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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e Nov 29. 2023

충분히 노력한 당신, 이젠 인정받아라

겸손은 미더덕이다

(출처) 어떻게 능력을 보여줄 것인가(잭 내서)의 프롤로그



얼마 전 추천받은 책을 보다가 이 문장을 만났다.

"충분히 노력한 당신, 이젠 인정받아라"


이 문장을 보는 순간 '나를 보고 하는 말인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사뭇 놀랐다. 책을 펼치다 뜻하지 않게 용기와 격려를 얻은 기분이었다.


그만큼 나는 내가 해오던 노력에 회의가 들던 차였다.


죠수아 벨의 지하철 역 실험

잠시 책 속으로 들어가 보자.

책은 죠슈아 벨이라는 사람의 특별한 실험 이야기로 시작한다.


죠슈아 벨은 수많은 상을 휩쓴, 천재라 찬사를 받는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이다.

그는 자신의 정체를 숨긴 채 어느 분주한 지하철역에서 바이올린 연주를 시작했다.  마치 거리의 음악가처럼.


과연 몆 명이나 그를 알아봤을까?

아니 과연 몇 명이나 그의 연주를 알아봤을까?


그는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적인 음악가다.

그가 킨 바이올린도 수십억을 호가하는 명품악기였다. 그날 그가 연주한 곡 역시 가장 경이롭다고까지 평가받는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 샤콘이었다.


모든 게 완벽했다.

그가 자신의 정체를 숨긴 것 빼고는.


이 실험을 기획한 사람은 수많은 관중이 모여들 경우를 대비해 미리 경호원까지 동원했다고 한다.


그런데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연주가 이어지는 1시간여 시간 동안 1,097명이 그의 앞을 지나갔지만 고작 27명 만이 바이올린 케이스에 소액의 연주비를 넣었다. 이들 조차도 연주는 거의 듣지 않고 돈을 넣자마자 자리를 떴다고 한다.


우습게도 그 실험이 있던 불과 사흘 전, 보스턴 심포니 홀에서 열린 이 사내의 연주회는 10만 원이 훌쩍 넘는 입장료에도 전석 매진을 기록했다고 한다.



능력은 절대 스스로 빛을 발하지 않는다.

책의 저자는 말한다.

"능력은 그 자체로 빛을 발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당신의 능력을 남들에게 알려주어야 한다."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이를 알리지 않으면 남들이 알지 못하며 남들이 가치를 모르기 때문에 능력에 맞는 대우도 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또한 이와 반대로 능력이 출중하다고 널리 알려진 사람들이 실제로는 명성만 못한 경우도 허다하다고 한다. 저자는 말한다.

"심지어 명성과 실제 능력이 무관하다는 명제는 전문 지식이 필수적인 분야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즉 능력이 있어도 이를 알리지 않으면 능력에 맞는 대우를 받지 못하며 능력이 조금 부족해도 잘 알리기만 하면 능력 이상의 대우를 받을 수 있다는 맥락이다.


책은 능력을 알리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알려 준다. 다음의 말과 함께.

"이 책은 내가 가진 능력을 효과적으로 드러냄으로써 당신이 원하는 대로 상대가 믿게 만드는, 완벽하게 주도적인 자기표현의 기술을 알려준다. 당신의 능력을 몰라주는 상대를 탓하지 마라. 능력 있는 프로페셔널로 대우받을 것인가, 무능력한 낙오자로 낙인찍힐 것인가는 온전히 당신 자신에게 달려 있다"



겸손이 미덕

다시 나의 이야기로 돌아오자.

보통 '겸손이 미덕'이라 하여 자신의 능력이나 업적을 스스로 드러내는 것을 꺼려한다. 특히 동양권에서는.


나 역시, 겸손을 갖추어야 할 하나의 덕목으로 생각하고 삶에서 실천하며 살아왔다. 간혹 보이는 겸손하지 못한 사람들을 보면 더더욱 반면교사 삼으면서 말이다.


하지만 책을 보면서 많은 것을 느꼈다.

겸손은 분명 미덕인 것은 맞지만 '지나친 겸손은 미덕이 아니라 미더덕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훗. 겸손이 미더덕일리는 없고 겸손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말이다. 특히 노력해서 성취한 업적과, 오랜 시간 갈고닦아 향상된 능력이 있다면 이를 잘 알려서  노력이 자기만족으로 끝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부족한 능력과 업적 부풀려서 포장하는 건 문제가 되며, 내 성격상 이런 건 하지 못한다.



