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향민 ‘불법 송금’을
‘민생 투자’로 바라보자

by 조경일 작가

독일의 법학자 엘리네크(Georg Jellinek; 1851~1911)는 법은 도덕을 기초로 형성된 것이지만, 이 법의 규율은 ‘필요한 최소한’에 그쳐야 한다고 했다. 법은 도덕의 최소한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분단된 한반도에서 법은 과도하게 적용되어 종종 이 도덕을 베는 칼이 되곤 했다. 국가보안법이 그래왔다. 지난 12월 2일, 서울북부지법은 북한의 가족에게 송금한 혐의(외국환거래법 위반 등)로 기소된 북향민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는 사실상 동일 혐의에 대한 사법 사상 최초의 무죄판결이며, 그동안 실정법 아래서 불법인 줄 알면서도 송금해야 했던 북향민 사회에 중요한 메시지를 주는 판결이다.


재판부는 A씨가 불법송금을 업으로 하는 사람이 아니라며 무죄를 선고했는데, 사실상 북쪽에 남은 가족의 생계를 위한 부득이한 행위를 단순히 불법으로 규정하는 데에 무리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통일부도 이 사안과 관련 북향민들의 북한 내 가족 대상 송금에 대해 법률적인 문제와 인도적 문제가 균형적으로 고려돼야 한다고 밝혔다. 나는 이번 판결을 단순한 법리적 해석을 넘어, 분단 체제가 만들어내는 구조적 폭력을 성찰하고 북향민들의 존재론적 위치를 재정립할 기회로 생각한다.



동아줄이자 체제 균열의 씨앗


먼저 우리가 직시해야 할 사실은 북향민들이 보내는 돈의 성격이다. 남쪽에 내려온 가족이 북쪽에 남은 가족에게 송금하는 돈이지만, 나는 이것을 단순한 화폐의 이동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북한에 남은 가족들에게 이 돈은 굶어 죽어가는 생명을 살리는 수혈이면서, 무너진 배급망을 대신해 스스로 삶을 개척할 수 있도록 하는 자본이 된다. 실제로 북향민들이 가족들에게 보낸 돈은 장사 밑천이 되며, 그 이윤은 다시 가족의 입에 들어갈 식량이 된다. 즉, 송금은 북한 주민의 자생적 시장화 과정을 추동하는 강력한 지하경제의 동력이 된다는 말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돈과 함께 흘러가는 정보다. 북쪽 가족들에게 전달된 자금을 통해 북한의 가족들은 남한 사회의 실상을 간접적으로 체험한다. 물론 이미 북한 사회에 한류가 스며들어 남한 사회 실상에 대해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 남조선으로 탈북한 가족들이 돈을 보낸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이미 북한 당국의 체제 선전은 무너졌다.


이 과정에서 흥미로운 사회적 현상들도 생겨난다. 과거에는 '배신자 가족'이라며 처벌받고 감시받던 이들이 송금받은 자본의 힘으로 생활이 개선되고 사업 자금으로 활용되면서 재평가받고 있다. 이렇다 보니 남한에 친척이 있는 북한 주민들이 역설적으로 주변에서 인기가 있거나 부러움을 사는 상황도 연출된다. 이는 배급제가 붕괴된 사회에서 남한의 가족이 새로운 출구가 되었음을 의미하며, 결과적으로 북한 주민들에게 남한 사회에 대한 동경을 낳고 폐쇄된 체제에서 균열을 일으키는 씨앗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즉 북향민들의 송금은 그 자체로 가장 효과적인 대북 심리전이자, 아래로부터의 자금 유통의 루트가 된 셈이다.



북한 당국의 이중성과 남한 경찰의 과잉 수사


북한 당국의 태도 또한 이중적이다. 겉으로는 외부 정보와의 접촉을 엄격히 통제하며 남한에 가족이 있는 경우 감시도 하고 송금받은 사실이 확인될 경우 압수하고 처벌하기도 한다. 그런데 실제 단속 현장에서는 기묘한 공생도 이루어진다. 북한의 보위부원이나 보안원들은 송금 사실을 인지하고도 묵인한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묵인하는 대가로 뇌물을 챙긴다. 북한 당국의 관리들조차 배급이 끊긴 상황에서 북향민 가족이 건네는 뇌물은 거부할 수 없는 생존 수단이 되었기 때문이다.


역시 사람 사는 세상은 다 똑같다. 뇌물은 언제나 이념을 이긴다. 북한 당국이 주민들을 통제한다는 사실은 이제 놀라운 일도 아니다. 문제는 남쪽에서도 북향민 가족들은 송금 문제로 처벌받는다는 사실이다. 북쪽에 남은 가족이나 남쪽에 정착한 가족이나 어느 쪽에서 살든 송금받아서 처벌받고 또 송금해서 처벌받는 이 아이러니는 씁쓸하기 까지 하다.


과거 국가정보원이 대공 수사를 주도할 당시, 북향민들의 북쪽 가족 송금은 일종의 인도주의 또는 인권 측면에서 묵인돼왔다. 굶어 죽는 가족들에게 어떻게든 먹고 살 수 있도록 송금해 주는 걸 마냥 불법으로 처벌하는 것은 그 자체로 너무 가혹하다는 걸 정부도 인정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공수사권이 경찰로 이관되면서 지난 2023년 윤석열 정부 들어 상황은 급변했다.


