350쪽)
조세희 작가의 『난쏘공』부터 이유리 작가의 『구름 사람들』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지만 결국 우리네 삶이 맞닥뜨리는 문제는 변함이 없습니다. 개인이 결코 극복할 수 없는 거대한 가난에 맞서 싸우는 이야기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언제나 지어지는군요.
2. 명대사
사람은 왜 좌절했을 때 미소 지을까. 그런다고 기분이 나아지는 것도 아니면서. (81쪽)
그래, 뺏긴 걸 되찾는 데는 깨무는 게 최고지. 이빨은 그러라고 있는 거다. 밥 처먹을 때만 쓰는 게 아니다. (88쪽)
불쌍한 사람과 무서운 사람 중 어느 쪽이 되고 싶은지는 자명하다. 그래서 우리는 택시에 탄 이래로 줄곧 미간에 주름을 잡은 채 한마디라도 꺼내면 죽여버리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101쪽)
나는 그저 웃어 보인다. 깊은 위로를 받은 사람처럼 보이려고 애쓰면서. 시간이 지나면 나아진다는 건 나도 경험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나아질 뿐이지 아예 사라지지는 않는다. 흐릿하다가도 순간순간 되살아나 생생해지는 고통. 고통들. 나는 그것에 대해 묻고 싶었다. 김노을도 그런지. 당신의 상실도 내 상실과 같은지. 하지만 더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32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