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배우 조진웅이 은퇴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여론이 그를 무대 밖으로 밀어냈다. 지난 12월 5일, 연예 매체 디스패치의 보도로 촉발된 그의 30년 전 ‘소년범 전력’ 논란은 불과 하루 만에 한 배우의 연기 인생을 송두리째 앗아갔다. 일부 대중은 배신감을 토로했고, 언론은 하이에나처럼 달려들었으며, 결국 그는 “책임을 지겠다”며 정상에서 탑배우 생활을 끝내겠다며 은퇴를 선언했다.
그러나 이 사태를 단순히 과거에 범죄를 저지른 연예인의 몰락 서사로 소비하고 넘어가기엔, 이 사건이 내포한 우리 사회의 야만성이 너무나 짙고 위험하다. 조진웅을 향한 돌팔매질 뒤에 숨겨진 한국 사회의 응보적 광기와 관음증, 정치적 위선과 진영논리, 그리고 미디어의 폭력을 그대로 드러냈다. 우리 사회가 지켜야 할 최소한의 법치주의적 가치와 인간에 대한 예의를 다시 생각하도록 요구한다.
먼저, 우리 사회가 ‘소년법’을 바라보는 시각의 이중성과 전근대성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조진웅의 과거 10대 시절 절도 등의 죄로 소년보호처분을 받은 것은 분명 비판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그것은 1994년, 그가 미성년자이던 시절의 일이며 이미 법적 처분이 완료된, 즉 소년법의 취지에 따라 관련 기록 비공개 및 일정 기간 지난 후 범죄 기록 자동 삭제되도록 한 소년법의 취지에 맞게 사법적으로 종결된 과거다.
소년법 제정의 근본 취지는 처벌이 아닌 교화와 재사회화에 있기 때문이다. 청소년 시절의 잘못이 낙인이 되어 남은 인생 전체가 매몰되지 않도록 그들에게 반성의 기회를 주고 건강한 사회 구성원으로 다시 복귀시키는 것이 이 법의 목적이다. 따라서 국가는 소년보호처분을 범죄 기록으로 남기지 않는데, 이는 그가 성인이 되었을 때 과거의 잘못으로 차별받지 않고 살아갈 ‘두 번째 기회’를 보장해 주려는 국가의 약속이다.
하지만 오늘 한국 사회 여론은 마치 빅토르 위고의 소설 속 경감 자베르가 지배하는 세상 같다. 빵 한 조각을 훔친 장발장을 평생 쫓아다니며 그의 개과천선을 부정하고 과거의 죄인으로만 규정하려 했던 자베르의 집요함이 조진웅을 다시 10대 시절의 범죄자로 끌어내렸다.
여론은 그가 지난 20여 년간 배우로서 쌓아온 성실함과 노력보다는, 30년 전의 ‘소년범’ 과거로 오늘의 그를 규정한다. 이는 우리 사회공동체가 추구해야 할 회복적 정의를 내팽개치고 오로지 처벌만으로 처리하는 응보적 정의로의 퇴행이 아닐 수 없다. 소년법이 존재하는 이유는 사회에서 성인이 된 후의 삶까지 소년 시절의 잘못으로 고통받으면 안 된다는 원칙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소년범죄 기록이 있는 자가 대중의 사랑을 받는 공인(연예인, 공무원, 정치인 등)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공직자 소년기 흉악 범죄 공개법을 발의하겠다고 나섰다. 이는 매우 위험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이 논리를 그대로 적용한다면, 청소년 시절 한 번이라도 실수를 저지른 사람은 평생의 낙인으로 대중의 눈에 띄지 않는 직업만을 전전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현대판 신분제를 옹호하는 꼴이 된다. 우리 사회가 이 정도로 관용을 잃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소년법이 소년범의 전과 기록을 지우고 미래의 가능성을 믿고 보호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들이 성인이 되어 자신의 꿈을 찾아 자신의 재능으로 사회에 이바지할 기회를 박탈하지 않기 위함이다. 연예인이나 정치인이라고 해서 이 법의 보호 아래 예외가 될 수는 없다. 우리가 만약 “너는 과거에 죄를 지었으니 평생 대중에게 보이지 않게 숨죽여 살라”고 강요한다면 그것이 소년범들에게 온당한가? 이는 오히려 소년범들에게 갱생의 의지를 꺾고 “어차피 망친 인생, 범죄의 길로 가라”고 등 떠미는 저주와 다를 바 없을 것이다.
