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10 적당히 해야지
파리에서도 주말은 소중하다. 어디를 가서 무얼 할지 고민하다 문득 베르사유 궁전이 떠올랐다. 파리에서 차로 약 40분 거리라 가까운 편이니까. 동료들도 모두 따라나섰다. 다들 마뜩한 계획이 없었다. 우리는 이날 깨달았다. 즉흥적인 여행에는 그만큼 시간과 돈이 많이 든다는 것을.
일단 교통수단으로 자가용은 비추다. 갈 때는 편하지만, 가서 불편하다. 주차 자리를 찾기도 어렵고(특히 오전에는 차가 빠질 일이 없으니), 요금도 시간당 3~4€로 비싼 편이다. 파리에서 출발한다면, 서너 명이면 속 편하게 우버 이용하는 게 낫고, 보통 RER C선이나 SNCF 기차를 많이 이용한다. 지금 다시 간다면 가이드가 포함된 투어 상품을 이용할 것 같다.
어렵게 차를 대고 나니 다음 관문이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누구도 ‘예약’이라는 시스템을 사용해야겠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이미 줄은 입구에서부터 굽이굽이 구절양장처럼 늘어서 있었다. 베르사유 궁전은 공항처럼 보안 검사를 통과해야 해서 대기 시간이 길다. 게다가 하루 평균 2~3만 명이 방문한다. ‘거울의 방’이나 ‘왕의 대아파트’ 같은 메인 공간에는 사람들이 몰려 안에서부터 대기가 생긴다. 우리는 성수기 끝자락 주말에 예약 없이 갔으니 그 모든 대기를 감당해야 했다. 베르사유 궁전은 시간 지정 입장권 혹은 파리 뮤지엄 패스를 이용하면 빠르게 들어갈 수 있다. 가이드 투어도 전용 입구가 있어 대기 없이 훅 들어가더라. 이 모든 걸 가서 알았다.
밖에서 지칠 대로 지친 우리는 들어오자마자 식당부터 찾았다. 베르사유도 식후경인데, 가격대가 그야말로 궁전 급이었다. 꽤 고급스러운 레스토랑에서 비싼 음식과 디저트를 먹었지만, 왠지 볕 좋은 날 베르사유 정원에서 샌드위치와 커피를 여유롭게 즐기는 이들이 부러웠다. 그렇게 집에서 출발한 지 약 4시간 만에 우리는 베르사유 궁전에 입성할 수 있었다.
베르사유 궁전은 원래 루이 13세가 사냥을 즐기기 위해 세운 작은 별장이었다. 그러다 지금의 베르사유 궁전의 확장과 화려한 장식은 거의 루이 14세 때의 일이다. '절대 왕정'이라는 말을 들어봤을 것이다. 루이 14세는 스스로 '태양왕'이라 부르며 강력한 왕권을 휘둘렀다. 그 모든 활동은 베르사유 궁전에서 이뤄졌다. 그는 지방 귀족들을 불러들여 감시하고 통제했다. 하루가 멀다고 연회와 사냥을 즐겼다. 귀족들은 루이 14세처럼 빨강 하이힐을 신고, 가발을 쓰고, 얼굴에는 하얗게 분칠해야 했다. 연회 때의 자리는 지정석이었는데, 루이 14세의 총애도에 따라 수시로 바뀌었다. 귀족들은 왕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고, 나날이 왕의 권력은 강해졌다. 이때 프랑스의 재정 상황은 나쁘지 않았다. 여기엔 당시 재상 콜베르(Jean-Baptiste Colbert)의 공이 크다. 그는 프랑스의 수출을 늘리고 수입은 줄여 국가 재정의 기틀을 잡았다. 국가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자급자족할 수 있는 기술력 확보에 주력했다. 이때 이탈리아에서 들어온 기술 중 하나가 바로 '거울'이다. 덕분에 베르사유 궁전에는 거울만 350개 이상 설치된 '거울의 방'이 만들어졌다.
