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enna - Haydnhaus
오스트리아 출신의 빼놓을 수 없는 음악가, 교향곡의 아버지 하이든의 집을 비엔나에서 만나 볼 수 있다. 비엔나 외곽 마을에서 살던 하이든은 1797년 65세의 나이로 이사하여 1809년 5월 31일 사망했다. 마지막 거주지였던 이 곳에서 '천지창조'과 '사계'가 작곡되었다. 사후 200주년 기념으로 리모델링을 해서인지 비엔나에 있는 다른 작곡가의 집들보다 자료와 설명이 풍성하게 잘 되어 있다. 특히 1800년경의 정원을 복원한 하이든하우스의 작은 정원은 따뜻한 정감을 불러 일으킨다.
전시장에는 하이든의 음악과 생애에 관련된 자료를 만나 볼 수 있다. 하이든은 이 곳에서 거주했던 생애 마지막 시절 음악가로서 국제적인 명성을 가졌기 때문에 국내외 많은 방문객들이 하이든에게 경의를 표했다고 한다. 방문객들의 하이든에 대한 존경에 대한 기록 또한 하이든 음악의 위대함에 대한 많은 단서를 제공한다.
하이든은 "나의 창의력은 내가 마치 피아노인듯이 나를 연주하네" 라고 얘기할정도로 아침부터 그가 만족스러울 정도의 표현이 될 때까지 작곡을 멈추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생애 마지막시기, 육체적으로 나약해지고 작곡의 어려움을 겪게 된 그는 "나는 내 모든 힘이 없어지고, 약하다" 라는 노래의 멜로디를 마지막 방문 카드에 남겼다.
하이든은 사후 무덤에서 그의 머리를 도둑 맞은 적이 있다. 한 귀족이 하이든의 음악적 천재성에 대해 뇌를 조사하고 싶어서 계획한 범죄였는데, 유럽전역에서 팔려다니던 하이든의 머리는 결국 1954년 6월 유해반환 소송에 승소하여 조국에 품에 돌아왔다. 무려 머리를 도둑맞인지 145년만의 일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동안 하이든의 몸과 함께 했던 가짜 머리도 함께 안치되어 현재 하이든의 무덤에는 두 개의 머리가 존재한다. 음악적 유명세가 빚어낸 웃지못할 비극적 에피소드이다.
하이든의 열렬한 팬으로도 알려진 브람스는 하이든의 피아노를 인수하기도 했던 인연을 갖고 있는데, 하이든하우스에서 브람스의 가구와 같은 브람스 관련 전시품도 만나볼 수 있었다. 브람스가 비엔나에서 살았던 적이 있었지만 현존하지 않기 때문에 하이든하우스에 전시하게 되었다고 한다. 브람스에 대해 하이든하우스의 영구 숙박객 (permanent guest)라고 표현한 안내문이 재미있다.
하이든은 친절하고 근면한 성품으로 사람들이 그를 '파파 하이든'이라는 애칭으로 불렀다. 하이든의 음악은 장학퀴즈의 음악이었던 트럼펫 협주곡 3악장이나 큰 소리로 잠든 청중을 깨웠다는 일화로 유명한 놀람 교향곡으로 친근하다. 하지만 정작 그의 삶이나 음악적 위대함은 다른 작곡가에 비해 많이 조명을 못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말년에 큰 성공을 얻었지만 농가에서 태어나 가난과 아내와의 불화 등 적지않은 시련을 많이 겪었다. 하지만 음악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고 성실함과 풍부한 음악적 아이디어로 수많은 명곡을 작곡했다. 파파 하이든의 음악에는 항상 밝은 에너지와 넓은 포용력이 느껴진다. 그의 음악을 들으면서 유명세에 가려 너무나 평범하게 느껴졌던 음악 그 이면의 혁신을 떠올려본다. 파파 하이든,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