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향민 시각에서 본 3% 봉쇄조항 위헌 결정의 의미...
조경일 작가(피스아고라 대표)
최근 헌법재판소가 비례대표 국회의원 선거에서 정당 득표율 3% 미만인 정당에 의석을 배정하지 않는, 이른바 '3% 봉쇄조항'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렸다. 만시지탄(晚時之歎)이며, 우리 사회의 다양성을 가로막던 거대한 빗장이 풀린 역사적인 결정이라 평가한다. 소수정당과 시민사회는 이번 결정을 두고 거대 양당의 기득권을 해체하고 "소수라는 이유만으로 배제되었던 목소리를 복원할 기회"라고 환영했다. 이를 두고 극우가 원내에 난립할 것이라는 우려가 있지만 이는 본질이 아니다. 독일의 경우 5%의 봉쇄조항이 있음에도 독일 정부에 의해 반헌법 집단으로 규정된 독일을 위한 대안당(AfD)은 150석이 넘는 의석을 확보하기도 했다. 더 중요한 것은 독일은 이미 다당제 시스템이 정착된 지 오래기 때문에 독일의 5% 봉쇄조항을 가져다 단순 비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필자는 '아오지'로 불리는 함경북도 경흥에서 태어나 세 번의 시도 끝에 대한민국에 정착한 '북향민'이자, 통일 문제를 연구하는 당사자로서 이번 결정이 갖는 의미를 단순히 선거법 개정의 차원을 넘어 통일 준비의 필수적 과제로 확장해 해석하고자 한다. 우리가 꿈꾸는 통일은 단순한 영토의 합병이 아니라 사람의 통합이며, 이를 위해서는 우리 정치 토양부터가 다양성을 포용할 수 있는 구조로 바뀌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 통일의 가능성은 논외로 하겠다.
현재 한국의 정치 지형은 거대 양당이 독점하고 있다. 이러한 승자독식 구조는 그동안 사회의 다양한 목소리를 대변하기보다는 상대를 악마화하고 갈등을 증폭시키는 데 일조해왔다. 12.3 내란 이후 한국 사회는 그야말로 극한의 대립 중이다. 필자는 이러한 양당제의 폐해를 또 한편의 파편을 온몸으로 겪어왔다. 보수와 진보, 혹은 '친일'과 '종북'이라는 극단적 대립 구도 속에서 북향민들은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억압받는다.
보수 정당은 북한 인권을 강조하지만, 때로는 이를 대북 압박의 수단으로만 활용하며 북한 주민의 실질적 삶 개선이나 평화적 교류의 가능성을 차단하기도 한다. 이런 정치에서는 북향민들이 반북담론의 증언자로만 적극 세워진다. 진보 정당을 지지하거나 평화 담론을 이야기하는 북향민은 '종북 빨갱이'라는 낙인과 '북으로 다시 돌아가라'는 정체성 공격에 시달려야 한다. 결국 북향민들은 생존을 위해, 혹은 안전을 위해 자신의 다양한 정치적 견해를 숨기고 보수의 목소리만을 내도록 강요받는다. 윤석열 정부 들어 심화된 이념 논쟁과 색깔론은 이러한 폭력적 구조를 더욱 고착화했다.
필자가 '탈북민' 대신 '북향민'이라는 용어를 지속적으로 제안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탈북'은 분단의 산물이자 정치적으로는 체제 경쟁의 승리만을 강조하는 용어다. 반면 '북향민'은 고향을 북에 둔 사람이라는 존재 그 자체이자, 남과 북을 잇는 연결의 의미를 담고 있다. 북향민이 우리 사회의 당당한 구성원으로서 주체성을 가지고 정치적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거대 양당이 강요하는 이분법적 선택지에서 벗어나야 한다.
헌법재판소의 이번 위헌 결정은 득표율과 의석률이 동등하게 반영되는 선거제도로 나아가는 중요한 첫걸음이 될 수 있다. 다양한 정당이 공존하는 다당제 체제로의 전환은 단순히 군소정당의 생존 문제가 아니다. 이는 우리 사회가 다원적 가치를 얼마나 포용할 수 있는지를 가늠하는 척도이며, 나아가 통일 이후 사회 통합을 위한 필수적인 기초 건설이다.
