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생에 한 번쯤은 파리지앵처럼

프랑스 #7 에펠탑은 스쳤지만 까르푸는 매일 갔다

by 조디터 Joditor

“파리에 한 달 동안 다녀올 수 있겠어?” 이처럼 설레는 문장이 또 있을까? 선배는 나에게 파리에 한 달 정도 머무르며 이런저런 콘텐츠를 만들어 달라고 했다. 본인은 2주 정도 뒤에 오겠다고. 한 달 정도지만, 일하러 가는 거지만, 그래도 파리지엥으로 살아볼 기회가 살면서 얼마나 오겠는가!


여행이란 어쩌면 출발하기 바로 직전까지 가장 설레는 건 아닐까? 한 달 동안 외노자로 살아가기 위한 준비를 차근차근 하면서 걱정과 기대가 휘몰아쳤다. 루틴의 일들도 한 달 동안 파리에서 순조롭게 진행해야 했다. 가기 전에 가족과도 시간을 충분히 보내야 했다. 지낼 숙소도 알아봐야 했다. 스태프들과 회의도 해야 했다. 그렇게 6개월 만에 다시 샤를 드골 국제공항으로 향했다.


여정은 처음부터 범상치 않았다. 경유지인 뮌헨에서 파리로 가는 비행기가 연착됐다. 도착 예정 시각은 자정을 넘어가고 있었다. 문제는 공항 픽업 밴의 대기 시간이었다. 밴 기사님은 속절없이 파리에서 우리를 기다려야 했다. 우당탕 어떻게 파리 시내 숙소에 입성했을 때 시각은 오전 2시 정도였다. 목이 말라붙듯 갈증이 났다. 공항에서 너무 서둘러 나오느라 자판기 같은 곳에서 물 한 병 살 생각도 못 했다. 에어비앤비로 예약한 숙소에 식수는 없었다. 사실 파리 수돗물은 일반적으로 안전해 마셔도 된다. 그런데 그때는 누군가 파리 수돗물에 석회가 많아 절대로 마시면 안 된다고 했다. 프랑스는 노동 규제와 영업 관련 법 때문에 24시간 하는 상점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근처 호텔에라도 가서 식수를 얻어올까도 생각했다. 그때 어디선가 “따가각” 소리가 들렸다. 분명히 작은 유리병 뚜껑이 따지는 소리였다. “마실래?” H는 상비약으로 가져온 쌍화탕을 건넸다. 우리는 말라붙은 식도에 쌍화탕을 조금씩 흘려보냈다. 작약과 숙지황, 황기 등이 녹아든 검정 액체로 목을 축이며 바스러지듯 잠들었다. 다음 날 아침, 나와 H는 오전 8시가 되자마자 가까운 까르푸로 달려갔다. 내 생에 가장 많은 에비앙을 플렉스했던 날이다.


파리에서의 한 달살이는 현실이었다. 숙소는 사무실이 됐고, 정확한 퇴근 시각은 없었다.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에펠탑이 있었지만, 하루의 일이 끝나면 자기 바빴다. 사진첩에는 아무렇게 널브러져 자는 동료들의 모습이 차곡차곡 쌓였다. 에펠탑은 프렝탕 백화점 옥상에 갔을 때 먼발치에서 바라봤다. ‘혼돈의 카오스’로 가득한 에투알 개선문 라운드 어바웃 운전에 점점 자신감이 붙었다. 샹젤리제 거리에서는 아이쇼핑조차 할 시간도 없었다. 루브르 박물관 등의 명소도 지나가면서 봤다. 여행자가 아닌 외노자 신분의 파리지엥은 수면 부족과 과로로 평소보다 빠른 속도로 노화가 진행 중이었다.


그래도 좋았다. 아침마다 “봉주(Bonjour), 메시(Merci)”의 인사가 오가는 단골 빵집(불랑제리)이 생겼다. 카페테라스에서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도시의 흐름을 구경하며 조용히 대화를 나누었다. 파리에서 예술은 특별한 이벤트가 아닌 일상이었다. 걷는 게 좋아졌다. 마트와 상점에는 값싸고 향긋한 와인이 가득했다. 1일 1와인을 해도 왠지 간도 즐거워하는 듯했다. 한국 식료품점과 식당도 곳곳에 있다. 볕이 좋은 날엔 숙소 뒷마당에 몇 가지 음식을 깔아 놓고 와인으로 잠시 회식을 즐겼다. 꾸민 듯 안 꾸민 듯한 그들의 패션을 조금 따라 해보기도 했다. 주말에는 마르셰(시장)로 쇼핑을 가거나 파리 근교로 나갔다. 베르사유 궁전과 샹보르성, 노르망디 등을 다녀왔다. 특히, 노르망디에서의 마지막 날 칼바도스에 듬뿍 취해 밤새 웃고 떠들었던 그날의 행복은 아직도 선명하다.


한 달 동안 에펠탑도, 에투알 개선문도, 루브르 박물관도 모두 스쳐 지나갔다. 바쁜 거 끝내고 나중에 가봐야지 했다가 못 간 거다. 그건 그대로의 사치로 남았다. 외노자 파리지앵의 일상은 바쁜 것만 빼면 근사했다. 바빴던 거야 사실 우리가 그만큼의 일거리를 이고 지고 왔으니 그랬던 거고. 파리에 있는 동안 24시간 돌아가는 서울의 리듬은 점점 박자가 희미해졌다. 평평하고 낮은 파리의 스카이라인이, 그 여명이 주는 위안이 은근히 낭만적이었다. 이제서야 왜 그분이 ‘일생에 한 번쯤은 파리지앵처럼’ 살아보라고 했는지(<퇴사를 하고 삿포로 맥주를 마셨다> 참고) 어렴풋이 짐작해 볼 수 있었다.


Sep,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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