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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e Dec 01. 2023

덜컥 잡힌 워크숍

대표는 외로워

아... 어떡하죠? 무슨 핑계 없을까요?


점심 먹다가, 오래 알고 지낸 팀장 A가 큰일이라도 난 듯 물었다.

전날 점심시간에 덜컥 잡힌 워크숍에 가지 않을 명분이 없겠냐며 물어오는 거였다.


그날 점심시간은 매주 있는 리더십 미팅을 끝내고 다 같이 점심 먹는 자리였다. 리더십 미팅은 회사 내 팀장급 이상이 참여하는 주간업무회의 같은 거다.


날씨가 갑자기 추워져서 겨울에 관한 이런저런 담소를 나누다 스키장 이야기가 나온 것이다. 누가 언제 스키를 탔네, 자신은 초급이네 중급이네, 시즌권을 샀네 마네 하는 이야기를 하던 도중 갑자기 대표님이 불쑥 마디 던지셨다.


우리, 말 나온 김에 스키장으로 워크숍 갈까요?
.
.
.




잠깐의 정적을 느꼈다. 나는 알았다. 그 정적이 의미하는 바를.

대표님은 워크숍 안 간 지도 오래됐는데, 이 참에 진짜 한번 가자며 신나게 말씀하셨다.


우리 회사는 직원이 수십 명 정도 되는 작은 스타트업이다.

나는 여기서 기술 책임자 직무를 수행하고 있다.


나의 공격이 들어갔다.


팀장들만 가면 좀 그렇지 않을까요?
팀원들하고 다 같이 가는 게 아니면 좀 그럴 거 같은데요



정적을 느껴서이기도 했지만, 진심이기도 했다.

직원이 많은 것도 아니고, 근래 회사에 이런저런 업무가 많은 와중에 팀장들만 놀러 간다는 느낌을 주는 게 영 마음에 걸렸다.


그러자 대표님이 말씀하셨다.

음.. 다 같이 가는 건 일이 너무 커지는 건데...
아! 그러면 가서 내년도 목표수립도 할까요?
어차피 12월에 해야 하는데.
낮에 빡세게 업무하고 오후에 스키 타고.
.
.
.



놀러 가는 모습으로 비칠까 우려된다는 나의 명분은 이렇게 한방에 무너졌다.

그 이후 별 다른 의견이 나오지 않고 그 자리에서 바로 날짜가 잡히고 일사천리로 워크숍이 확정됐다.


그리고 하루가 지난 오늘, A가 앓는 소리를 하는 것이다. 내가 대꾸했다.

'어제 말하지 그랬어? ㅎㅎ'



그렇게 농담을 섞어 가며 갖은 명분을 찾다가 식사를 마쳤다.

사무실에 와서 미팅 일정을 잡다가 발견했다. 이미 아웃룩 일정에 떡! 하니 워크숍 일정이 잡혀 있는 걸.





지금 우리 대표님을 만나서 같이 일한 지 1년이 다 돼 간다. 내가 이 회사에 오게 된 가장 큰 이유도 사실 대표님이다. 항상 도전적인 삶을 살고 열정적으로 일하시는 분이다. 스펙도 좋은 분이지만, 난 그것보다 이 분의 삶의 태도가 마음에 와닿았다.


글을 쓰다 보니, 마치 대표님이 일도 생각지 않고 워크숍 가자는 거처럼 비칠 수 있지만 실은 이 회사에서 가장 일 열심히 하는 사람 중 한 명이다. 그도 그럴 것이 회사가 잘 되면 제일 득 보는 사람이고 회사가 못되면 가장 피해 보는 사람은 바로 대표다.


월급도 주고 일도 열심히 하시고 공짜로 스키도 태워 준다는데, 누군가는 안 갈 명분을 찾고 있다. 물론 나도 이해한다. 가고 싶지 않은 마음을.


그리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대표는 외로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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