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티플 캄보디아, 뷰티플 앙코르와트
"캄보디아"라는 나라는 나에게 그저 킬링 필드였다. 앙코르와트 사원은 캄보디아가 아닌 다른 어느 곳인 듯했고. 그저 앙코르와트 사원만을 보고자 갔던 그곳에서 마주친 캄보디아 사람들을 보며 내가 알게 된 것들과 인연에 대한 나의 생각을 정리해 본다.
다양한 나라의 다양한 문화를 접했으나 이들의 그림, 압사라 댄스, 청아하고 맑은 아름다운 목소리는 다른 어느 타민족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뚝뚝을 타고 앙코르 유적지를 다니다가 만난 작은 꼬마 아이들이 "마담, 물건 하나만 사세요."라고 외치는 소리마저 너무나 청아하고 아름다워 소름이 끼칠 지경이었다. 앙코르와트의 후예들이 아닐 수 없다.
나도 어릴 때 한때는 사회주의 이론에 흥미를 가졌던 적이 있지만, 그게 전혀 현실과 다른 "이론"에 불과함을 알게 된 후 사회주의에 대한 어떤 흥미도 없었다. 특히 지구에서 홀로 남은 분단된 국가에 살고 있는 우리로서는 과장된 두려움도, 과장된 흥미도 가지지 않겠지만 작은 킬링필드(왓트마이)에서 마주친 모습은 폴포트 자신도 지키지 못했던 사상을 앞세워 피를 나눈 민족에 나쁜 짓을 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폴포트가 잘 살다가 지병으로 죽었다는 것이 여전히 분하다.)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으나, 당시에는 북한 냉면집도 있었다.
사회주의 국가인 캄보디아인들은 물질과 돈에 냉소적일 것 같으나 여느 민족들처럼 열정적으로 원한다. 비자 발급받을 때 여행자들에게 1~2달러씩 삥 뜯는 친숙한 모습도 보았고, 사찰에서 달러를 세고 있는 승려도 보았다. 내 아이를 앞장 세워 여행객들에게 뱀을 보여주며 돈을 요구하는 부모님들, 누군가의 이야기 속엔 자기 아이를 100달러에 데려가라는 엄마까지 등장한다. 이해할 수 있는 상황이지만 씁쓸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반대의 경험도 있었다. 유적지 들어갈 때 코코넛 판매하는 친구가 하나 사라고 했는데 내가 들어가서 들고 다니기 어려우니 나오면서 사겠다고 했더니 꼭 사달라고 했었다. 유적지를 다 보고 나가면서 그 친구를 찾았는데 없어서 여기저기 물어보고 있었는데, 그 친구가 어디선가 달려 나와 아주 큰 코코넛을 나에게 주면서 고맙다고 울먹거렸다. 그 코코넛을 먹으면서 나도 울컥하는 마음이 들었다. (이게 뭐라고 울먹여... 결국 사주지 않고 가버리는 사람들이 많았겠지만...) 앙코르와트 사원에서 페트병을 모으는 할머니께 적은 금액이나마 돈을 드리려고 했는데 할머니는 돈은 괜찮다고 페트병이나 달라고 하셨다. 그리고, 우리의 제임스 본드씨, 앙코르와트 사원 일출 때 1달러에 커피와 의자를 빌려주고 선불이 아니라 후불로 받는다고 해놓고 대여해 준 것도 까먹고 있던 어설픈 본드씨... ^^
지금 생각해도, 내가 애니 선생님을 타 프롬에서 만난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일 중 하나이다. 지구가 그렇게 넓고, 우리는 서로 다른 나라에 살며 1년은 365일인데 어떻게 필리핀인과 한국인이 앙코르와트 사원, 그중에서도 같은 시간대에 타 프롬 사원에서 마주칠 수 있었던 걸까? 선생님의 탄식처럼 세상은 좁다. 만날 사람은 만나게 되어 있고, 정리될 인연도 정리되게 되어 있나 보다.
여행하던 당시에는 Q양을 만나서 함께 여행을 하게 된 것이 서로 여행 경향이 비슷하고,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오래 감상할 수 있었던 것에 주로 감사함을 느꼈는데 이번에 정리를 하며 보니 현명하게 루트도 잘 짜고 열심히 다녔던 것 같다. 중간중간 가이드들의 프랑스어를 통역해 주어서 정보와 재미를 주었고, 무엇보다 압사라 앙코르 댄스를 열심히 배워 그 춤도 보여준 Q양이 앙코르와트 여행의 보물이었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인연이 이렇게 될 수 있었던 것은 내가 일 년 정도 책을 열심히 읽고 준비를 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고마운 Q양, 잊지 않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