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하는 이들은 어디로 가는가.
김애란의 소설은 회색빛이 돈다. 흰색보단 검은색에 가까운 회색. 이유는 아마 김애란의 소설이 항상 상실을 그려내는 데에 있다. 《바깥은 여름》은 《비행운》 이후 5년 만에 퍼낸 소설집이다. 김애란은 《비행운》에서 비행운(飛行雲, contrail)과 비행운(非幸運, unlucky) 사이에서 갈등하는 이들의 삶을 먹먹하게 그린다. 《바깥은 여름》 또한 계속해서 바깥으로 밀려나는 인물들의 다양한 면모를 보여준다. 두 작품집 모두 읽다 보면, 그 인물들이 겪은 저마다의 상실은 결국 아주 보편적인 것임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일까. 각 단편의 마지막 장을 덮게 되면 갈 곳 잃고 방황하는 이들의 모습이 가슴 한편에 오래 남는다. 일곱 개의 단편 중 가장 저릿했던 세 편을 모았다.
1. <입동>
정착할 수 없는 사람들
소설을 여는 <입동>은 자식 영우가 죽은 이후 삐걱대는 부부의 삶을 그린다. 이사라면 지긋지긋했던 '나'는 아내와 함께 ‘자기 집‘을 구했다. 집값의 반 이상을 대출로 끼고서라도, 몇십 년간 매달 원금과 이자를 갚아야 하더라도 그들은 정착을 원했다.
아내는 반년이 넘도록 집을 꾸미는 일에 매진한다. 대학 졸업 후 독서실을 전전하며 부유해온 아내는 '나'보다 정착에 대한 욕구가 강했기 때문이다. 두 번의 유산 끝에 영우를 얻고, 다섯 번의 이사 끝에 집을 산 아내는 휴일마다 자르고, 칠하고, 조립하는 일에 몰두한다. 아내에게는 ‘정착의 사실뿐 아니라 실감이 필요한’ 듯하다. 잠시나마 그들은 ‘중심은 아니나 그렇다고 원 바깥으로 밀려난’ 것은 아니라고 얼마간 행복을 느낀다.
영우는 후진하는 어린이집 차에 치여 숨졌다. 오십이 개월의 삶. 각 계절을 다섯 번도 채 보지 못하고 져버린 그 여린 생명은 다시 안아볼 수도, 만져볼 수도 없다. 작디작은 피붙이가 상실된 공간은 더 이상 그들에게 있어 '정착'할 수 없는 힘겨운 공간으로 변모한다.
'나'가 보험회사 직원이란 근거로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소문이 도는 것도, 손해배상을 통해 모든 게 마무리됐다 여기는 어린이집도, 부부를 더욱 허공으로 몰아간다. 그들은 '이십 년간 셋방을 부유하다 힘들게 뿌리내린 곳이, 비로소 정착했다고 안심한 곳이 허공'이었음을 처절하게 느낀다.
부부는 영우를 잃은 슬픔 못지않게 사람들이 던지는 시선에 큰 상처를 입고 만다. ‘처음에는 탄식과 안타까움을 표한‘ 이웃은 ’마치 거대한 불행에 감염되기라도 할 듯‘ 그들을 피하고 수군거렸다. ’내가 이만큼 울어줬으니 너는 이제 그만 울‘라고 소리치는 이들의 논리가 부부를 잡아먹었다.
영우가 사라진 공간, 그럼에도 그들은 삶을 이어나가야만 한다. 텅 비어버린 곳에 그들은 정착할 수 있을까.
2. <건너편>
‘오늘 밤에는 꼭 헤어지자 얘기해야지……’ 다짐했다. 그런지 두 달째였다.
세 번째 단편, <건너편>이다. 어느새 '나물맛도 알고 물맛도 아는' 삼십대 중반이 돼 버린 한 연인의 이야기다. 이수와 도화는 수험생 시절 노량진 강남교회에서 처음 마주한다. 강남교회는 노량진 수험생들에게 밥을 나눠주기로 유명했기에 그들은 자주 교회에서 아침을 해결하곤 했다.
재수 끝에 합격증을 받아든 도화와 달리 이수는 여섯 번의 낙방에도 끝내 꿈을 이루지 못했다. 이수는 '도화 혼자 어른이 돼가는 과정을 멀찍이서 지켜'본다. 도화의 세계가 점점 자신을 바깥으로 밀어냄을 인식한 것이다. 도화는 국가가 인증한 시민, 이수는 사회의 구성원이되 아직 시민은 아닌 존재. 그는 모든 걸 정리하고 노량진을 떠난다.