만약 우리 정치가 남한 내의 3만 4천여 명 북향민조차 제대로 포용하지 못하고, 소수의 목소리를 제도권 밖으로 밀어낸다면, 통일 후 2500만 북한 주민들을 어떻게 민주주의 시스템 안으로 통합할 수 있겠는가?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집단을 배제하지 않고 정치적 파트너로 인정하는 훈련이 되어 있지 않다면, 통일은 축복이 아니라 거대한 사회적 재앙이 될 수도 있다.
따라서 필자는 3% 봉쇄조항 철폐를 넘어, 득표율 그대로 의석이 배분되는 완전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등 과감한 정치개혁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래야만 북향민들도 거대 정당의 표계산이나 동원 부대가 아니라, 자신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정당을 통해 주체적으로 정치적 대표성을 확보할 수 있다.
필자는 오랫동안 선거제도 개혁이 곧 통일 준비라고 주장해왔다. 이것만이 정답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현재 거대 양당 독점정치의 문제를 조금이라도 인지한다면 우리는 다당제를 대안으로 선택할 수 있다. 다양한 정당이 공존하고 연합 정치가 일상화된 다당제 체제는 통일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실익을 우리 사회에 가져다줄 것이다.
첫째, 정책의 연속성 확보이다. 지금까지 대북 정책은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180도 뒤집혔다. 진보 정권의 '햇볕'은 보수 정권에서 '퍼주기'로 매도되었고, 보수 정권의 '압박'은 진보 정권에서 '대결 조장'으로 비판받았다. 결과적으로 지난 30년 넘게 일관된 통일 준비는 없었다. 하지만 다당제 하에서 연립 정부가 구성되면, 특정 정당이 독단적으로 정책을 폐기할 수 없다. 다양한 정치 세력 간의 타협과 견제를 통해 대북 정책이 사회적 합의의 길을 걷게 되며, 정권 교체와 무관하게 정책의 일관성과 신뢰도를 유지할 수 있게 된다.
둘째, 대표성의 확장이다. 현재의 양당 구조에서는 북향민 출신 국회의원이 나오더라도 특정 정당에서 당론에 묶여 북향민 사회의 특수한 요구를 제대로 반영하기 어렵다. 소수 정당의 원내 진입이 자유로워지면, 북향민의 특수한 경험과 전문성이 입법 과정에 직접 반영될 수 있는 통로가 넓어진다. 이는 북한 이탈 과정의 트라우마, 정착 과정의 애환, 그리고 북한 사회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가진 당사자들이 주체가 되어 실효성 있는 정착 지원 정책과 통일 방안을 만들 수 있음을 의미한다.
셋째, 통합의 정치 실현이다. 이는 미래를 위한 투자다. 언젠가 통일이 되면 북한 지역에는 다양한 정치 세력이 등장할 것이다. 만약 우리가 지금의 양당제처럼 상대를 절멸시켜야 할 적으로 규정하는 정치 문화를 고수한다면, 북한 주민들은 한국의 정치 체제에 적응하지 못하고 배제될 것이다. 다당제는 통일 이후 북한 지역의 정치 세력이 연착륙할 수 있는 다원적 공간을 미리 확보하는 것이다. 독일을 위한 대안당(AfD)이 돌풍을 일으키며 원내에 다수석을 확보할 수 있었던 것도 동독 출신들이 느껴왔던 서독 체제에서의 배제와 차별이 주요 원인 중 하나다. 하물며 독일도 이런데 한국은 어떻겠는가. 남한 내에서 다양한 정치 세력과 공존하는 연습을 하는 것이야말로 통일 후 발생할 사회적 충격을 완화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필자는 현실과 통일의 괴리를 좁히기 위해 노력해왔다. 통일은 당위성만 외친다고 오는 것이 아니다. 북한 정권을 무너뜨리는 것을 전제로 한 대결적 정책만으로는 북한 주민의 삶을 변화시킬 수 없으며, 북한 내부의 변화를 추동할 수도 없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대화할 수 있는 정치적 토양이 마련되어야 남북 관계도 돌파구를 찾을 수 있다.
헌법재판소의 이번 결정은 우리 정치가 적대적 공생에서 생산적 경쟁으로 나아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이제 공은 국회로 넘어갔다. 국회는 위헌 결정의 취지를 살려 승자독식의 선거법을 전면 개정하고, 표의 등가성이 보장되는 제도를 안착시켜야 한다.
다양성이 보장되는 시스템, 득표율과 의석률이 일치하는 국회, 그곳이 바로 북향민이 주체적 시민으로 서는 공간이자 다가올 통일 한국을 미리 살아보는 연습장이 될 것이다. 선거제도 개혁 없이는 통일 준비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