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키호테 하인 산초 판사와 한덕수
미겔 데 세르반테스의 소설 <돈 키호테>에는 어수룩한 하인 산초 판사가 '바라타리아'라는 가상의 섬 총독이 되는 우스꽝스러운 일화가 등장한다. 이는 주인의 망상을 이용해 한몫 챙기려던 산초의 욕망과 그를 조롱하며 잠시 권력을 쥐여준 공작 부부의 악의적인 연극이 빚어낸 희비극이다.
한때 '관운의 사나이'로 불렸던 한덕수 전 국무총리의 정치적 몰락은 이 '바라타리아'의 비극과 닮았다. 50년 공직 생활의 정점에 섰던 인물이 어째서 자신의 경력에 징역 23년이라는 참담한 마침표를 찍게 되었는지, 그 과정에 얽힌 개인의 욕망과 보수 정치의 책임 회피 전략,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단죄한 사법부의 준엄한 판결이 갖는 헌정사적 의미를 되짚어보자.
지난 21일 서울중앙지방법원은 한덕수 전 총리에게 특검 구형량인 15년을 훌쩍 뛰어넘는 징역 23년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 이 판결은 단순히 한 개인에 대한 처벌을 넘어, 대한민국 사법부가 '12·3 비상계엄'을 '국헌 문란을 목적으로 한 내란'으로 공식 규정한 역사적 판단이라는 점에서 그 무게가 남다르다. 그렇다면 한 개인의 영달을 향한 꿈이 국가 전체를 혼란에 빠뜨린 이 비극적인 연극은 과연 어떻게 시작되었으며, 그 연극의 무대를 만든 이들은 누구였는가.
12·3 내란 사태 이후 대한민국이 극심한 혼란에 빠져 있을 때, 일국의 총리였던 한덕수라는 인물은 집권여당이었던 국민의힘에 의해 급조된 '정치적 대리인'으로 무대 위에 올랐다. 그의 등장은 국가적 위기를 수습하기 위한 고뇌의 산물이 아니었다. 오히려 내란의 역풍을 피하려는 보수 정치의 책임 회피 전략과 노회한 관료의 뒤늦은 권력욕이 기괴하게 결합한 결과물이었다.
당시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이 축출된 후 '쌍권'이라 조롱받던 권영세 비대위원장과 권성동 원내대표 체제는 윤석열 전 대통령을 비호하고 내란의 책임을 희석시킬 방패막이가 절실했다. 그들이 선택한 인물이 바로 평생을 '영혼 없는 노회한 관료'로 살아온 한덕수였다. 정치적 색채가 옅어 통제하기 쉬우면서도, 오랜 경력으로 최소한의 구색은 갖출 수 있는 인물. 그는 내란의 책임을 피해가기에 완벽한 대리인 또는 꼭두각시였다. 당시 홍준표 대구시장이 이들을 향해 "정당정치 모르는 말종들"이라며 "정계 은퇴해야 한다"고 일갈했을 만큼, 이 과정은 비정상적이었다.
이들이 기획한 연극의 하이라이트는 한덕수를 대통령 후보로 만드는 과정에서 드러났다. 국민의힘은 모두가 잠든 새벽 4시, 단 1시간의 후보 등록 시간을 허용하는 '장난질'을 통해 한덕수를 기습적으로 후보 등록시켰다. 이는 소설 속 공작 부부가 산초를 조롱하기 위해 가짜 통치권을 주는 행위와 놀랍도록 닮아있다. 그들에게 필요했던 것은 국정 수습 능력을 갖춘 지도자가 아니라, 자신들이 짜 놓은 대본대로 움직여 줄 완벽한 꼭두각시, 즉 정치적 산초였다. 이렇게 허술하고 기만적인 연극의 주인공이 된 그는 정작 국가 위기 상황에서 어떤 역할을 수행했는가.
대통령 권한대행이라는 막중한 헌법적 책무를 부여받은 한덕수는 그러나 국가 위기 상황에서 그 책임을 철저히 방기했다. 그의 행보는 헌법 수호가 아닌, 개인의 정치적 야망을 향한 처세술로 가득 차 있었다. 이는 그의 법적 책임이 단순 과실이 아닌, 의도적 직무유기이자 내란에 동조한 행위였음을 스스로 증명했다.
