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동희 Sep 24. 2021

동쪽여자

어디든 갈 수 있는 용감한 날개와 큰마음을 꿈꾸는


내 이름은 동쪽여자, 뭐 큰 의미는 없지

아마, 남아 있는 이름이 그리 많지 않았을 거야


내 이름은 동쪽여자, 동쪽에서도 동쪽에 살았지

어리고 여렸지, 필름처럼 시간이 흐를 때


어디든 갈 수 있는

용감한 날개와

시작도 끝도 두렵지 않은

큰마음을 꿈꾸며


새벽 강 안개처럼

슬픔은 사라질거야

그저 나 멀리서 그대

안부를 물어요



작은 나무 책상 위에 발레리나 오르골이

조심스레 돌아가며 예쁜 멜로딜 스칠 때


내 이름은 동쪽여자, 동쪽에서도 동쪽에 살았지

어리고 여렸지. 혼자인 채 시간을 버틸 때


아무런 준비도 없이

어른이 되어버렸네

벗어나려고 달아나 봐도

이미 많은 걸 가졌네


한여름 소나기처럼

모든 건 지나갈 거야

그저 나 혼자서 꿈의

안부를 물어요


내 이름은 동쪽여자, 뭐 큰 의미는 없지

아마, 남아 있는 이름이 그리 많지 않았을 거야


내 이름은 동쪽여자. 동쪽에서도 동쪽에 살았지

어리고 여렸지. 필름처럼 시간이 흐를 때


-조동희, 〈동쪽여자〉, 2020


_

동녘 ‘동’에 여자 ‘희’. 나는 동쪽 여자다.

어릴 때는 내 이름이 그렇게 싫었다. 다른 여자아이들 이름처럼 예쁜 것도, 그럴듯한 깊은 뜻이 있는 것도 아닌 읽기 그대로 동쪽 여자였다. 집에 남은 이름이 별로 없었다는 말에, 더한 이름이 아닌 게 어딘가 위안하며 살았다.


이왕 동쪽 여자인 것 동쪽을 대표하는 여자가 되어도 괜찮으련만, 어릴 때부터 자립적인 생활을 반복하다 보니 나는 일부러, 때때로 의존적이 된다. 그럴 수만 있다면 어디 좀 기대어 쉬고 싶고 그렇게 울고 싶다.


요즘의 나는 세상을 너무 모르고 살았나 싶다. 아니 믿고, 믿고만 살았다 싶다. 그러나 한편 의심만 하며 중요한 걸 놓치고 사느니 믿고 아프고 말자는 생각을 한다.

그렇게 동쪽 여자는 무모하고 용감한 날개를 틔웠다.


비와 해의 시간은 동쪽 여자의 작고 완전한 우주다.

이 완전은 어쩌면 불완전을 말한다.


불완전하고 불안전한 우리가

완전해지고 안전해지는 시간.

슬픔이 사라지는 시간

모든 게 지나가는 시간.


동쪽 여자는 그 작고 투명한 우주 속에서,

무모하고 따뜻한 날개를 움트며

오늘도 꿈의 안부를 묻는다.

작가의 이전글 몸보다 큰 가방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