우발적이든 자발적이든 실수이던 한 번 범죄를 저지르면 평생 범죄자로 살아야 하는 사회는 희망이 없을 것이다. 기회를 원천 봉쇄하는 사회에서 누가 참회를 하고 누가 성실한 삶을 꿈꾸겠는가? 조진웅의 연기가, 그의 노력이 대중에게 인정받았다면 그것은 그가 그동안 노력한 결과로 얻어진 것이지 과거의 범죄로 얻어진 것이 아니다.
조진웅의 활동을 반대하는 측의 가장 강력하고도 감성적인 논리는 ‘피해자 중심주의’다. “가해자가 TV에 나와 웃고 떠드는 것을 보는 것 자체가 피해자에게는 2차 가해”라는 주장이다. 피해자의 고통과 트라우마를 공감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 그래서 과거에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었다면 몇 번이고 반성하고 사죄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조진웅 사태를 보면, 피해자가 나와서 조진웅에게 처벌을 호소한다는 내용은 없다. 디스패치의 보도 외에 피해자 목소리는 아직 없다. 물론 나중에 또 다른 피해자가 등장할지 그건 지금으로선 알 수가 없다. 중요한 것은 이런 질문이다. 가해자가 유명해지거나 사회적으로 성공하여 대중 매체에 노출되는 것 자체를 ‘2차 가해’로 규정한다면, 근대 형법 체계에서 ‘죗값을 치름’은 도대체 언제 어떻게 완성되는가 하는 물음이다. 근대 형법은 사적 복수를 금지하고 국가가 형벌권을 독점하는 대신 형벌이 종료되면 그 죄에 대한 사회적 부채, 즉 죗값이 청산된 것으로 간주한다. 즉 사회 구성원으로의 모든 권리도 복권되어 평범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한다.
피해자에 대한 도의적 사과와 민사적 배상은 별개의 문제이나, 소년보호처분을 받은 범죄 기록으로 가해자의 직업 활동에 한계를 긋는 것은 소년법의 취지에도 어긋난다. 만약 피해자의 시야에 들어오는 것이 2차 가해라면, 전과자는 평생 격리되거나 무인도에 살아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도 있다. 이는 또 다른 인권의 문제이다. 피해자의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방법은 가해자의 사회적 말살이 아니라, 가해자의 진정성 있는 사과와 배상, 그리고 우리 사회가 피해자를 보듬는 제도적 장치여야 하지 않을까.
시선을 밖으로 돌려보자. 전 세계적인 사랑을 받은 ‘아이언맨’,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Robert Downey Jr.)의 삶은 조진웅 사태를 접하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는 과거 심각한 마약 중독 및 불법 총기 소지 혐의로 체포되고 15개월간 복역하기도 했다. 한국 사회의 잣대대로라면 그는 영구히 연예계에서 추방당하고, 매장당해 마땅한 인물이다.
그러나 미국 사회와 할리우드는 그를 버리지 않았다. 그가 죗값을 치르고 재활에 성공했을 때, 사회는 그에게 다시 기회를 주었고 그는 최고의 연기로 보답하며 전 세계에 희망의 아이콘이 되었다. 만약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한국에서 태어났다면 어땠을까? 단언컨대 우리는 ‘아이언맨’을 결코 만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는 과거의 전과 기록이 공개되는 순간 ‘마약쟁이’, ‘전과자’라는 꼬리표에 난도질당해 재기는커녕 사회적 타살을 당했을 것이다. 물론 한국과 미국 사회의 감정은 다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우리 사회가 미국보다는 아직은 개인의 변화 가능성과 제기를 믿지 않는 불신 사회이며, 한 번의 낙인으로 모든 가능성을 차단해 버리는 척박한 도덕적 토양을 가졌음을 방증한다. 도쿄대 오구라 기조 교수가 한국 사회를 평가했던 대목이 다시 떠 오른다. 그는 “한국 사회는 도덕의 함정에 빠졌는데, 이것은 축복이자 저주”라고 했다. 우리 사회가 공인에게 거는 도덕적 잣대가 굉장히 높아서 갖는 장점도 있지만, 단점 또한 가혹하다. 기회는 완벽한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특권이 아니라 실수를 딛고 다시 일어서려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사다리여야 한다.