나는 내가 해오던 노력과 도전에 회의가 들던 차였다

초반에 했던 말이다.


나는 요즘 대학원에 다니고 있다. 나이 50이 다 된 나이에 말이다. 교수가 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에 다시 학생이 되었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학교 간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힘에 부칠 때가 많다.

밤에 수업을 마치고 집에 가는 길엔 녹초가 된다.

집과 학교의 거리도 멀어서 집에 가면 한 밤중이다.


나는 언젠가부터 뭔가를 계속 시도해 왔다.

철이 좀 늦게 든 모양인지, 정작 공부만 해도 되는 학창 시절에는 그다지 열심히 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뭔가를 계속 시도하고 성취하면서도 계속 뭔가 부족한 것 같고 배우고 싶고 새로운 걸 시도하고 싶어 진다. 알면 알 수록 모르는 게 보이고 이루면 이룰수록 부족한 것 같다.


하지만 녹초가 되어서 집으로 가는 길에 간혹 내면에서 불쑥 튀어나오는 말이 있다.

"왜 이렇게 힘들게 살지?"


사실 이 나이에 더 안 배워도 내 삶에 큰 지장은 없다.

아니, 더 배운다고 해서 내 삶이 드라마틱하게 바뀌지 않는다라고 하는 게 더 맞을 거 같다.


사람은 계속 도전하고 발전해야 한다는 생각이 언젠가부터 자리 잡은 나에게도 50이라는 나이와 지친 체력은 간혹 더 이상의 새로운 도전은 무의미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이런 생각이 들던 차에 책의 한 구절이 나를 깨우친 것이다. 노력만 하지 말고 잘 알리기도 하자라고 생각하며 다음과 같이 다짐해 본다.


"그래! 나도 그간 노력하고 이룬 업적을 잘 가꿔보자!

나의 노력이 응당한 가치를 인정받아 그에 맞은 대우를 받게 하고 이것이 스스로에게 동기부여가 되어 다시 노력하는 힘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것. '노력-성취-인정'이라는 선순환을 이뤄 더욱 발전하도록 말이다."


이런 생각과 더불어, 지금까지 내가 해 온 크고 작은 노력과 업적이 뭐가 있는지 정리해 보고 그것들에게 생명을 불어넣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생각이 들자 갑지가 설레어졌다.



내 인생의 두 영역

'노력과 성취'라는 관점에서 보자면 나는 내 인생을 크게 두 영역으로 나누고 싶다.


대략 20대 중후반을 기점으로 해서 앞, 뒤로 나누는 것인데 곧 50살이 되니 딱 떨어지는 맛이 있게 25살을 기점으로 하는 게 좋겠다.



25살 이전의 나

25살 이전은 (물음표)로 표현했다.

딱히 뭘 성취했는.. 내세울 게 없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이 시기에는 제대로 노력이란 걸 해 본 적이 없는 거 같다.

과거의 나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노력과 성취라는 관점에서는) 부끄러울 지경이다.


인문계 가야 된다고 해서 인문계 고등학교를 진학했다. 고교시절 시험은 거의 벼락치기로 공부로 일관했다. 시험 날짜가 코 앞에 와서야 부랴부랴 모범생 모드로 전환했다. 체계적이고 지속적으로 부하지 않았다.


성적은 반에서 중상위권이었다.(당시 한 반에 학생이 60명 가까이 되었는데 대체로 10등대에서 맴돌았다) 가끔 눈에 띄게 좋은 성적이 나온 적도 있었다. 당시 내 기준에서 10등 이하로 가면 좋은 성적이었다. 20등 밖으로 밀린 적도 몇 번 있었다.


한 번은 국어시험을 전교 1등 한 적이 있었다.(고2 때 매주 국/영/수 돌아가며 주초고사란 걸 봤었다)

당시 담임이 국어선생님이었는데 나를 따로 불러 활짝 웃으며 칭찬해 주신 게 기억난다.


그러나 벼락치기 공부는 남는 게 없다.

시험 끝나면 즉시 잊어버린다.

제대로 정리한 서브노트도 없었으며 암기카드도 오답노트도 그 무엇도 정리한 게 없었다.