베르사유 궁전은 건축가 쥘 아르두앙-망사르(Jules Hardouin-Mansart)와 화가 샤를 르 브룅(Charles Le Brun)이 1678~1684년 사이에 완성했다. 이곳에는 약 2,300개의 방이 있으며, 그중 상당수는 지금도 일반인에게 공개되지 않는다. 루이 14세의 침대는 궁전의 정확한 중앙에 배치됐는데, 이는 그의 권력이 세계의 중심임을 상징한다. 루이 14세가 아침에 일어나 세수하고 옷 입는 모든 과정은 의식처럼 진행됐고, 귀족들이 지켜봤다. 궁전 건축비는 당시 프랑스 GDP의 5~10% 수준이었는데, 이 비용은 국가 재정을 크게 악화시켜 혁명의 불씨가 되기도 했다. 궁전 내부는 엄청나게 화려하지만, 하수도 시스템이 없어 위생은 좋지 않았다. 귀족들은 복도나 난로 뒤에 볼일을 보기도 했다. 루이 14세는 물이 병을 옮긴다고 믿어 평생 목욕을 거의 하지 않았다. 대신 향수와 파우더로 몸 냄새를 가렸다. 궁전의 회랑과 방에는 루벤스, 베르니니, 르 브룅 등 당대 최고 예술가들의 작품이 빼곡하다. 구석구석 화려하고 고급스럽지 않은 곳이 없다. 순금 도금 가구, 대리석 기둥, 벽화, 태양을 상징하는 문양이 가득하다. 적당한 게 없다. 그래서 오히려 감흥이 떨어진다. 그의 권력이 얼마나 강했는지는 가늠은 되지만, 인상이 찌푸려진다.
밖으로 나가 정원을 보니 더 압권이다. 정원의 면적은 궁전 본관의 약 10배에 달한다. 축구장 1,000개 이상 규모에 분수만 1,400개. 정원 분수대 운영을 위해 센강에서 물을 끌어오려 했지만, 기술적 한계로 항상 물 부족에 시달렸다. 실제 분수는 왕이 지날 때만 켜졌다. 뭐 하는 짓인지. 정원을 이렇게 크게 만든 이유는 인간의 질서와 권력으로 자연까지 다스린다는 의미를 담고자 했다고 한다. 참 나.
루이 15세와 16세에 들어서면서 왕실의 사치는 줄지 않았지만, 국고는 점점 바닥을 보였다. 농민과 시민은 세금 부담에 시달렸고, 귀족과 왕실은 여전히 베르사유에서 호화로운 생활을 이어갔다. 루이 16세 때에는 한 해 재정 수입을 모두 이자 갚는 데에만 썼다. 특히 마리 앙투아네트의 사치는 민중의 분노를 집중시키는 상징이 됐다. 그러다 1789년 7월 14일, 바스티유 감옥 습격으로 프랑스 혁명이 시작됐다. 1792년 왕정이 공식 폐지되고,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는 단두대에서 처형됐다. 왕이 떠난 베르사유는 방치되기 시작했고, 가구와 예술품은 대거 경매에 부쳐져 사라졌다.
해가 거의 질 때까지 베르사유 정원을 걸었다. 보면 볼수록, 알면 알수록 한숨과 탄식이 거듭됐다. 뭔가 멋진 걸 보면 감탄사가 나와야 하는데…. 걸으면 걸을수록 참으로 씁쓸한 산책이었다.
나오는 길에 기념품숍에서 루이 16세가 썼을 법한 권총 모형 한 자루를 샀다. 숙소에 돌아와서 동료들에게 자랑하니 한 후배가 그랬다. "와, 저걸 보면서 저런 걸 누가 사나 그랬는데 이걸 집에 와서 실제로 보다니!"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이 권총 모형 덕에 귀국길에 세관 검사까지 받아야 해서 나는 한 시간이나 늦게 공항에서 나와야 했다. 씁쓸한 귀국길이였다.
Sep,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