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빌라』 - 백수린 / 담담하고, 단단하게

시간이 갈수록 할머니 안의 고독은 눈처럼 소리 없이 쌓였다.

by 조창
image.png 『여름의 빌라』, 2020년 7월



시간이 갈수록 할머니 안의 고독은 눈처럼 소리 없이 쌓였다. (「흑설탕 캔디」, 183쪽)




1. 담담하고, 단단하게


백수린의 소설은 담담합니다. 그의 문장은 잔잔하고 고요합니다. 따라서 그가 그리는 세계를 쭉 걷다 보면 큰 요철 없이 결말에 도달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이야기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길 즈음엔 깊은 감동이 밀려오는데요. 이는 그가 표현하는 담담함의 미학이 독자에게 꽤나 단단한 정서를 선물하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할까요?




느끼는 감정은 선명하지만 그걸 밝히는 목소리는 한없이 조용한 인물들. 만약 백수린의 소설을 읽으면서 강렬한 무언가가 없다고 느낀다면 그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일 것이다.
(해설, 나의 작은 세계에서 벗어나서, 275쪽, 황예인(문학평론가))

먼저, 이야기 속 주인공은 모두 '신중하고, 조심하고, 몸을 사리는' 인물들입니다. 위의 해설에서도 이야기하듯, 주인공의 담담한 성향은 백수린의 소설에서 '강렬한 무언가가 없다'고 느끼게 만듭니다. 그러나 그런 인물의 시선으로 표현되는 배경은 숨막히게 우아한데요. 이 지점에서 백수린 소설의 묘미가 드러납니다.


"세상에."
그 순간 나도 모르게 탄성이 튀어나왔다. 창밖에는 커다란 눈송이가 떨어져내리고 있었다. 깃털처럼 부드러운 눈송이가. 역청빛 어둠을 덧칠한 이웃집의 지붕 위에도, 옥상 위의 장독대와 비탈 아래쪽의 앙상한 나무초리 위에도, 고요하게.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그것은 정말 내가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커다란 눈송이였다. 마른눈, 자국눈, 가랑눈. 국어사전에서 내가 발견했던 무수한 단어로도 형용하기가 충분치 않던 눈송이. 그토록 숨막히는 광경을 나는 그전에도 그 이후에도 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나는 차가운 유리창에 이마를 댄 채 그렇게 한동안 서 있었다. 구겨진 신발 위에, 양말도 없이, 까치발을 한 채. 돌이켜보면 그것이 내 인생의 결정적인 한 장면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고요한 사건」, 104쪽)
선선한 바람이 불면 가지런히 벗어 넘겼던 우리의 머리카락이 기분 좋게 뒤엉켰고, 잔물결이 일렁이는 수면 위로 새하얀 아카시아 꽃잎들이 떨어지곤 했다. 새털처럼 가볍게 부유하던 꽃잎들. 연두색 나뭇잎 사이로 너울대던 초여름의 빛. 바람이 불면 나뭇잎들이 밀어를 주고받듯 서로 속삭였고, 순백의 아카시아 꽃송이들이 흔들릴 때마다 사방은 향기로 가득 차올랐다. (「아카시아 숲, 첫 입맞춤」, 255쪽)


그는 강하고 세찬 표현 없이 정경을 묘사합니다. 따라서 조용하고 담담한 인물의 성격과 깊이 어우러지는데요. 상상 속에서 재생되는 눈부신 배경과 그 속 정물처럼 서 있는 인물을 보며 우린 벅찬 아름다움을 느끼게 됩니다.




또한 백수린 특유의 문체는 인물의 관계를 왜곡 없이 이해하게 돕습니다. 이는 그가 깊은 성찰을 통해 인물의 내면을 그려내기에 그렇습니다. 대강 뭉뚱그려 표현할 수도 있는 대목에서도 그는 인물의 감정과 생각을 섬세하게 서술하려 노력합니다.


낙관이나 비관으로 섣불리 기울어지지 않고, 손쉬운 납득을 위해 인물을 납작하게 그리고 싶은 유혹을 떨치면서 계속 이야기를 써나가겠다는. 백수린의 이야기가 지금의 우리에게 필요한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해설, 나의 작은 세계에서 벗어나서, 287쪽, 황예인(문학평론가))


이에 힘입어 독자는 인물 주변의 관계를 조급하지 않게, 찬찬히 따라가게 됩니다.