소설 속 산초는 가짜 권력 앞에서도 소박한 지혜로나마 백성을 위한 판결을 내렸지만, 현실의 한덕수는 진짜 헌법적 권력을 손에 쥐고도 오직 자신의 정치적 생존만을 위한 판결을 거듭했다. 그의 바라타리아는 국민이 아니라 윤석열 전 대통령의 심기였다. 재판 과정에서 드러났듯, 그는 국무총리로서 비상계엄을 막기 위한 어떤 실질적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헌법 수호라는 본연의 책무 대신, 내란에 적극 가담했고 자리를 보전하는 데 급급했을 뿐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되자 한덕수 전 총리는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혼란스러운 국정을수습하는 대신 자신이 대통령이 되기로 결심했다. 급기야 "이기기 위해서라면 김덕수, 홍덕수, 안덕수, 나덕수 그 어떤 덕수라도 되겠다"며 권력에 대한 탐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기에 이르렀다. 한밤에 대선후보 바꿔치기로 대통령 후보가 된 한덕수를 막은 건 그를 세운 쌍권 지도부와 달리 그래도 상식을 옹호했던 당원들이었다. 허상에 불과했던 한덕수의 '바라타리아'를 향한 꿈은 출마 선언 9일 만에 좌절되었고, 마침내 사법부가 철퇴를 내렸다.
2026년 1월 21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3부(부장판사 이진관)는 한덕수 개인의 운명뿐 아니라 대한민국 헌정사의 한 페이지를 새로 쓰는 판결을 내렸다. 법원은 12·3 사태의 본질과 그 안에서 한 전 총리가 수행한 역할을 명확히 규정했다.
재판부는 12·3 비상계엄을 "최고 권력자에 의해 위로부터 기획된 친위 쿠데타 성격의 내란"이자 "헌법 질서를 파괴한 폭동"이라고 명확히 규정했다. 더욱 중요한 것은 한덕수의 역할에 대한 판단이다. 재판부는 특검이 기소한 '내란 우두머리 방조' 혐의를 기각하고, 그보다 무거운 '내란 중요임무 종사'의 정범(正犯)으로 처벌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그가 비상계엄 선포를 위한 '국무회의의 절차적 외관 형성'에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한 것은 단순한 조력이 아닌, 내란 범죄의 필수적이고 적극적인 구성요소라는 의미다. 이 외에도 허위공문서 작성, 대통령기록물 훼손, 위증 혐의가 모두 유죄로 인정되었다.
재판부가 특검 구형(15년)보다 훨씬 무거운 23년을 선고한 배경에는 민주주의와 헌법 수호에 대한 확고한 의지가 담겨 있었다. 재판부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국무총리는 헌법 수호의 최전선에 있는 자리"임에도 불구하고 내란에 가담한 책임은 그 무엇보다 무겁다. 피고인은 사건 이후에도 책임을 회피하며 허위 문서 작성과 위증으로 사법 절차를 훼손했고, 최후진술에서 한 사과조차 진정한 반성을 찾아보기 어렵다".
무엇보다 내란이 단시간에 종료될 수 있었던 것은 내란 가담자들의 공이 아니라, "무장한 계엄군에 맨몸으로 맞선 국민의 용기"와 위법한 명령에 소극적으로 저항한 일부 군인과 경찰 덕분이었다. 재판부는 '피해 발생이 경미했다'는 식의 변명을 일축하며, 내란의 조기 종식은 피고인들의 공이 아닌 국민의 저항 덕분임을 분명히 했다. 이 준엄한 사법적 심판은 한덕수 개인의 몰락을 넘어, 그가 참여했던 부조리한 정치 연극 전체에 대한 사망 선고와도 같았다.
법원의 판결로 한덕수와 국민의힘 일부 세력이 기획했던 '한밤의 바라타리아' 연극은 완전히 막을 내렸다. 50년 관료 생활의 대미를 장식한 법정 최후 진술마저, 그의 비극은 반성이 아닌 연기였다. "재판장님 결정에 겸허히 따르겠다"는 말은 참회가 아니라, 마지막 순간까지 심판자의 환심을 사려는 영혼 없는 관료의 마지막 처세술에 불과했다. 평생을 권력의 눈치를 살피며 살아온 '정치적 산초'의 비루한 민낯이었다.
이번 1심 판결을 적극 환영한다. 이는 단순히 한 개인에 대한 단죄를 넘어, 민주주의와 헌법의 가치를 훼손하려는 그 어떤 시도도 결코 용납될 수 없다는 역사의 준엄한 경고다. 범여권이 일제히 환영 논평을 내고, 심지어 국민의힘 내부에서조차 '윤석열과의 절연'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소설 속 산초는 자신의 분수를 깨닫고 고향으로 돌아갔지만, 현실의 한덕수는 차가운 감옥으로 향하게 되었다. 다시는 이처럼 비루한 인물들이 국가의 운명을 가지고 위험한 장난을 치는 비극이 이 땅에서 반복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것이 이번 판결이 우리 모두에게 남긴 가장 중요한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