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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봄소리 Sep 20. 2017

운수 나쁜 날, 하지만 가장 완벽한 날

<영화 '어 퍼펙트 데이' 리뷰>

** 이 글은 브런치 무비패스 리뷰이며, 영화의 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


여기, 다섯명의 남녀가 한자리에 모여 무언가를 바라보고 있다. 과연 무엇을 바라보고 있을까.

그들이 바라보는 대상은 우물에 빠진 한 남성의 시체이다.

이 영화는 우물에 빠진 시체를 건져서 마을 식수의 오염을 막기 위한 하루 동안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죽은 사람을 물에서 꺼내는 것은 사실 별 대단한 일이 아닌데 이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수많은 이야기를 점층적으로 만나게 된다.


이 영화의 배경은 발칸반도이다. 전쟁이 벌어졌던 상황에서 전쟁의 상흔을 전쟁을 벌이는 당사자가 아닌

구호요원의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이 영화만의 독특한 시선이다. 구호요원에게는 많은 사람의 생명을 구할수 있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하지만 전쟁을 치룬 사람은 자기보호를 위해 지극히 이기적인 상황이된다. 시체를 건져올리기위해 밧줄을 빌려달라는 요청을, 마을사람들은 교수형을 하려면 밧줄이 필요하다고 거절한다. 전쟁에서는 삶보다 죽음이 더 우선순위를 갖게 된다.


축구공을 친구들에게 뺏기게 되어 우연히 구조요원과 만나게 된 소년은 전쟁의 슬픔을 직접적으로 노출시키는 하나의 표상이다. 전쟁으로 인해 부모가 살해당했는데도 그 사실을 모르는 아이는 부모를 찾기위해 다시 얻게된 공마저 판다.  여기는 돈이면 뭐든지 할 수 있다고 얘기하는 소년에게 구호요원은 자신이 몸 속에 숨기면서 아꼈던 비상금을 소년의 꿈을 위해 건네준다.


거리 곳곳에 매복되어 있는 지뢰는 이 영화의 코미디적인 요소를 더 부각시킨다. 동물시체가 거리에 쓰러져있을때 어느 방향으로 가야하는지 선택을 위해 고민하기도 하고, 지뢰를 피하기 위해 이동하는 동물의 뒤를 따라가는 동네 할머니를 쫓아 가기도 한다. 전쟁을 마냥 어둡고, 치열하고, 극한 상황으로 몰아가기 보다는 이 영화는 전쟁이라는 상황이 벌어졌을때 일반인들의 심리적 변화, 민족간의 갈등, 가족간의 이별, 위험 요소에 대한 대처 방안 등을 담담하게 서술한다.


발칸반도의 한 마을이라는 고정된 장소에서, 시체 꺼내기라는 목적으로 계속 벌어지는 에피소드의 체감속도는 느릴수도 있다. 하지만 영화 중간중간의 하드락 음악 사운드는 보여지는 건조한 영상과 어찌나 잘 어울리던지.

특히 마릴린 맨슨의 스윗 드림이 나오던 장면이 인상적이다.


시체를 꺼내고자 했던 그 모든 노력이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법률적이고 행정적인 절차때문에 무용지물이 되고 또 다른 미션을 위해 떠나는 길목에서도 최악의 상황이 현실이 되는데...

"정화조를 정비 하기 위해서는 비만 내리지 않으면 돼" 라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비가 쏟아지는 최악의 상황. 하지만 이 비 덕분에 오히려 우물이 범람하여 그토록 꺼내기 어려웠던 시체가 자연스럽게 물길에 떠밀려 꺼내지는 상황을 만든다. 이 아이러닉하면서도 완벽한 조화가 있는 유쾌한 플롯에 영화관을 나서면서 이 영화가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결국 구조요원 팀의 입장에서는 미션을 수행하지 못했다.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미션도 최악의 상황이다. 하지만 이 하루가 과연 실패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들은 전쟁으로 인한 소년의 아픔과 꿈을 발견했으며, 이타심을 상실한 마을 주민들의 행동을 발견했고, 지뢰를 찾을 때 동물을 이용하는 지혜를 배웠으며, 신뢰하지 못했던 동료들을 더 이해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하루 동안에 경험하게 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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