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은 그대로인데, 상황이 달라졌다

by 소담

‘정체불명’이라는 말이 입에 착 붙진 않는다.
그렇다고 낯설지도 않다.
요즘은 순간순간
그 말을 되뇌어보곤 한다.


묘하게 위안을 받는 순간들이 있다.
여전히 무의식적으로
뭔가가 되려고 애쓰는 내 관성을
그 단어 하나로 멈춰세우는 느낌.


그럴 때면
이 모호한 세상에
나를 살짝 내려놓게 된다.
멍해지고, 조금은 편안해진다.
조금 인위적이고 어색하지만,
괜찮은 순간.


어릴 때,
나는 나를 보호하기 위해
내 나름으로 관계 맺는 방식을 세웠다.

친해지기 전부터
이 관계가 오래 갈 수 있을지
미리 가늠해보는 습관 같은 것.
그게 나를 지키는 방법이었다.


그런데 그게
이제는 되려 나를 고립시키는 것 같기도 하다.

내 생각은 그대로인데
상황이 바뀌었다.

그 생각이 나를 지켜주던 시절은 지나갔고,
지금은 오히려 나와 부딪히는 때가 된 것 같다.


그 생각을 지키자니
내가 내 안에 갇히는 느낌이 들고,
그 생각을 바꾸자니
낯선 나를 만나야 할 것 같은 두려움이 있다.


이런 고민을
마흔 즈음에 하게 되는 건
나만 그런 건 아닐 거라 믿고 싶다.
그냥 그런 시기 같기도 하다.


예전 같으면
이런 생각이 들면 뭔가 정리하거나
결론을 내야 할 것 같았는데,
지금은 그냥
이런 흐름 속에 있다는 걸
적어두는 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하기로 한다.


그 말이 다시 떠오른다.

정체불명.


아직 익숙하진 않지만,
지금의 나를 설명하기엔
가장 조용하고, 정확한 말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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