고개를 돌려보니 레오니가 향한 곳에는 캄보디아인이 틀림없어 보이는 한 아이가 서 있었습니다. 우리가 노는 것이 재미있어 보였는지, 낚시를 하려던 형과 누나들 무리에서 벗어나 우리 쪽으로 다가온 거였어요. 아이는 우리와 함께 놀고 싶었던 거겠죠. 나는 레오니가 낯선 아이를 무서워하거나 아이가 다가오는 것을 싫어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두 아이 모두 상처받지 않도록 능숙하게 대처하기에 나는 아이들을 너무 몰랐으니까요. 그런데요, 그런데 말입니다. 내가 망설이던 사이, 캄보디아 소년 앞에 섰던 레오니는 잠시 고민을 하더니 자신의 발로 레오니와 소년 사이에 그어진 선을 지우는 게 아니겠어요? 레오니는 돌멩이 끝으로 소년의 뒤쪽에 새로운 선을 다시 그었습니다. 그러고는 "집에 새 친구가 왔으니 원숭이님이 더 좋아하겠지?" 하고 나에게 말을 했어요. (「여름의 빌라」, 70~71쪽)
나의 상상 속에서 할머니와 브뤼니에 씨의 이별 장면은 이런 식이다. 색색의 글라디올러스가 활짝 핀 봄날의 공원이고, 둘은 처음으로 손을 잡고 있다. 아무 말 없이. 사방에선 싱그러운 풀냄새가 가득하고, 이별의 순간에야 처음으로 잡은 남자의 주름투성이인 손은 따뜻해서, 할머니는 생각한다. 그것은 얼마나 오만한 생각이었던가 하고. 노인의 삶이 사지가 마비된 뇌졸중 환자의 것과 다르지 않다니. 이렇게 살아서, 할머니의 몸은 이렇게 살아서 이 모든 것을 생생히 느끼고 있는데.
(…)
브뤼니에 씨가 건넸다는 그 말에 대해서 할머니는 대명사 두 개와 동사 한 개라고만 적어놨으므로 그 안에 감춰진 말이 무엇인지 나는 모른다. 그것은 어쩌면 "당신을 기다릴게요Je vous attendrai"일 수도 있고, "그리울 거예요Vous me manquerez"일 수도 있고, 내가 상상하는 것처럼 "사랑해요Je vous aime"일 수도 있지만 그 말이 진짜로 무엇이었는지 나로서는 영영 알 길이 없다. (「흑설탕 캔디」, 202~203쪽)




이렇듯 『여름의 빌라』는 전체적으로 고요하고 잔잔하며, 흔들림이 없습니다. 담담하고 단단한 그의 세계는 역시 걸작입니다. '작가의 말'에서 그가 말했듯, 이해와 사랑이 여전히 중요한 우리에게 이 소설은 참 아름답네요.


이 세상을 살기 위해 우리가 기댈 수 있는 것은 이해와 사랑 말고는 달리 아무것도 없다고 나는 여전히 믿고 있고, 이 소설들 역시 그런 믿음 속에서 썼을 것이다. 나에게는 성급한 판단을 유보한 채 마음 안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직시하고 찬찬히 기록하는 것이 사랑의 방식이므로. (작가의 말, 289쪽)



2. 명대사


언니에게도 그런 바보스러운 면이, 인간적인 면이 있다는 사실이 나를 덜 외롭게 만들었다. (「시간의 궤적」, 113쪽)


엄마가 떠난 밤, 아빠가 그녀를 끌어안았을 때, 그녀는 그때 처음으로 어른들은 눈물을 흘리지 않고서도 울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폭설」, 113쪽)


그리고 할머니는 일어나서 브뤼니에 씨와 함께 탑 위에 각설탕 하나를 더 쌓았다. 하나를 더. 또 하나를 더. 그러다 탑이 무너져내릴 때까지. 각설탕들이 사방으로 흩어지고, 할머니와 브뤼니에 씨가 손뼉을 치며 웃음을 터뜨릴 때까지. (「흑설탕 캔디」, 225쪽)


풍경은 언제 감각의 형태로 사람의 기억 속에 남는 걸까. (「아주 잠깐 동안에」, 225쪽)


우리는 안고 있어도 왜 이렇게 고독한 것일까. (「아주 잠깐 동안에」, 23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