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잉과 과시의 샹보르성

프랑스 #8 카를 5세 보고 있나

by 조디터 Joditor

왕의 권력은 건물로 남는다. 피라미드, 콜로세움, 타지마할, 류경 호텔, 베르사유 궁전 등이 그렇다. 파리에서 남서쪽 방향 루아르(Loire) 계곡에 있는 샹보르성(Château de Chambord)도 그렇다. 440개의 방, 282개의 벽난로, 84개의 계단을 갖췄고, 성을 둘러싼 울타리는 약 32㎞에 달한다. 이는 파리 시내 전체를 감싸기에 충분한 면적이다. 누구일까? 이 성의 주인은. 아니, 이 성을 지으라고 시킨 사람은.


프랑수아 1세는 당시 유럽의 강대국들과 경쟁해야 했다. 맞수는 합스부르크 황가의 카를 5세. 프랑수아 1세와 카를 5세는 둘 다 신성로마제국 황제 선거에 출마했는데, 결과는 카를 5세의 승리였다. 두 사람은 유럽 전역에서 전쟁을 벌이며 거의 평생 라이벌로 대립했다.


프랑수아 1세는 프랑스의 르네상스 군주로서 자신의 권위를 뽐낼 것이 필요했다. 뭔가 웅장하고 압도적이고 전례 없는 랜드마크. 랜드마크는 자고로 커야 하는 법. 그는 당시 이탈리아 르네상스 건축과 예술에 빠져 있었고, 그 유행이 좋았다. 샹보르성은 이런 배경에서 지어졌다. 세월이 흘러 1539년 카를 5세는 프랑스를 공식 방문했다. 이때 그는 샹보르성에 머물렀다. 그는 아직 완성이 덜 된 샹보르성을 보고 “인간의 상상력이 만든 가장 훌륭한 건축물”이라고 찬사를 보냈다. 당시의 프랑수아 1세 심정은 어땠을까? 어쩌면 샹보르성은 딱 저 순간을 위해 만들어진 게 아닐까?


이탈리아 르네상스 문화에 빠져 있던 프랑수아 1세는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프랑스로 초청하기도 했다. 다빈치는 프랑스 앙부아즈 근처의 클로 뤼세(Clos Lucé) 저택에서 여생을 보내며, 건축·수리학·도시계획 아이디어를 왕과 나눴다. 그렇다고 다빈치가 샹보르성의 설계를 맡은 건 아니다. 성 건축은 도메니코 다 코르토나(Domenico da Cortona)라는 이탈리아 출신 건축가가 실질적으로 총괄했다. 성의 공사가 시작됐던 1519년, 다빈치도 그해에 세상을 떠났다.


파리에서 외노자로 수명이 단축되고 있을 무렵 샹보르성으로 소풍을 갔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말처럼 진리가 담긴 말은 없다. 샹보르성으로 진입하기 전에 메흐(Mer)라는 소도시가 있는데, 이곳에서 이른 점심을 먹었다. 우리의 눈에 뜨인 식당은 La Trattoria-Mer. 뭔가 전통적인 이탈리아 정서가 아늑하게 풍겨 나왔다. 이탈리아 르네상스에 꽂혔던 프랑수아 1세처럼 그곳으로 향했다. 식당 안쪽은 이미 시끌벅적하게 파티가 시작된 것 같아 볕이 좋은 야외 자리에 앉았다. 바질송송계란탁이 올려진 피자와 처음 보는 토핑들이 얹힌 파스타가 나왔다. 재료의 신선하고 순수한 맛이 느끼하게 전해졌다.


샹보르성의 대문을 지나 6㎞ 정도를 가니 성이 나타났다. 날씨마저 거들어 완벽한 동화의 한 장면이 눈 앞에 펼쳐졌다. 이 장면을 어디에서 봤더라? <미녀와 야수>에서 야수가 사는 성이었나? 가까이 갈수록 그 위용에 발걸음이 느려졌다. 카를 5세도 이런 기분이었을까? 곳곳에 카트를 타고 성을 둘러보는 이들이 보였다. 중세 시대의 옷을 입고 말을 타고 돌아다니는 알바(?)분들도 있다. 용인 한국민속촌에 있는 그분들 같은 느낌인데, 당시의 시대상을 재현해 분위기를 더해보려는 듯 보였다.


샹보르성의 겉모습은 전형적인 요새다. 중세 요새 스타일의 핵심인 첨탑과 해자가 돋보인다. 그런데 이러한 요새 스타일의 성은 전쟁에서 유리한 입지를 다지기 위해 언덕 위에 짓는 게 국룰이다. 샹보르성은 강과 인접한 평지에 지어졌다. 과거 이곳은 늪이었다고 한다. 이것만 봐도 샹보르성은 평소 사냥과 휴양지로서의 별장 성격이 더 컸다고 짐작한다. 애초 과시용이었으니.


안으로 들어가면 셀 수 없이 많은 방이 비현실적으로 펼쳐진다. 석조 벽과 천장 아치, 나무 보, 대형 벽난로가 주는 웅장함 때문에 빈방조차 장엄하고 차갑게 느껴진다. 벽난로마다 섬세한 문양이 새겨져 있고, 프랑수아 1세의 상징인 샐러맨더(Salamander, 전설 속 불의 도롱뇽 정령) 문장이 곳곳에 보인다. 이는 ‘불 속에서도 살아남는 존재 = 왕권의 영원성’을 의미한다.


실내 곳곳에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자국이 묻어 있다. 샹보르성의 가장 상징적인 구조물은 중앙의 이중 나선 계단이다. 두 개의 계단이 서로 꼬여 있지만 결코 만나지 않는다. 위아래를 동시에 오르내려도 마주치지 않는다. 샹보르성은 중앙부의 거대한 사각형 탑과 계단을 중심으로, 방과 복도가 방사형으로 퍼져 나가는 구조다. 이 개념 역시 다빈치가 고안한 ‘이상 도시(Ideal city)’ 구상과 닮았다. 즉, 기능적 효율보다는 대칭·비례·조화를 강조한 르네상스적 사고가 반영됐다는 해석이다. 그리고 당대 기준으로 매우 큰 창과 높은 천장을 갖춰, 내부 공간이 자연광과 바람을 잘 받아들이게 설계됐다. 이 또한, 건축에서 빛과 공기의 흐름을 중시한 다빈치의 흔적이다.


내부에서 계단을 따라 오르면 옥상 테라스로 이어진다. 테라스에 서면 첨탑, 굴뚝, 돔이 숲처럼 빽빽하게 솟아 있어 마치 석조 도시 속을 걷는 듯한 느낌을 준다. 여기서 루아르 계곡의 숲과 사냥터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과하다. 에버랜드 전체가 우리 집이면 과연 마냥 좋을까? 실제로 프랑수아 1세는 이 성에 머문 날이 고작 72일에 불과했다. 너무 넓고 습기가 심해 불편했다. 가끔 와서 사슴과 멧돼지나 사냥했다. 이따금 테라스에 서서, 저 끝이 보이지 않는 대문을 바라보며, 언젠가 카를 5세가 와서 엄지척해 주길 기다렸던 것 같다.


Sep,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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