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노트, 태도의 언어
태도는 몸의 언어, 마음의 언어다. 상대방은 태도로 나의 마음을 읽는다. 김지은 기자의 책 ‘태도의 언어’ 그가 인터뷰하면서 만나왔던 유명인들의 태도의 언어와 그의 기자 생활속에서 경험하고 배웠던 태도의 언어를 기록했다.
저자는 배우 김혜수를 인터뷰했다. 어린 나이부터 대스타로 살아왔던 배우 김혜수는 자신의 약점을 ‘보편성’의 부족이라고 말한다. 또래와 다른 스타의 삶을 살아왔기에 또래와 다르지 않다는 ‘보편성’을 확보하려고 의식적으로 빈 곳을 채우려고 노력한다고 말한다.
내가 배우 김혜수를 직접 본 것은 2016년 종로의 한 한옥카페 강좌에서 였다. 나의 직장 상사였던 대표님의 강의였다. 대표님은 라캉의 정신분석 연구자이며 정치컨설턴트다. 강의 주제도 다소 어려운 내용이었다. 그런데 배우 김혜수가 강의를 들으러 왔다. 배우 김혜수는 달랐다. 평범한 가죽 후드 자켓을 입었는데 아우라가 나왔다. 그런데 이 강의를 왜 들으러 왔을까 궁금했다.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니 그냥 궁금해서 들으러 왔다고 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배우 김혜수의 ‘빈 곳을 채우려’는 노력이었나 싶다. 어쨌든 배우 김혜수 멋지다.
피겨스케이팅 선수 차준환은 넘어질 때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나는 길 위에 있고, 어차피 이건 과정이니까.”라고 말하는 차준환의 태도는 계속 넘어지는 내게도 울림을 준다. <막돼먹은 영애씨> 배우 김현숙씨는 “불행은 남 탓을 할 수 있으나, 행복은 남에게서 찾을 수 없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행복은 자신에게서 찾아야 한다는 말, 찐이다.
<유퀴즈>에 출연한 데니스 홍 미국 UCLA 교수는 로봇을 만든다. 로봇이 넘어지는 영상들을 보면서 깔깔깔 웃으면서 말한다. 로봇이 넘어지는 건 실수가 맞지만 그는 “넘어졌기 때문에 안 넘어질 수 있게 됐다”고 말한다. 넘어질 때마다 업그레이드되기 때문이라는 말이다. 그러면서 “경험이 많아야 똑똑해진다.”며 사람에게도 실패는 축복이라고 말한다.
“힘을 내요. 슈퍼 파~월~!”로 유명한 방송인 김영철은 어머니에게서 슬픔을 웃음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힘을 배웠다고 한다. 티비 화면에 나오는 김영철은 때론 가벼워 보이기도 하고 밉상스러운 모습으로도 나오지만 그는 늘 웃음을 준다. 나도 오랜 시간 슬픔을 웃음으로 승화시켜왔다. 고통의 경험을 고통스럽게 말하는 건 그 자체로 고통이다. 사람들은 내게 가끔 말한다. 북한에서의 삶, 탈북, 모두 고통스러웠을 일인데 어떻게 웃으며 담담하게 이야기하느냐고. 어떤 이들은 차라리 고통스러운 기억을 잊고 말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더욱 많이 말하고자 한다. 내 힘은 여기에서 나오기도 한다. 지금의 김영철을 만든 건 그의 노력이었다. 저자도 노력해서 얻어지는 행복, 그 힘을 한번 믿어보기로 한다고 말한다. 나도 믿어보기로 한다.
피겨스케이팅 선수 김연아는 빙판위에 서서 음악이 시작되기 전에 두 손을 모으고 잠시 기도를 한다. “오늘도 이렇게 건강하게 두 발로 빙판에 서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얼마나 멋진 기도인가. 그는 좋은 점수를 달라고, 이기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않는다. 간발의 차이로 졌을 때도 “나보다 금메달이 더 간절한 선수에게 갔다고 생각해요.”라고 말했다. 저자는 김연아 선수를 끝내 인터뷰하지는 못했다. 기자가 아니라 팬으로 그를 동경하기로 한다.
저자의 고교시절 한국사 선생님은 수업 끄트머리에 칠판에 이렇게 써 놓았다고 한다. ‘신은 한쪽 문을 닫아놓을 땐, 반드시 다른 한쪽 문은 열어놓는다.’ 그러고선 “인생에서 절대적인 건 없어요. 상황이 그렇게 만들뿐이지. 한 발짝 떨어져서 바라보는 훈련을 해야 해요.”라고 말했다. 신이 실제로 다른 문을 열어놓는지 알 수는 없으나, 어쨌든 저자는 의대라는 꿈 대신 신이 마련해둔 다른 한쪽 문을 열었고 기자가 됐다고 말한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는 말도 아마 이런 의미가 아닐까. 어떤 말로 표현을 하든 짧은 인생을 돌아보면 어쨌든 다른 문,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나는 믿는다. 다른 문이 어떤 경로로 나에게 찾아오든 내게 온다. 이런 믿음으로 나도 누군가에겐 그런 경로가 될 수 있다면 그런 인생 또한 한 번쯤 살아볼 만하지 않겠는가. 인생은 ‘엇박과 정박’이 교차하고, 혼재하고, 직조하는 그런 삶의 연속이라는 생각이다. 김현숙의 말처럼, 이런 엇박과 정박의 인생속에서 불안을 느끼는 것도 나 자신이고, 행복을 찾는 것도 나 자신이다.
저자는 손석희 선배와의 5개월 남짓 ‘시선집중’ 프로그램 참여 경험을 소개하면서 일에서의 태도를 말한다. 손석희와 함께 일하는 것이 엄청난 행운이었지만 미처 준비되지 않았었다고. 그리고 그런 행운을 만드는 건 결국 일에 대한 태도임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일에 ‘부업’같은 건 없다.”고 “내 이름을 걸고 하는 그 모든 일은 ‘전업’”이라고. 저자의 경험이 내게도 많은 인사이트를 준다.
나도 어떤 일에는 ‘전업’으로, 또 어떤 일에는 ‘부업’으로 생각해왔다. 전업은 최선을 다해야 하고, 부업은 적당히 해도 되는 일쯤으로 여기는 것.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을 고쳐먹었다. 내 이름이 들어가는 모든 일을 ‘전업’처럼 해야겠다고. 일에 대한 태도를 배운다. 저자는 퇴직하는 선배가 발행한 마지막 뉴스레터의 글을 소개한다. 몽테뉴의 <수상록> 속 한 구절이다.
“인생의 가치는 삶의 길이에 있지 않고, 그 삶을 무엇으로 채웠느냐에 있다. 하지만 아무리 오래 살아도 인생에서 그 가치를 찾지 못할 수도 있다. 우리가 인생에서 가치를 발견하느냐 못하느냐는 몇 년을 살았다는 데 있지 않고, 그것을 얻기 위해 얼마나 애썼는가에 달려있다.”
그렇다. 인생의 가치는 내가 그 가치를 위해 얼마나 애썼는가에 달렸다는 말. 나는 얼마나 애쓰고 있는가 스스로 질문을 해본다. 일찍이 공자는 누구에게서나 배울 점이 있다고 말했다. 모든 건 나의 태도에 달려 있음을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