일선 경찰들은 북향민들의 송금 사건 수사는 일종의 승진과 실적 채우기를 위해 무리한 수사를 감행했다. 그동안 국정원과 통일부에서는 지금까지 북향민들의 송금 문제를 묵인해 왔지만 일선 경찰은 이런 복잡한 사정을 외면한 결과로 실제 형사처벌 받은 북향민들이 있다. 남쪽에 있는 가족의 도움에 기대어 겨우 살아가는 북한에 남은 가족들에 대한 인도적 차원의 송금을 국가보안법이나 외국환거래법 위반이라는 거창한 죄목으로 옭아매는 것은 실정법 위반이라 하더라도 가혹한 건 사실이다.


실제로 북향민 당사자들 사이에서도 송금 사건에 대한 대대적인 수사로 당황스럽다는 목소리가 컸다. 윤석열 정부는 줄곧 북한 주민의 인권 개선을 최우선 과제로 내세웠는데 정작 보수 정부하에서 북향민 당사자들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수사를 받았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북한 인권을 외치는 그 순간에도, 수사기관은 굶주리는 북한 가족들에게 생활비를 보낸 북향민들에게 수갑을 채운 것이다. 북에 남은 가족을 살리려는 행위를 국가보안법으로 단죄하는 것은 지나치다. 어떤 방식으로든 대안이 필요하다.



발상의 전환: '불법 송금'에서 '민생 투자'로


이번 재판부 판결을 계기로 나는 북향민 사회와 우리 정부에 근본적인 인식의 전환을 제안하고 싶다. 지금까지 북향민들은 어쩔 수 없이 불법으로 가족들에게 송금할 수밖에 없었다. 송금 브로커에게 50%씩 수수료를 떼이고서라도 보내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을 국가보안법으로 처벌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가 없다. 남겨진 가족을 살리겠다고 불법이라도 해야 하는 이 상황을 법의 잣대로만 처벌하는 것은 비극이다.


북향민들의 가족에 대한 송금 행위를 다른 관점으로 바라보기를 제안한다. 불법 송금이 아니라 북한에서 사는 가족들에 대한 민생 투자로 바라보면 어떨까? 가족에 대한 송금 행위는 단순히 단기적인 구제에 머물지 않는다. 송금받은 가족들은 긴급한 생계 수단을 확보하는 것임과 동시에 장마당에 돗자리라도 깔고 장사를 시작할 수 있는 자본을 얻는 로또 같은 기회다. 즉 북한식 시장 경제에서 자본을 축적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 수 있는 민생 재건 프로젝트로 바라볼 수도 있다. 북향민들이 보내는 돈이 그저 불법 송금이 아니라, 북한에 남은 가족들이 장기적인 생계수단을 확보할 수 있도록 돕고 더 나아가 통일 이후 북한 재건 비용을 조금이라도 줄이고 위해 미리 투입되는 비공식 선투자로 확대될 수도 있다. 북향민은 남과 북의 경계에 서서 두 체제를 연결할 수 있는 유일한 주체이기도 하다.



북향민들은 이미 북한에 남은 가족의 민생 투자자들이다


우리 정부는 이제라도 북향민의 송금을 단순히 불법으로 규정하는 단선적인 관점보다는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묵인과 관용이 필요하다. 물론 범죄가 의심되는 대량 송금 등의 문제에 대해서는 법의 테두리 안에서 당연히 조사가 필요할 것이다. 다만 수사 과정에서 단순히 가족 송금으로 판단될 경우 벌금 등의 처벌보다는 ‘생계가 어려운 가족에 대한 가족 간 송금’으로 예외를 둘 필요가 있다. 지금껏 국정원과 통일부가 해왔던 것처럼 송금을 묵인하고, 오히려 음성적인 송금 과정을 안전하게 관리하는 것이야말로 북한에 남아 있는 가족들이 굶어 죽지 않고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는 자본을 제공하는 길이다.


물론 불법 송금을 통한 가족 살리기는 영구적인 해법이 될 수는 없다. 가장 바람직한 대안은 남북 관계의 정상화를 통해 가족 간 송금을 제도권으로 유입시키는 것이다. 과거 동서독의 사례도 있다. 현재로선 북한이 응답할 가능성이 거의 없지만, 가능성마저 차단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제도로 마련되기 전까지 정부는 최소한 북향민들의 절박한 심정을 불법과 범죄로 낙인찍는 짓은 멈춰야 한다. 북한에 남은 가족은 보고 싶어도 만나고 싶어도 만날 수 없다. 가족을 외면할 수도 없다. 불법인 줄 알면서도 가족을 위해 몇 푼이라도 모아서 송금해 주는 것은 윤리적인 행위다. 따라서 북향민들의 송금 행위에 대해 법을 최소한으로 적용할 필요가 있다. 이번 무죄 판결은 그 시작점이다. 우리는 더 이상 불법 송금을 하는 죄인이 아니다. 우리는 북한이라는 척박한 땅에 남아 있는 가족들이 시장과 자유의 씨앗을 뿌리는 민생 투자자이다. 말로만 ‘먼저 온 통일’이라고 부르지 말고 그 역할을 이미 하고 있는 이들을 법으로 처벌하기를 주저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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