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에서 한아뿐』 - 정세랑 / 2만 광년만큼 사랑해

"한아를 위해서라면, 우주를 횡단할 만큼 전 확신이 있어요."

by 조창
『지구에서 한아뿐』, 2019년 7월


흔하지 않지만 어떤 사랑은 항상성을 가지고, 요동치지 않고, 요철도 없이 랄랄라 하고 계속되기도 한다.
우주 가장자리에서 일어나 아무도 기억하지 못할 러브 스토리의 시작이면서. 끝이었다. (217쪽)




1. 2만 광년만큼 사랑해!


벌써 봄이네요! 조금만 지나면 벚꽃이 랄랄라 필 것만 같은데요. 항상 봄은 짧아서 아쉽습니다. 그래도 그만큼 짧으니 더욱 특별하고 아름다워 보이기도 하네요. 요새는 날씨가 추웠다 더웠다 오락가락하지만, 곧 완연한 봄 날씨가 찾아오지 않을까요.



봄은 사계절 중 가장 '시작'과 어울리는 계절인 것 같습니다. 새 학기의 시작, 생명의 탄생, 사랑의 시작… 저도 3월부터 국어 학원 조교로 일하게 되면서 나름의 새로운 시작을 이어나가고 있는데요. 새 학기를 맞아 앉아서 묵묵히 공부하는 학생들을 보면 대견하기도 하고, 가끔 그 나이대에 걸맞은 싱그러운 분위기가 부럽기도 합니다.



『지구에서 한아뿐』은 전 애인의 모습을 빌려 나타난 한 '외계인'과 지구인 '한아'의 사랑 이야기입니다. 소설 속에서 봄과 관련한 묘사가 눈에 띄지 않았는데도, 이상하게 책장을 넘길수록 봄이 떠올랐네요.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는 한아와 외계인의 이야기를 담고 있어 그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주인공인 한아의 원래 애인 '경민'은 이곳저곳 방랑하기를 좋아합니다. 경민은 여자친구 한아를 두고 홀로 여행하는 삶에 큰 만족을 느끼는데요. 급기야 여행 중 만난 외계인과 어떤 계약을 하더니, 지구 밖으로의 여행을 시작합니다. 경민과 계약한 외계인은 2만 광년 떨어진 곳에서 망원경으로 한아를 계속 지켜보다 돌이킬 수 없는 사랑에 빠져버려 지구로의 여행을 계획한 것이었습니다.


"한아를 위해서라면, 우주를 횡단할 만큼 전 확신이 있어요." (33쪽)


여행에서 돌아온 남자친구는 경민의 모습을 한 외계인이었습니다. 한아는 평소와 다른 경민의 친절함과 사랑에 이질감을 느끼다가도, '앞으로 변화할 게 더 남아 있다면, 오래된 관계를 체념이라고 부르지 않아도 될 것 같다'고 생각하며 얼마간 행복한 연에를 합니다.



다만 11년이라는 세월 동안 한결같았던 경민의 큰 변화에 한아는 결국 적응하지 못하는데요. 무언가 잘못되어간다는 생각에 빠져 점점 경민(외계인)을 무서워하기 시작합니다. 더 이상 숨길 수 없었던 경민(외계인)은 사실대로 이야기하고, 한아는 큰 혼란에 빠집니다.


"너를 직접 만나려고 2만 광년을 왔어. 내 별과 모두와 모든 것과 자유 이용권을 버리고." (95쪽)
"나쁜 새끼. 이마에 뽀뽀를 하고는 우주 끝까지 달려가버린 싸가지 없는 새끼…" (108쪽)


그럼에도 외계인이 주는 무한한 사랑과 애정에 한아는 점점 마음을 열고, 진심으로 그를 사랑하게 됩니다. 가끔은 전 애인의 모습을 한 애인의 모습에 심란하다가도, 2만 광년의 거리를 자신만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온 외계인에게 큰 고마움을 느낍니다.


"네가 내 여행이잖아. 잊지 마." (138쪽)


그렇게 한아와 외계인은 죽기 직전까지도, 그리고 죽음 이후에도 쭉 이어지는 사랑을 하게 됩니다. 지구에서 하나뿐인 한아를 보기 위해 우주를 횡단한 외계인의 사랑 이야기. 작품 안에서 인물 간 갈등이나 사건이 크게 두드러지는 부분은 없지만, 한아와 외계인의 몽글몽글한 감정이 잘 느껴지는 아름다운 작품입니다.


흔하지 않지만 어떤 사랑은 항상성을 가지고, 요동치지 않고, 요철도 없이 랄랄라 하고 계속되기도 한다.
우주 가장자리에서 일어나 아무도 기억하지 못할 러브 스토리의 시작이면서. 끝이었다. (217쪽)
심장이 마지막 걸음을 할 때, 경민이 속삭였다.
다시, 다시, 다시 태어나줘. (222쪽)



2. 그 외 명대사

너는 우주를 전혀 모르는데, 어떻게 우주를 넘어서는 걸까. 너는 너무 멀리 있는데, 나는 왜 널 가깝게 느낄까. (103쪽)
그거 알아? 내가 너한테 반하는 바람에, 우리 별 전체가 네 꿈을 꿨던 거? (102쪽)
경민이 한아를 사랑하면, 그 별 전체가 한아를 사랑한다고 했다. 한아 역시 어째선지 우주를 건너오는 그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157쪽)
"다른 어떤 뼈에도 붙어 있지 않은 갈비뼈가 있는 거 알고 있었어? 외로운 갈비뼈. 그런 곳을 짚어줘." (17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