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모니몽블랑, 그곳은 하늘나라

프랑스 #6 케이블카 한 번으로 만나는 3,842m의 세계

by 조디터 Joditor

제네바로 가기 전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샤모니몽블랑(Chamonix-Mont-Blanc)이었다. 유럽 최고봉인 몽블랑(4,810m) 아래에 있는 마을로 인구가 만 명도 채 되지 않는다. 하지만 1924년 제1회 동계 올림픽이 열렸다. 스위스와 이탈리아 국경과도 가까워 유럽 알프스 여행의 핵심 거점인 곳이다. 알핀리즘(Alpinism, 알프스에서 바위·빙하·혼합 지형을 최소 장비·소수 인원·빠른 진행으로 오르는 산행 철학 및 기술을 이르는 개념으로 단순 ‘등산’보다 기술적 난이도와 자율성이 강조)의 성지이며, 알프스 산악 구조 문화와 가이드 제도가 이곳에서 시작됐다. 아무튼 이래저래 멋진 마을. 참새는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리옹 시내를 벗어나자, 여명의 땅거미는 점점 걷히기 시작했다. 샤모니의 눈 내리는 마을로 접어들수록 알프스의 웅장한 뼈대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눈은 곧 비로 바뀌었다가 안개로 바뀌었다가 변덕을 부리며 이방인의 접근을 반기지 않았다. 저 멀리 <왕좌의 게임>에 나올 법한 거대한 장벽이 보였다. 그 아래로 알프스 전통 산장 스타일의 집인 샬레(Chalet)들이 옹기종기 미니어처처럼 모습을 드러냈다.


샤모니 마을 거리에는 고급 등반 장비를 파는 상점과 아기자기한 카페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오전이라 그런지 한산했다. 오직 저 몽블랑 근처를 단숨에 올라가기 위해 모인 이들의 설렌 발자국과 대화 소리만 나직하게 들려왔다. 이곳엔 에귀디미디(Aiguille du Midi) 봉우리까지 20분 만에 올라가는 케이블카가 있다.


프랑스어로 ‘에귀(Aiguille)’는 ‘바늘’이라는 뜻인데, 주로 알프스산맥의 뾰족한 봉우리를 지칭할 때 쓰인다. ‘미디(Midi)’는 ‘정오’, 혹은 ‘남쪽’이라는 뜻으로 ‘에귀디미디(Aiguille du Midi)’는 ‘남쪽에 솟은 봉우리’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해발 고도가 무려 3,842m다. 이런 곳에 케이블카가 놓이고 건물이 지어지는 걸 보면 인간의 한계는 어디일까? 이 케이블카가 무려 1955년에 완공됐다는 게 더 경이롭다. 매표소 카페에서는 신라면과 불닭볶음면, 진라면 등의 작은 컵라면을 4유로에 팔고 있었다. 경이로움의 연속이다. 크루아상과 따뜻한 커피로 에너지를 채우고 케이블카 매표소로 갔다. 왕복 티켓 가격은 61.50€. 당시 환율로 약 8만원 정도. 경이로움의 연속이다(2).


케이블카를 타고 에귀디미디까지 가기 위해선 중간에 플랑드에귀유(Plan de l’Aiguille, 2,317m) 역에서 한 번 갈아타야 한다. 이곳에서 정상까지 한 번에 올라가는 구간의 길이만 무려 2.8㎞에 달한다. 케이블카 공사 당시 작업자들은 해발 3,000m 이상의 고산에서 산소 부족과 강풍, 혹한 속에서 시공을 진행해야 했다. 장비와 자재를 모두 헬리콥터로 날랐다. 바위를 깎아내고 그 위에 콘크리트 건물을 지었다. 산세를 보면 날아다니는 새 말고는 여기에 그 어떤 동물도 접근할 수 없다는 걸 알게 된다.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다 모두가 “WA” 소리를 내고 있다. 이럴 때 나오는 말은 만국 공통인 듯하다.


