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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봄소리 Jul 02. 2017

요한 슈트라우스와 함께 왈츠를

Vienna - Johann Strauss Apartment

'왈츠의 왕' 으로 불리우는 요한 슈트라우스. 그의 이름만 들어도 쿵짝짝 왈츠의 3박자 리듬과 무도회장에서 춤추는 여인들의 나폴거리는 치마가 연상된다. 요한 슈트라우스는  가족이 모두 음악 활동을 했고, 이름이 똑같았기 때문에 정확하게 서술하려면 요한 슈트라우스 중 누구인지를 언급해야 한다.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를 작곡한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작곡가는 요한 스트라우스 2세이다. 요한 슈트라우스 1세는 '왈츠의 아버지'라고 불리우며 빈풍의 춤곡의 기초를 만들었다. 1세가 작곡한 곡 중에는 '라데츠키 행진곡'이 유명하다. 그는 자식이 음악활동 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었지만 장남인 요한 슈트라우스 2세는 아버지보다 더 큰 성공을 거둔다.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빈의 숲 이야기'처럼 오스트리아와 비엔나를 상징하는 음악을 다른 나라에 빈 왈츠와 함께 널리 전파시켰기 때문에, 오스트리아가 사랑하는 국민 작곡가이다.



비엔나 시내에 남아있는 요한 슈트라우스의 아파트는 1860~1870년에 중반까지 오페가 가수 출신이었던 부인 제티 (Jetty)와 함께 살았던 곳이다.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빈의 숲 이야기'와 같은 대표곡이 바로 이 집에서 탄생하였다. 현관문 앞에 있는 초인종 이름에 '슈트라우스'가 보인다. 이젠 초인종을 누르고 박물관을 방문하는 것이 낯설지 않다. 하단에 있는 뮤지엄 버튼을 누르니 문이 열렸다.



음악가가 살았던 집이라고는 하지만 이미 오래전 일인데도 불구하고, 방문하는 집마다 각 음악가의 음악의 특징만큼 분위기가 각양각색이다. 조용하고 한적한 분위기에 쓸쓸한 고독을 느낄 수 있엇던 베토벤의 집과는 달리, 요한 슈트라우스의 집은 화려하면서도 포근했다.  그리고 19세기 말까지 활동하였기 때문에 필름으로 찍은 사진, 캐리커쳐 자료들을 볼 수 있었고, 시대의 흐름을 느껴볼 수 있었다.


요한 슈트라우스가 사용했던 악기들 (피아노, 오르간, 바이올린)


요한 슈트라우스 2세는 아버지가 자신의 음악 활동을 반대했었고, 가정을 잘 돌보지 않아서 아버지와 사이가 안좋았는데, 동명으로 동시대에 활동하였기 때문에 대중들에게 아버지와 경쟁하는 것처럼 보여지기도 했다.   아버지의 사후에는 아버지의 악단을 슈트라우스 오케스트라로 통합하고, 인기가 더 높아지자 형제인 요제프와 에두아르를 함께 음악 활동을 하게 된다. 온 가족이 음악과 함께 했으니 왈츠의 왕을 넘어선, 슈트라우스 왕조라고 불리워질만 하다.


캐리커처 스타일의 일러스트
당시 사교계에서 유행하던 왈츠를 추는 그림
요한 슈트라우스의 공연 포스터
요한 슈트라우스와 그의 가족에 대한 사진 자료를 많이 볼 수 있다
요한 슈트라우스의 데스 마스크


어느 귀족의 집을 찾은 것과 같이 고풍스럽고 화려한 악기와 가구들로 화려했던 슈트라우스의 집을 구경하면서 과연 그당시 기업수준으로 번창했던 슈트라우스 가문의 음악활동과 왈츠 문화의 번성함을 실감할 수 있었다.


새해가 되면 우리나라에서는 보신각의 종이 울리듯이 비엔나에서는 왈츠 음악이 울려퍼지고 사람들 모두 왈츠에 맞춰 춤을 춘다고 한다. 오스트리아 사람들에게 기쁘게 새해를 맞는 음악이 바로 왈츠라는 것을 보면 요한 슈트라우스의 위상과 오스트리아 사람들의 그의 음악에 대한 사랑을 짐작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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