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탄 난 석유 부국과 납치된 주권 사이, 한반도 운명은

by 조경일 작가

2026년 연 초부터 세계는 충격적인 뉴스로 새해를 맞았다. 미국 특수부대가 한밤에 베네수엘라의 심장부에 침투해 현직 대통령 니콜라스 마두로 부부를 체포해서 미국으로 압송했다. 미국에 마약을 불법으로 유통했다는 마약테러, 일명 ‘나르코-테러리즘’ 혐의를 명분으로 내걸었지만, 이는 사실상 주권국가에 대한 침탈이었다.


이 사태를 바라보는 시선은 복잡하다. 마두로를 옹호하기엔 그가 저지른 죄악이 너무도 크고, 미국의 행동을 환영하기엔 ‘주권 침탈’이라는 선례가 너무도 위험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을 때와는 사뭇 다른 목소리들이 많다.


우선 현실을 냉정하게 직시해보자. 마두로 정권은 옹호 받을 수 없는 실패한 독재 권력이 분명하다. 베네수엘라는 세계 최대 원유 매장으로 자원이 풍부한 나라다. 그러나 차베스에서 마두로로 이어진 30년 독재는 그들의 이상과는 별개로 풍요로운 나라를 만들 수 있는 자원을 갖고 있으면서도 결과적으로 철저히 파탄 났다. 세계 최대 산유국이 빈곤에 시달리고, 단기간에 6만% 인플레이션을 맞고 화폐가 휴지조각보다 가치 없는 그야말로 망한 국가가 바로 베네수엘라다. 국민들은 쓰레기더미를 뒤지고, 수백만 명이 살기 위해 국경을 넘었다. 독재자는 자국의 풍요를 팔아 자신의 권력을 유지했고 국민의 삶을 인질로 잡았다. 마두로 체제는 베네수엘라 국민에게 국가라는 보호막이 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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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두로가 체포되는 상황을 보면서 한반도의 운명에 대해 고민이 깊어진다. 베네수엘라가 아무리 장기독재 국가이며 사회주의를 표방했다고 해도 북한보다는 자유가 있는 나라다. 누군가는 이런 질문을 할 수도 있다. 왜 베네수엘라 국민들이 스스로 정권을 뒤집지 못하는지. 북한에서 나고 자란 나는 이 질문이 얼마나 잔인하고 비현실적인지 안다. 베네수엘라처럼, 그리고 지금의 북한처럼 독재가 장기화되고 고도화된 사회에서는 민중 봉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한국의 민주화가 오히려 역사의 예외일 수도 있다.


물론 북한과 베네수엘라를 같은 선상에서 비교하는 것은 섣부른 판단이다. 북한은 감시와 처벌은 일상이 되고, 공포는 뼛속까지 스며들어 저항할 힘조차 남지 않도록 국민을 빈곤과 세뇌의 늪에 빠뜨려 놓았고, 이것이 독재체제를 유지하는 생존 방식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김씨 세습 독재 하의 북한 주민들이 스스로 일어설 수 없듯, 베네수엘라 국민들도 스스로의 힘만으로는 마두로 독재체제를 무너뜨리기 어려웠다. 야당은 탄압받았고 체제에 반대하는 목소리 또한 처벌 받았았다. 그래서 독재체제와 그 엘리트 세력들에게 억압받는 국민들에게는 외부의 개입이 때로 간절한 구원의 동아줄처럼 보인다. 독재자를, 특히 독재로 인해 자국민들의 핍박이 클 경우, 압박하기 위한 국제사회의 강력한 제재나 혹은 변화를 유도하는 대화의 시도는 그래서 필요하다. 고립된 채 죽어가는 국민들을 위해 국제사회가 나서야 한다는 데에는 공통의 공감대가 있다.


하지만 외부(타국)의 개입방식에 대해서는 국제법의 기준에서 다각도로 고민해야 한다. 독재체제를 무너뜨리기 위해 외부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하더라도, 미국 특수부대가 한밤중에 주권국을 침탈하고 대통령을 납치해도 된다는 결론으로 직결되기는 어렵다. 그래서 이번 트럼프의 마두로 체포 작전은 위험한 선례를 만들었고 명분도 없다. 국제법 위반이라는 비판이 거세다.