드디어 정상에 도착했다. 케이블카 문이 열리는 순간 어딘가 부족하고 차가운 공기가 확 밀려 들어왔다. 동행한 얼음 입자들이 얼굴에 닿으며 녹아 없어졌다. 전망대로 바삐 걸음을 옮겼다. 밖으로 나온 순간, 그 찰나의 임팩트를 난 아직 기억한다. 그곳은 하늘이었다. 마치 중생(重生)을 얻은 것 같았다. 아직 내가 내 발로 디딘 곳 중에 가장 높았다. 주변으로 온통 눈과 바위, 끝없이 이어지는 하얀 능선이 펼쳐졌다. 발아래로 구름이 파도치고 있었고, 사방으로 4,000m급의 봉우리들이 듬성듬성 그곳을 지키고 있었다. 빙하가 오랜 세월 휩쓸고 간 골짜기의 굴곡이 한눈에 들어왔다. 지금은 그곳에 샤모니 같은 마을이 들어섰다. 다행히 날이 좋아 이탈리아와 스위스 국경의 산맥까지 보였다. 어떤 이들에게 이 케이블카는 스키장의 곤돌라다. 알프스 자락에 스키어들이 그어 놓은 궤적은 여백의 미를 한껏 살린 한 폭의 그림이다. 설렘 가득한 웅성거림 속에 눈보라가 바위를 때리는 소리, 케이블의 철컹철컹, 새들의 울음소리가 고요하고 그윽하게 들려왔다. 그 오케스트라 연주 속에 우리는 얼마나 미물인지 새삼 다시 느끼게 된다.


힘든 얼굴로 주변에 아무렇게 앉아 있는 이들이 보였다. 이곳은 마을보다 산소 농도가 30% 정도 적다. 특히, 케이블카를 타고 빨리 올라와서 이에 몸이 적응할 시간도 없다. 체력과 나이 상관없이 누구나 고산병이 올 수 있다. 주로 두통과 어지럼증, 구역질, 호흡 곤란, 빠른 피로 등이 나타난다. 전망대 계단을 오르내릴 때 숨이 가빠진다면 무리하지 말고, 바로 쉬어야 한다. 물을 많이 마시면 도움이 된다. 그래서 이곳엔 한두 시간 정도만 머무를 것을 권한다.


어디선가 사람들이 줄을 서고 있었다. ‘Step into the Void(공중 발코니)’라는 유리 바닥 전망대에서 사진을 찍기 위한 줄이었다. 안전한 덧신을 신고 유리 바닥에 서면 바닥 아래로 1,000m 절벽이 그대로 보인다. 얼마나 실감 나고 아찔한 지 포기하고 돌아간 이들도 여럿 있었다.


한참을 멍때리고 있는데 옆에서 누군가 손가락으로 앞에 있는 커다란 봉우리를 가리키며 그랬다. 저게 몽블랑이라고. 난 그게 뭔지도 모르고 그냥 보고 있었던 것이다. 손에 잡힐 듯한 거리에 말로만 들었던 그 ‘몽블랑’이 우뚝 솟아 우리와 마주하고 있었다. 짙은 구름이 봉우리 주변을 근위대처럼 둘러싸며 호위하고 있었다. 몽블랑은 유럽의 상징적인 곳이다. 프랑스와 이탈리아 국경선 위에 있다. 정상에 오르는 주요 루트는 구타르 산장(Refuge du Goûter) 또는 뚜르 라테 산장(Refuge de Tête Rousse)을 경유해야 하는데, 숙소 예약을 하지 않으면 입산 자체가 안 된다. 언젠가 저 봉우리에서 이곳을 바라볼 날도 오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봉우리의 형상을 보니 쉽게 엄두가 나질 않았다.


하산이 이렇게 아쉬웠던 산이 있었을까? 내려와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니 한국은 시끌벅적 중이었다. 이래서 스님들이 산속으로 들어가는 걸까? 속세는 저 3,800m의 세상과 달리 여전히 번뇌로 가득했다. 해탈과 거리가 먼 나 같은 중생(衆生)들이 살아가는 곳이니까. 저 하늘나라에서 경험한 찰나의 중생(重生)이 가끔 그립다. 할렐루야.


Mar,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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