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이쪽에 섰나
내가 민주당 국회의원 보좌진으로 일한다고 말하면 주변에서 놀라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왜 하필 민주당? 의외라는 반응이다. 그럴 때마다 설명을 해야 하는 상황이 어색하다.
탈북민들은 대체로 정치성향을 표현하지 않는다. 그중에서도 민주당을 지지하는 사람은 드물다. 나처럼 글을 쓰면서 자기 정치적인 생각을 밝히거나 국회라는 정치공간에서 일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그 반대로 정치성향을 표현하는 탈북민 중에는 보수적인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나는 탈북민 사회에서 이단아에 가깝게 취급될 때도 있다. 이북에서 온 사람들에게서조차 어떻게 민주당을 지지할 수가 있느냐고, 간첩이 아니냐고, 그럴 거면 왜 탈북했느냐는 질문까지 받았던 적이 있다. 그만큼 탈북민 사회에서 민주당은 탈북민이 기웃거릴 공간이 아니라는 인식이 퍼져 있다. 평범한 한국 사람들조차 탈북민은 모두 보수적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여러 가지 이유로 탈북민들에게 손을 내미는 사람들 대부분은 정치적으로 보수성향이다. 탈북민들의 상당수는 그런 보수성향 사람들에게 경제적인 도움이나 취업 같은 도움을 받는다. ‘줄을 잘 서야 된다’는 세간의 이야기가 있지 않은가. 내가 민주당 국회의원 보좌진으로 일한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지나가는 말로 한마디씩 던진다. 왜 민주당이냐고, 한국에서는 줄을 잘 서야 한다고. 민주당이 아니라면 도와주겠다는 사람도 있었고, 민주당만 아니면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을 연결해 주겠다거나 추천해 주겠다는 사람들도 있었다. 만약 내가 보수정당을 택했다면 어쩌면 이력서를 붙들고 그렇게나 좌고우면하지 않았을 수도 있을 것이다. 취업 걱정을 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민주당을 택했고, 그런 선택이 어렵지도 않았다. 그래도 탈북민이 민주당에서 버텨 내는 건 외롭기도 하고 어렵기도 하다. 민주당이나 진보진영에 있는 사람들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아직까지는 관심보다는 신기해한다. 내 처지라는 게 이렇다. 나는 북에서 왔지만 빨갱이는 아니라는 ‘인정투쟁’을 해야 하고, 동시에 보수 쪽 사람들에게는 나는 민주당에서 일하는 탈북자지만 빨갱이는 아니라고 해야 하는 것이다.
나는 그저 약자 편이다. 내가 천하의 약자였으니까.
동병상련하는 마음으로 약자 편을 드는 진보적 어젠다에 이끌렸다. 대학생 시절부터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그랬다. 당시 우리 사회의 주요 이슈들을 정치가 해결해 주길 바라는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한국 사회를 배워 나갔다. 나는 그들의 이 야기를 경청했고 그들이 말하려고 하는 상황을 목격했다. 동의할 수 밖에 없는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 불안한 일자리에서 언제 해고될지 몰라 걱정하는 사람들,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은 사람들, 비정규직이어서 하청노동자라서 부당한 대우를 받은 사람들, 먹고살 걱정이 막막한 사람들,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하소연할 데 없어서 1인 시위라도 하는 사람들, 불안한 남북갈등 말고 평화적 교류를 바라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더 잘 듣는 쪽이 민주당이었고 진보 쪽이었으므로 나는 그저 자연스럽게 거기에 섰다. 보수든 진보든 통일을 원한다. 하지만 같은 목적지를 가는 방법이 사뭇 달랐다. 나는 여전히 고향에 돌아가는 꿈이 있는데, 대결보다는 교류를, 더 강한 제재보다는 더 강한 협력으로 평화통일에 힘쓰려는 사람들 쪽에서 내 꿈을 키워 가고 싶었다.
이북에 머물던 소년 시절 나는 장마당을 다니며 ‘대한적십자사’, ‘유엔’이라고 적힌 쌀 마대를 자연스레 목격했다. 아버지가 미국에서 들여온 옥수수를 배급으로 받아 오면 행복해하곤 했다. 알맹이가 손톱만큼 눈알만큼 컸다. 옥수수와 쌀이 미국에서 들어왔다는 소문이 마을에 퍼진다. 그러고 나서 조금 지나면 한동안 받지 못했던 배급을 받는 것이다. 덕분에 식량 가격도 조금 낮아져서 시장에서 평소보다 싸게 식량을 구할수 있는 상황이 만들어졌다. 그 대부분이 인도주의 목적으로 북한에 보내진 식량이었다. 이런 인도적인 지원은 인도적인 수혜를 낳는다. 그런 수혜를 직접 체험한 내 입장에서는 당연히 인도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이북으로 쌀을 보내면 군인들과 관료들만 그 쌀을 먹는다고 반대하는 목소리를 나도 안다. 정치가 작동하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보기에 소위 민주 진영과 보수 진영의 차이점이 이 부분에서 갈라지는 것 같았다. 군인도 사람이다. 사람이라면 먹어야 하는 게 아닌가. 게다가 혈기가 왕성해서 허기를 더 느끼는 나이의 사람들이다. 좋은 쌀을 군인들이 먼저 먹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도적 지원 덕분에 어딘가에 묵혀 둔 쌀이 시장에 돈다면 좋은 일이 아닐까.
내 이력서에는 ‘기독교’ 그리고 ‘통일 활동’이라는 단어가 적힌다.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긴 내 인생에서 신앙심을 빼놓을 수가 없다. 그리고 언젠가 다시 내 고향으로 되돌아가고 싶은 꿈이 있다. 그 꿈을 위해서라도 통일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탈북자가 기독교와 통일 활동이라니, ‘빼박’으로 보수파라는 인상을 풍긴다. 그래서 이번에는 민주당 쪽 사람들에게 나는 당신들이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애써 증명해야 했다.
내가 어째서 민주당을 선택했는지 민주당을 싫어하는 사람에게도, 민주당에서 일하는 사람에게도 설명해야 하는 상황, 이게 내 처지다.
(*이 글은 제가 쓴 책 「아오지까지」제2장에 나오는 <나는 왜 민주당인가>챕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