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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e Han Mar 07. 2022

자장가 재생 오류

Sep. 2, 2019

< 마이애미비치 어디쯤에서 >

아내는 내 자장가를 들으면 금세 잠이 들었다. 원래 그러한 목적으로 불려지는 노래를 들으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인지, 아니면 내 음성이 보내는 시그널에 머릿속을 가득 채운 생각들이 사라져 숙면에 들 준비가 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그녀는 내가 어떠한 노래를 불러주든 레드썬 수준으로 빠르게 단잠에 빠졌다.


사실, 아내와 결혼하기 전에는 그녀가 언제 자장가를 불러달라고 할지 몰라서 이따금 새로운 레퍼토리를 준비하곤 했었다. 굳이 매번 다른 노래를 불러줄 필요는 없었지만, '존레논 곡은 너무 자주 불렀지? 이번엔 유재하 노래를 해줄까?' 하는 식이다. 어떤 노래는 가사를 찾아 외우기도 했다.


다행히 한 침대에서 생활하기 시작한 후로는 결혼 전보다 가볍게 잠자리에 든다. 그래서 내가 자장가를 불러줄 일도 드물게 됐다. 쓰지 않는 근육이 퇴화하듯, 자장가로 종종 불러주던 노래도 이제 가사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래서 가끔 아내가 잠들지 못하면 어릴 때 부르던 동요가 먼저 떠오르곤 한다.


"남편, 나 잠이 안 와. 자장가 불러줘"

"엄마가 섬그늘에 굴 따러 가면~아기가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 바다가 불러주는...... 흐읍 큭 ㅋㅋㅋㅋ ㅋㅋㅋㅋ"

"왜? 여보 왜 그래?"

"크흡 짜장 노래를 불러준댘ㅋㅋㅋ"


준비되지 않은 레퍼토리는 이런 예상하지 못한 사고를 일으키기도 한다. 처음으로 아내가 내 자장가를 듣고 잠들지 못 한 밤이다. 심지어 내 잠도 달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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