그러니 제대로 된 지식이 쌓였겠는가.

어림없지. 당장 눈앞에 닥친 시험을 위해 급하게 한 공부가 머리에 남아 있을 리 없었다.


주초고사나 월말고사는 어느 정도 커버가 가능했지만 호흡이 길고 지식이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있어야지만 고득점이 가능한 모의고사나 대입시험은 벼락치기로는 한계가 있었다.


(잠시 25살 이후로 넘어가자면) 40이 넘어서 준비한 기술사 시험에서는 나만의 서브노트, 암기카드, 오답노트 모두 갖췄다. 기술사 준비는 공부라는 걸 어떻게 해야 하는지 즉, 공부방법에 대한 인사이트를 얻게 된 과정이기도 했다.


지금에 와서 돌이켜 보면 학창 시절에 왜 그랬나 싶다.

당연히 원하는 대학에 가지 못했다.


20대가 되어서는 대학 1학년때부터 CC(캠퍼스 커플)가 되고 친구들과도 자~알 놀았다. 군입대를 앞두다 보니 뭔가 제대로 시작하기가 애매한 시기이기도 했다.


그렇게 25살 이전의 내 삶은 평범 그 잡채.

지금 시각에서 보면 한심하기도 한 그런 시기였다.



25살 이후의 나

25살 이후는 많은 변화가 있을 수밖에 없는 시기였으며 나 자신도 명확한 목표를 가지고 다양한 도전을 하고 뼈아픈 실패도 맛보고 운 좋게 의미 있는 성취도 많이 이룬 시기이다.


군제대 후 대학을 졸업했다.

연예도 하고 결혼도 하고 자식도 얻었다.

취업도 하고 (부산 살다가) 서울로 상경도 했다.


여러 회사를 다녔지만 직업(전문분야)처음부터 줄 곧 하나였다. 모든 직장에서 인정받는 직원이었으며 공부 열심히 하는 개발자였다.


전문분야로 책도 쓰고 이름난 월간지에 기술 칼럼도 수 차례 기고 했다.


자격증도 여러 개 취득했다.

쉬운 거부터 초고난이도 자격증까지.

물론 모두 내 전문분야의 자격증만 땄다.


지금은 스타트업 CTO로 근무하고 있다.

나이 50에 스타트업. 그것도 MZ세대 개발자들과 함께 고군분투하고 있다. 이것 역시 나에게는 새로운 도전이다. 정확한 직책은 VP(Vice President)다. VP는 이 회사 와서 처음 알게 된 직책인데 그냥 CTO라 보면 된다.


앞으로도 계속 나름의 도전을 이어나갈 예정이다. 앞서 밝혔지만 올해 대학원에 진학해서 주경야독하고 있다. 내년에도 새로운 목표를 세운게 있어서 바쁠 거 같다. 그리고 지금 이 글을 쓰는 행위 역시 내가 하는 도전 중의 하나다.


다음에 기회가 있다면, 지금까지 이런 나의 도전과 실패, 좌절 그리고 성공한 경험을 자세하게 글로 써 보고 싶다.


이렇듯 25살 이후의 나는 의도를 가지고 노력하고 도전하는 삶을 살았다. 그러나 딱히 내세울 생각은 해보지 않았다. 그리고  스스로를 제대로 칭찬해 준 적도 없었다.


이제 토닥토닥 나를 칭찬해 본다. 그리고 예쁘게 포장할 방법을 생각해 본다.



노력의 선순환

목표와 의도를  가지고 도전하는 삶은 아름답다. 그 도전이 거창하지 않아도 상관없다. 현재 자신의 기준에서 조금만 더 나아지기만 하면 된다. 도전해서 실패하면 그 나름의 배움이 있어 좋다. 성공하면 더 좋다. 남는 장사다.


그리고 도전만큼 중요한 게 하나 더 있다.

바로 나의 노력과 업적을 스스로 인정하고 널리 알리는 것이다.


다시 한번 되뇌어 본다.

노력하고 도전하고 실패하고 성취하자. 성취한 업적과 능력을 예쁘게 포장하고 드러내서 제대로 인정받자. 이것이 동기부여가 되어 다시 도전하는 힘으로 사용하자. 지속적인 노력과 성취의 선순환을 구축하자!


바로 '노력-성취-인정'의 선순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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