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7에 등장했던 애스턴 마틴을 샀다

프랑스 #9 파리 벼룩시장 오픈런

by 조디터 Joditor

파리는 쇼핑이다. 아울렛, 백화점, 기념품숍, 그냥 길가의 작은 상점 등 어느 곳 하나 거를 타선이 없다. 파리까지 가서 쇼핑 없이 그냥 돌아왔다면, 다시 파리행 비행기표를 알아볼 충분한 명분이 된다. 그만큼 파리는 ‘견물생심’의 충동이 전 세계에서 가장 강렬한 곳이다.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벼룩시장’의 어원을 아시는가? 벼룩시장은 프랑스어 ‘마르셰 오 뿌세(marché aux puces)’에서 유래했는데, 말 그대로 ‘벼룩이 있는 시장’이다. 19세기 후반 프랑스의 노동자와 장사꾼이 파리 외곽에서 헌 옷, 가구, 공예품 등을 거래하면서 시작됐다. 벼룩이 있을 정도로 낡은 무쓸모 물건이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보물이 되기도 하는 ‘당근’의 시조인 셈. 파리는 이 낡은 물건에도 꽤 근사한 낭만이 묻어 있어 지갑을 열지 않을 수 없다.


파리 외노자도 주말엔 쉬는 법. 불금을 편집과 함께 휘뚜루마뚜루 보내고 힘겹게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났다. 벼룩시장은 아침 오픈 런이 중요하다. 오전 10시만 넘어도 괜찮은 물건은 싹 팔리고 없다. 지하철을 타고 파리 14구로 향했다. Porta de Vanves 역에서 내려 잠시 걸었다. 가을만 되면 입버릇처럼 항상 하는 말이 있다. “가을엔 무조건 밖으로 나가야 한다.” 파리에서, 딱 쾌적한 온도의 가을에, 그것도 주말 아침에 거리를 걷는 건 꽤 호사스럽다.


저 멀리 분주한 기운이 느껴졌다. 주말에만 열리는 시간 포털이 열렸다. 앙티크&브로캉트 벼룩 시장(Marché aux Puces de la Porte de Vanves)은 무려 1905년에 생긴, 100년 넘은 시장이다. 대략 300~400명의 비상주 상인이 모인다. 주로 골동품, 예술품, 오래된 책, 그림, 사진과 포스터, 빈티지 옷, 보석, 유리 공예품, 가구, 인테리어 장식품 등이 거래된다. 파리에서 가장 크고 유명한 생투앙(Saint-Ouen) 시장처럼 크고 복잡하진 않다. 좀 더 소박하고 여유롭다. 그래서 좋다. 관광객은 거의 없다. 대부분 현지 주민처럼 보이는 이들이 보물찾기에 열중이다. 그 틈바구니에 섞여 천천히 구경하는 재미 덕에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여기 좌판에 나온 물건들은 알리에서도 쿠팡에서도 살 수 없기에 특별하다. 불어가 된다면 꼭 흥정을 해보시라. 흥정 중엔 세대를 아우르는 대화가 덤으로 오간다. 딱 봐도 ‘나는 디자이너다’라는 이들도 눈에 띈다. 그들은 이곳에서 영감을 쇼핑한다.


파리지앵의 이 수많은 낭만품 가운데 결국 내 발걸음을 멈추게 한 존재가 나타났으니. <Le Petit Parisien>이다. ‘작은 파리지앵’이라는 뜻의 이 작은 타블로이드판 신문은 1876년 창간된 대중 일간지다. 보수적이면서도 대중 친화적인 보도를 했고, 1900년대 초반에는 발행 부수가 100만 부를 넘기도 했다. 정치, 사회 사건, 범죄 기사, 연재소설, 풍자화 등 서민층이 쉽게 읽을 수 있는 대중적 기사들을 많이 실었다. 당시 유명 작가들의 소설도 연재해 대중 문학 보급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 신문이다. 내가 바라는 저널리즘과 결이 같다. 특히, 1면 삽화가 굉장히 매력적이라 손이 갈 수밖에 없다. 수십 장의 신문 중 1904년 3월 13일 일요일, 러일전쟁을 대대적으로 보도한 신문과 1902년 5월 11일 일요일 전차와 마차의 교통사고를 1면에 보도한 신문 두 호를 샀다. 당시 일요일 자 신문이 발행됐다는 것도 신기하거니와 컬러 삽화가 대량 인쇄될 수 있었다는 기술력은 감탄을 넘어서 감동이었다. 나에겐 그 1면 자체가 꽤 매력적인 예술품이었다. 두 신문은 지금 고이 액자에 담겨 내 방 한 면에 걸려있다.


그다음으로 내 지갑의 유로화와 맞바꾼 건 앙증맞은 모델카(다이캐스트)들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좌판에 깔린 차들을 몽땅 쓸어오고 싶었지만, 예산과 수하물 무게 때문에 신중하고 신중하게 골라야 했다. 오랜 번민 끝에 007에 등장했던 애스턴 마틴 모델카들과 시트로엥 DS 23 랠리카, 푸조 104 ZS-2를 봉투에 담았다. 이 차들도 현재 다른 모델카들과 함께 내 방 한구석에 얌전히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지금 봐도 최고의 기념품들이다.


Sep,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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