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도 빈 나무일 수는 없다.
<사랑의 단상 2014>
김연수 단편소설
소설의 마지막, 210~212 쪽 中
자신은 이제 새들이 모두 날아가고 난 뒤의 빈 나무 같은 사람이 됐다고 생각했지만, 그 기사들은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있었다. 한번 시작한 사랑은 영원히 끝나지 않는다고, 그러니 어떤 사람도 빈 나무일 수는 없다고. 다만 사람은 잊어버린다고, 다만 잊어버릴 뿐이니 기억해야만 한다고, 거기에 사랑이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할 때 영원히 사랑할 수 있다고.
꼭 살아서 온댔는데 끝내 통화가 끝겼지… 네가 만든 빵 맛이 그립다
2014-12-25 20:05
로 태어나고. 그땐 많이 사랑해줄게, 이다음에 하늘나라에서 다시 만나자. 사랑해 범수야. 오늘은 형의 생일이야. 거기서 축하해주렴.
'사랑한다' 한마디 못했던 아빠는 널 정말 사랑했대… 너 없는 겨울 너무 춥구나
2014-12-23 22:09
해주고 있지? 아빠는 네가 가고 나서 너에게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해주지 못했다면서 매일 아침 동생들에게 "사랑해"라고 노래를 한단다. "사랑해"라는 말이 참 아프게 들리
침몰하던 그 시각 "사랑해요" 마지막 문자… 딱 한 번 볼 수 없겠니?
2014-12-17 20:23
사랑하는 내 딸 혜원아. 이렇게 이름만 불러도 아빠는 눈물을 주체하질 못한다. 엄마는 아빠가 너무 울어서 안 보이는 곳에서
과거에 갇혀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 원인이 사랑일 경우 사람은 더욱 무력해진다. 유한한 사람에게 영원이란 헛된 것일지도. 그래서 사람은 언제나 사랑에, 삶에 배신당한다. 그럼에도, 배신당한다 하더라도 사람은 다시 사랑을 하며 삶을 살아간다. 그 가닿을 수 없는 영원을 안기 위해 다시 일어서서 사랑을 한다.
2014년 4월 16일은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기억할 것이다. 2014년의 나는 초등학교 5학년이었고, 4월 16일은 어머니의 생신이었다. 어머니를 위해 어떤 선물을 골랐는지 기억나진 않지만, 확실한 것은 우리 가족에게 있어 4월 16일은 매년 행복한 날이었다.
다만 나의 기대와는 다르게 그날은 비극으로 기억된다. 총 탑승 인원 476명에 사망자 299명, 실종자 5명이라는 충격적인 세월호 침몰 사고가 있었던 날이기 때문이다. 21세기에 일어난 첫 대형 참사였기에 온 국민이 슬픔에 잠긴 날. 학교에서는 담임 선생님께서 수업도 중단하시고 계속 뉴스를 보여주셨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삼풍백화점 붕괴에서 세월호 침몰, 무안공항 참사까지 사회적 재해는 무참히도 일어난다. 가족을, 연인을, 친구를 잃은 사람들. 하루아침에 빈 나무가 되어버린 사람에겐 어떤 위로를 전해야 할까. 그들은 어떻게 마음을 가다듬어야 할까.
(" "는 모두 소설에서 따옴)
작가 김연수는 단편 <사랑의 단상 2014>에서 남녀의 사랑 이야기에 세월호 사고를 담아 썼다. 주인공인 '지훈'과 지훈이 사랑했던 '리나'의 이야기. 서술자는 지훈이 떠올리는 단편적인 생각, 즉 단상들을 나열하며 그들의 사랑을 써 내려가다 마지막에 세월호 기사를 엮는다. 총 열 가지의 단상 중 내 기억에 남는 지훈의 단상은 총 세 가지다.
지훈의 첫 번째 단상, "1. 네스프레소 한정판 캡슐 커피 소사(小史)"
과거 지훈이 리나에게 받았던 네스프레소 캡슐 하나를 서랍 속에서 우연히 발견하는 내용으로 이야기를 연다. 그 은빛 캡슐은 한 통에 10개의 캡슐이 들어있는, 몇 년 전 한정판으로 출시된 커피였다. 지훈은 한 잔 한 잔 마실 때마다 그해 봄을 보내는 게 너무 아쉽다는 생각이 들어 마지막으로 남은 캡슐 하나를 그 서랍에 넣어둔 것이었다.
"모든 게 눈부셨던 그해 봄". 그해 봄이 특히 눈부셨던 이유는, 그 시기엔 리나와 지훈이 서로 사랑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의 봄은 길지 않았다. "이제는 서로 애써 연락하지 않는 사이"가 되어버린 그들에게 있어 남은 단 하나의 캡슐은 아무 의미 없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지훈은 중얼거린다. "마셔야만 하지 않을까?" / "그 캡슐 안에 2011년 봄의 맛이 담겨 있다면."
그렇다. 마셔야만 한다. 사랑은 잊을 필요가 없고 잊어서도 안 된다.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이 사랑이지만, 그 사랑이 또 우리를 살게 한다. 지난 인연을 곱씹는 것이 우리에게 상처 줄지라도, 결국 우리를 속속들이 구성하는 것은 기억과 추억이다. 그것이 사랑과 관련되어 있다면 더더욱.