이번 사태를 둘러싼 정치권의 해석 또한 의도적이다. 일부 보수 진영과 유튜버들은 이번 디스패치 보도가 민주당 정부가 리스크를 덮기 위한 기획된 물타기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조진웅은 그간 진보적 성향을 보이며 현 정부에 우호적인 스탠스를 취해온 인물이다. 여당이 자신들에게 우호적인 인사를 희생양 삼아 리스크를 덮는다는 것은 정치 공학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 사실상 음모론이다.
그가 보수주의자이건 진보주의자이건, 그가 30년 전 청소년 시절에 죗값을 치른 일로 인해 현재의 삶이 규정당하고 사회적으로 매장당하는 것은 우리 사회가 약속한 원칙에 어긋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사람을 살리고 기회를 주는 일에 좌우가 어디 있는가. 법의 취지와 인권의 가치는 피아를 구분하지 않고 보편적으로 적용될 때 비로소 힘을 얻는다. 조진웅이 진보적 연예인이어서 감쌀 필요도 없고 이것이 인간에 대한 예의이자 우리가 만들어 놓은 규칙이기 때문에 옹호하는 것이다. 만약 조진웅이 보수 정당을 공개 지지하는 보수 연예인이었어도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마땅하다.
마지막으로 이 모든 사태의 시발점인 연예인 사생활 폭로 전문 매체인 디스패치와 이에 동조하는 대중 심리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없다. 고등학생 시절 조진웅의 소년범 기록을 이제 와서 끄집어내어 만천하에 공개한 행위가 과연 국민의 알 권리에 부합하는가?
한국 사회는 연예인의 사생활에 대해 병적인 수준의 관음증을 앓고 있다. 우리는 연예인을 공공재로 착각하며,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도덕적 무결성을 요구한다. 디스패치는 이러한 대중의 병적 호기심과 관음증에 기생하며 개인의 내밀한 영역을 파파라치처럼 파헤치며 돈벌이에 나선 매체다.
이번 보도는 공익적 목적이라기보다는 그저 유명한 배우 한 사람을 사회적으로 매장하기 위한 사적 제재(Lynch)에 가깝다. 범죄 사실의 보도라 할지라도, 공소시효가 지나고 법적 처분이 끝난 미성년 시절의 기록을 들추어내는 것은 심각한 인권 침해다. 아무리 언론의 자유가 있다지만 보도 윤리 또한 지켜져야 할 것이다. 마침 법무법인 호인 김경호 변호사가 이 사건을 최초 보도한 디스패치 기자 2명을 소년법 제70조(조회 응답 금지)를 위반했다는 취지의 고발장을 국민신문고를 통해 접수했다고 한다.
우리는 지금 조진웅이라는 배우 한 사람을 매장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과오를 딛고 일어선 인간을 용납하지 못하는 편협하고 잔인한 우리 자신의 자화상에 마주한 것이다. 조진웅의 어릴 적 과오가 그의 미래를 발목 잡아서는 안 된다. 이것은 조진웅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사회 구성원 누구에게나 적용되어야 할 원칙이다. 누구나 실수할 수 있고, 누구나 넘어질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넘어진 자를 밟고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다시 일어설 기회를 주는 것이다.
과거의 족쇄로 현재의 발목을 자르는 사회에는 희망이 없을 것이다. 소년범 출신이라도 반성하고 노력하면 훌륭한 배우가, 훌륭한 사회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회가 진정으로 건강한 사회다. 그것이 우리가 자베르의 망령에서 벗어나 회복적 정의와 인간성을 회복하는 길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