다만 이수는 끝내 꿈을 버리진 못했다. 도화 몰래 동거하던 집의 전세를 반전세로 돌려, 보증금의 일부를 돌려받고 공부하는 데에 썼기 때문이다. 이 일을 계기로 도화와 이수는 헤어지게 된다.
그러나 도화는 언제나 이별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언젠가부터 도화는 ’내 안에 있던 어떤 게 사라진‘ 느낌을 받았고, 그걸 되돌릴 수도 없다고 생각했다. 꿈을 이룬 도화와 꿈에 메인 이수. 그들의 간극이 벌어지는 처음부터 도화는 이별을 유예해 왔다. 심지어 집주인을 만난 뒤 자신이 느낀 게 ‘배신감’이 아니라 오히려 ‘안도감’이었음을 깨닫는다. ‘마치 오래전부터 이수 쪽에서 먼저 큰 잘못을 저질러주길 바라왔던 것’이다.
도화와 이별한 이수는 어디로 갈까. 서울시 동작구 노량진동 안에서 여러 번의 계절을 무심히 통과하며 시들어간 청춘은 어디로 가야 할까. ‘도화 씨가 좋아하는 거 같아서 잔뜩 집어왔어요’라고 말하며 가득 쌓인 동그랑땡을 자랑하던 이수를 도화는 도저히 잊을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3. <풍경의 쓸모>
‘유리볼 안에선 하얀 눈보라가 흩날리는데, 구 바깥은 온통 여름일 누군가의 시차를 상상했다.’
아버지의 불륜으로 시작해 믿었던 교수의 배신까지 겪어내는 대학 강사의 이야기가 다섯 번째 단편, <풍경의 쓸모>이다.
주인공의 어머니는 자주 어딘가 서보라 했다. 소중한 순간은 사진으로 남겨야만 하기 때문에 그렇다. ‘좋은 일은 금방 지나가고, 그런 날은 자주 오지 않으며, 온다 해도 지나치기 십상’이기 때문에, 어머니는 항상 행복을 필름에 담으려 애썼다. 주변 풍경이 모두 날아가더라도, 중심에 서 있는 것들은 모두 온전하기에 그렇다. 다만 사진은 결국 과거로 피사체를 끌어낸다. ‘무언가 주자마자 앗아가는 건 사진이 늘 해온 일‘이기 때문에, 그것은 행복과 상실을 동시에 잘라내 저장한다.
‘나’는 불륜으로 떠난 아버지가 어째서 자기 인생의 중요한 마디마디를 계속 더듬고 기념하려 애쓰는지 궁금해한다. 졸업식 땐 전자사전을, 대학원 입학 땐 넥타이를, 군 입대 즈음엔 손목시계를 보내왔다. 그러나 암에 걸린 내연녀를 치료할 돈이 부족했던 아버지는 기어코 아들에게 돈을 빌리러 온다. 아들은 아버지가 주었던 그것들이 당신의 죄책감을 담은 것인지, 얼마간의 부성애를 담은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또한 '나'는 자신이 근무하는 대학의 문화콘텐츠학과 학과장인 곽교수와의 일도 떠올린다. ‘반주로 딱 한 잔’만 했다던 곽교수는 ‘나’와 함께 차로 동행하던 중 한 여자아이를 치고 만다. 그는 조만간 있을 승진 시험을 떠올리며 '나'에게 네가 운전한 걸로 하면 안 되겠냐고 말한다.
그 사고로 특별히 일어난 변화는 없다고, 운전면허에 벌점이 부과된 것뿐이라고 생각하는 '나'는 결국 곽교수에게 배신당하게 된다. 얼마 후 문화콘텐츠학과에 교수 임용 공지가 나 지원했는데, 곽교수가 ‘나’의 교수 임용을 강하게 반대했다는 것이다.
어째서 삶은 이리도 배신하는지. 아주 보통의 삶을 사는 사람에게 더욱 보편적으로 일어나는 비행운(非幸運)의 일들은 보통의 힘으론 견디기 어려운 것이었다.
<풍경의 쓸모>의 '나'는 '볼 안에선 하얀 눈이 흩날리는데, 구 바깥은 온통 여름일 누군가의 시차'를 상상한다. <입동>의 부부, <건너편>의 연인, <풍경의 쓸모>의 ‘나’ 모두 상실의 세계인 구의 중심으로 빨려 들어간다. 그 세계에서 바라보는 바깥은 온통 여름이다. 시끄럽고 왕성한, 푸르고 풍요롭고 축축한 계절.
책을 읽으며 마음이 괴로웠다. 인물이 실제로 어딘가에 살아 움직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정말 그러한 상실을 안고 살아가는 이들은 이젠 어디로 향해야 할까. 그들에게 어떤 위로를 전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