지훈의 세 번째 단상, "3. 심야의 잔치국수와 고양이 구출 작전"
"이 글을 끝내면서 내가 진정으로 사랑에 대해 말하고 싶었던 것은 하나뿐이었다는 것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 사랑은 '빠진 상태'라는 것이다."라는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의 말로 지훈의 세 번째 단상이 시작된다.
한 국숫집에서 티브이를 보다 지훈은 이 문장을 떠올린다. 지훈은 티브이에서 좁은 배수로에 빠진 얼룩무늬 고양이를 본다. 배수로의 폭이 너무 좁아 도저히 손으로는 고양이를 꺼낼 수 없었기에, 119 대원들까지 합세해 '고양이 구출 작전'을 벌인다. 배수로와 연결된 맨홀로 유인해 꺼내려는 계획이었는데, 고양이는 웅크린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고양이를 마침내 구한 건 배관 시설을 감싸는 단열용 스펀지였다. 고양이는 그 스펀지에 밀려 쫓기듯 맨홀 쪽으로 나왔고, 사람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지훈은 고양이에서 자신을 본다. 사랑이 끝날 무렵 자신에게도 그 고양이처럼 어둠 속에 웅크린 적이 있었음을 떠올린 것이다. 그는 사랑을 시작하기 전의 나로 돌아가면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이젠 더 이상 '예전의 나'도 '돌아갈 곳'도 없다. 애당초 사랑은 원해서 빠지는 것도, 원한다고 빠져나올 수도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티브이를 보며 지훈은 이렇게 말한다. "꼭 구해야만 했을까, 배수로 속의 그 고양이?"라고. 이별한 사람은 누구나 시간이 지나면 쫓기듯 다른 사람을 만나 또 사랑을 한다. "첫 번째 사랑은 두 번째 사랑으로만, 그리고 그 모든 사랑은 마지막 사랑으로만 잊히는 법"이니까. 그럼에도 그는 어둠 속에 웅크리는 삶을 택한다. 그 삶이 고통스러울지라도 말이다. 반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사랑의 단상들을 계속해서 떠올리며 그는 생각한다. 어째서 사랑은 끝난 후에도 사라지지 않는 것인지를.
지훈의 네 번째 단상, "4. 누군가에게 '해피 뉴 이어!'라고 말하고 싶은 밤"
네 번째 단상에서 지훈은 'valiente'라는 스페인어를 떠올린다. 지훈이 봤던 영화 속 등장인물이 사랑하는 연인에게 쥐어준 쪽지에 적혀있던 단어다. 그 단어의 뜻은 '용감한, 용기 있는, 멋진, 희한한'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아마 소설 속 영화는 훌리오 메뎀 감독의 <북극의 연인들> 일 것이다. <북극의 연인들>은 '우연과 필연의 운명적인 만남, 그리고 영원한 사랑'을 담은 영화로, 두 주인공 안나와 오토의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를 담았다. 안나와 오토는 유년시절에 만나 첫눈에 서로 반하지만, 오토의 아버지와 안나의 어머니가 서로 재혼하게 되면서 서로의 사랑은 아픔으로 끝이 난다. 하지만 그들은 우여곡절 끝에 25살에 핀란드에서 다시 만난다. 그럼에도 그들에겐 또 다른 비극이 기다리고 있지만, 영화는 '사랑'만은 영원함을 108분의 러닝타임동안 줄곧 말하고 있다.
안나가 오토에게 용기 있게 전한 'valiente'은 '이따가 밤에 내 방으로 와'라는 속뜻을 담는다. 영화를 보며 지훈은 "용기를 낸다는 것은, 언제나 사랑할 용기를 낸다는 뜻이라는 것을. 두려움의 반대말은 사랑이라는 것"이라고 말한다.
떠나간 사랑을 잊지 않는 것. 떠나간 사랑을 딛고 다시 사랑하는 것. 모두 아픔을 동반한다. 그럼에도 용기 있게 사랑해야 한다. 네 번째 단상은 지훈의 용기 있는 대답으로 끝난다.
"해피 뉴 이어!"
리나가 말했다.
마찬가지로 '해피 뉴 이어'라고 인사하는 대신에 지훈이 말했다.
"어디니? 내가 지금 거기로 갈게."
<사랑의 단상 2014>는 줄곧 리나와 지훈의 사랑을 이야기하다 마지막에 실제 세월호 참사 기사들을 언급한다. 삶의 마지막 순간에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전달했던 메시지를 담은 기사. 김연수는 이를 통해 '남녀 간의 연정'에서 비롯되는 사랑이든, '친구와의 우애'의 사랑이든, '가족이라는 핏줄'로 연결된 사랑이든 전부 다르지 않음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사고로 갑작스레 잃어버린 사랑들. 그것이 어떤 형태의 사랑이든 나는 감히 이야기하고 싶다. 그 사랑을 잊지 말라고. "거기에 사랑이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할 때 영원히 사랑할 수 있다"고. "어떤 사람도 빈 나무일 수는 없다"고.
사랑이 뭔지도 모를 초등학교 5학년의 가슴에 남은 이름 모를 단원고 학생들의 혼이 11년째 어렴풋이 깃들어 있는 걸 보면, 역시 사랑은 가슴에 묻어야 한다. 그것이 사무치게 아프더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