독재자 한 명을 수갑 채워 뉴욕으로 끌고 가 재판에 세운다고 해서 그 나라에 즉각적인 민주주의가 꽃피는 것은 아니다. 역사가 증명해왔다. 지도자만 제거된 권력의 공백은 또 다른 혼란이나, 외세의 입맛에 맞는 괴뢰 정권의 수립으로 이어지곤 했다. 실제로 트럼프는 속내를 숨기지도 않았다.


트럼프는 마두로를 제거하고 베네수엘라 국민들에게 자유를 주겠다고 말하지만, 그 대가로 베네수엘라의 석유에 대한 전면적 접근권을 요구했다. 석유를 팔아서 번 돈으로 국민들에게 분배하겠다는 게 트럼프의 주장이다. 하지만 삼척동자도 믿기 힘든 말이다. 이는 오히려 파탄 난 국가의 자원을 독점하겠다는 말이나 다름없다. 사실상 약탈이다.


더 문제가 되는 것은 트럼프가 공언한 베네수엘라 직접 통치다. 마두로 대통령이 부재한 상황에서 대통령 권한대행 역할을 하게 된 로드리게스 부통령에 대해 트럼프는 말을 듣지 않으면 더 큰 공격을 가하겠다고 협박하는 상황이다. 미국의 말을 고분고분하게 들으라는 얘기다. 미국의 베네수엘라 식민통치가 시작됐다.


지금 북한의 상황은 베네수엘라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경제는 파탄 났고, 인민의 삶은 피폐해졌으며, 그럼에도 독재 체제는 핵무기를 쥐고 견고하게 버티고 있다. 내부로부터의 혁명은 요원하다.


만약, 트럼프가 베네수엘라에서 그랬듯 독재자 김정은 위원장을 한밤중에 체포해 간다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 물론 이 시나리오는 현실화될 가능성이 제로다. 한반도가 처한 지정학적 위기가 이런 면에서는 베네수엘라와는 다른, 다행이라면 다행인 셈이다. 중국과 러시아가 버티고 있으니 미국이 함부로 작전을 펴기는 어려울 것이다. 물론 중국과 러시아의 암묵적 동의나 거래가 있다면 상황은 달라 질 수 있다.


어쨌든, 미국이 버젓이 주권국가에 침투해서 마두로를 한밤에 체포할 거라곤 상상도 못했듯 역사는 알 수가 없다. 이런 일이 북한에서 벌어진다면 우리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 사실 마두로 체포 작전처럼 소위 ‘외과적 수술(surgical strike)’ 작전, 즉 북한 수뇌부만 타격하는 시나리오는 1990년대부터 논의돼왔다. 지금도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베네수엘라 사태를 보면서 김정은도 제거해달라고 공공연히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만약 미국이 김정은을 체포하고 북한을 직접 통치하겠다고 한다면? 그런 상황이 연출된다면, 지독한 독재가 끝났다는 사실에 당장은 환호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 역시 북한의 독재가 끝나기를 바라는 사람이기에 그 유혹을 부인하지 않겠다. 그러나 그 방식이 한반도의 주권이 철저히 무시된 채, 미국의 이익을 위한 ‘군사 작전’으로 이루어진다면? 그리하여 한반도의 운명이 다시금 외세의 신탁통치 아래 놓이게 된다면 그걸 해방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마두로 체포를 두고 한동안 갑론을박이 벌어질 것이다. 국제법적 문제도 불거질 것이며 트럼프에 대한 강력한 저항도 커질 것이다. 트럼프가 큰 정치적 위기에 직면하지 않는다면, 물론 위기에 직면했다는 판단에 따라 이번 마두로 체포작전을 벌인 것이라는 관점도 충분히 타당한 면이 있지만, 베네수엘라 직접 통치 계획을 실천에 옮길 것이다.


중요한 것은 베네수엘라 국민들의 마음이다. 새로운 대통령을 세우든 새로운 체제를 세우든 그 선택은 베네수엘라 국민들의 몫이어야 할 것이다. 미국의 석유 약탈과 식민통치는 독재체제 만큼이나 베네수엘라 국민들에게는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올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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