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절당한 마차도, 민주주의에 관심 없는 트럼프

by 조경일 작가



지난해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베네수엘라 야당 지도자 마리아 코리나 마차도는 상을 받자마자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화했다. 자신이 받은 노벨평화상은 트럼프 대통령 대신 자기가 받은 것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에게 이 상을 바친다”라고 말했다. 이보다 더한 아부와 구애가 또 없을 것이다.


노벨평화상이 갖는 권위가 바닥에 떨어졌다. 오죽하면 위키리스크 창립자 줄리 어산지가 노벨위원회를 형사고발 했을까. 어산지는 지난해 12월 17일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축출하기 위해 미국에 침공을 요청한 마차도에게 평화상을 준 것은 ‘전쟁범죄 조장’을 금지한 스웨덴 국내법 위반”이라며 형사 고발했다. 또 어산지는 고발장에서 “마차도를 수상자로 선정한 것은 평화상을 ‘평화의 도구’로 삼고자 했던 알프레드 노벨의 뜻에 반하는 결정으로 횡령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마차도는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 침공을 옹호하고 전쟁과 폭력을 지지하는 행보로 이미 평화상의 자격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마차도 스스로가 노벨평화상이 갖는 평화의 가치보다는 무력동원을 옹호한 인물이기에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마차도는 노벨상을 일종의 선물로 사용하여 트럼프의 간택을 받아서 그 힘으로 베네수엘라의 통치권을 얻고자 했다.


물론 마차도의 마두로 독재에 항거한 민주화 노력을 깎아내릴 수는 없다. 노벨위원회도 그 공로를 인정한 것이고, 노벨평화상을 받을 자격에는 미달해도, 민주화 운동이라는 큰 맥락에서 그의 공로는 충분히 인정된다. 다만 마두로를 제거하기 위해 미군이 개입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친 점에 대해서는 여론의 비판이 컸다.


이런 와중에 트럼프의 불법적인 침공으로 마두로 대통령이 체포돼서 미국으로 압송됐다. 마차도가 간절히 원했던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마차도의 구애를 냉정하게 걷어찼다. 트럼프 대통령은 마두로 대통령 생포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마차도가 지도자가 되기는 매우 어려울 것”이라며 “국내 지지기반이 없고 존경도 받지 못한다”고 밝혔다. 이번 베네수엘라 공격을 주도한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도 “불행히도 대다수의 야당 세력이 더는 베네수엘라 내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NBC에 출연해 말했다.


마차도의 기대와 달리, 트럼프가 선택한 파트너는 마차도가 몰아내고자 했던 마두로 정권의 2인자인 델시 로드리게스 부통령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로드리게스 부통령은 루비오 국무장관과 긴 대화를 나눴고 미국이 필요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협조하겠다”고 말했다며 로드리게스 체제를 인정했다. 그리고 로드리게스 부통령은 임시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마차도가 트럼프에게 뒤통수 맞은 셈이다. 마차도는 트럼프의 철저한 비즈니스 논리를 지금은 이해했으리라.


트럼프 대통령에게 베네수엘라의 민주주의 회복 따위는 애초에 관심 밖의 일이라고 보는 게 지금의 상황에 대한 이해를 도울 것이다. 물론 표면적인 명분은 마약 밀반입 혐의라든가 독재정권 응징을 주장하지만, 실제 트럼프의 마두로 체포는 베네수엘라가 가진 세계 최대 매장량의 석유를 독점하는 것이 목표다. 베네수엘라 석유 독점은 곧 중국에 대한 견제기 때문이다. 베네수엘라 석유 수출의 80%는 중국이 가져갔다. 트럼프는 속내를 숨기지도 않았다. 미국 석유 회사가 베네수엘라 석유 산업에 전면적으로 참여해야 한다고 대놓고 요구했다.


트럼프가 만약 마차도의 손을 잡았다면? 베네수엘라는 다시 선거를 치러야 하며, 체포된 마두로 대통령 외 군부와 그 카르텔이 그대로 행정권 등 실권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마차도가 선거에 나온다고 하더라도 내부 갈등은 불 보듯 뻔하다. 어쩌면 현재 군부와 내전이라는 혼란이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트럼프 대통령이 평가했듯이, 마차도는 현재 베네수엘라의 행정력과 군사력을 장악하지 못했다. 그녀가 실질적인 권력을 잡고 석유를 미국에 안정적으로 공급하기까지는 너무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든다. 정치도 사업처럼 하는 트럼프에게 베네수엘라의 민주적 절차는 비효율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반면 로드리게스 부통령은 마두로 정권의 실세였고, 석유·재무장관을 역임했기 때문에 트럼프가 원하는 석유를 효과적으로 조달하고 협력할 수 있는 적임자다. 트럼프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미군이 마두로 대통령 부부만 체포한 것도 이런 조건을 염두에 둔 협상 단계였을 것이다. 트럼프는 복잡한 민주화 과정 대신 로드리게스를 직접 협박하고 회유하는 방식을 택했다. 트럼프는 마두로 체포 직후 나온 로드리게스 부통령의 마두로 대통령을 옹호하고 미국에 대한 반발 입장에 즉각 협박했다. 트럼프는 로드리게스에게 “협조하지 않으면 더 강력한 2차 공격을 가하겠다”라고 위협했고, 이 협박은 통했다. 로드리게스는 트럼프의 압박에 태도를 180도 바꿨다. 그녀는 미국에 전적으로 협조하겠다고 선언하며 납작 엎드렸다.


이것이 트럼프식 해결법이다. 독재자를 응징하고 베네수엘라를 민주화하는 것보다 부패하더라도 말 잘 듣는 독재 권력의 2인자를 굴복시키는 것이 미국의 국익을 달성하는 데 훨씬 효율적이라는 판단이다. 마차도는 다시 야당 지도자로 정치활동을 개시하더라도 트럼프와 협력 중인 로드리게스 체제하에서 민주화 운동은 큰 변화를 불러오기는 어려울 수도 있다. 현재 베네수엘라는 독재자 마두로만 사라졌을 뿐 바뀐 건 없다. 마두로 독재를 비판했던 베네수엘라 시민들에게는 반가운 일이지만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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