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장. 국가 시스템에 돌봄을 위임하는 방법
STORY
아버지의 치매를 처음 마주했을 때 저 역시 고민했습니다. 가족이 끝까지 돌봐야 하는 게 아닐까. 그래야 ‘도리’를 다하는 게 아닐까.
돌봄의 시간을 지나는 동안 조금씩 깨달았습니다. 간병을 하겠다는 다짐이 부모님을 위한 것 같아도, 사실은 나 스스로의 죄책감을 피하기 위한 다짐이라는 것을요.
아버지의 마지막이 누군가의 희생이 아니라 준비된 삶의 일부이길 바랍니다. 동시에 가족만이 돌봄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오래된 통념에서 벗어나고 싶습니다. 그래야 아버지와 나 사이에 온전한 '감정의 유산'을 남길 수 있으니까요.
제도와 전문가의 손에 일부를 맡기는 것이 오히려 부모의 안전과 자녀의 삶을 지키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그러니 간병을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면 책임을 내려놓은 것이 아니라 새로운 방식의 책임을 선택한 겁니다. 돌봄이란 모호한 단어를 '감정'과 '관리'로 분리하겠다는 선언이고, 감정 돌봄을 실천하겠다는 의지이며 '자녀도, 부모님도' 행복하길 바라는 소망입니다.
기억보다 오래 남는 감정을 함께 나누며 관계를 지키는 일입니다. 부모와 자식이 서로를 알아보고, 느끼고, 웃을 수 있는 시간을 통해 관계의 온도를 유지하는 방법이죠. 신체 간병보다 먼저 시작하고, 더 오래 지속될 수 있는 돌봄의 본질이기도 합니다.
TOOLKIT
막상 간병을 국가에 맡긴다고 하면 막막해합니다. 도움을 드리기 위해 제가 경험한 것들을 간단히 정리합니다.
보건소에 포함된 센터
초기 검사, 상담, 사례관리 무료 지원
가족 교육 프로그램 운영
기저귀와 위생용품 등 조호물품 지원
실종 예방 장치 치원
“오십오, 오십사, 오십삼, 오십이, 오십일...”
아빠는 등을 곧게 펴고 앉아 숫자를 거꾸로 중얼거리곤 했습니다. 영단어를 외우고, 생년월일, 주민등록번호 등을 반복해서 푸는 모습은 중요한 시험을 앞둔 수험생처럼 진지해 보였습니다.
만 60세가 되면 누구나 치매안심센터에서 무료로 조기검진을 받을 수 있습니다. 정상 판정을 받은 경우에는 2년마다, 인지저하나 경도인지장애로 진단받은 경우에는 1년마다 재검진을 받게 됩니다. 저희 아버지처럼 검진 전에 '두뇌 트레이닝'을 하시는 분들은 실제 상태보다 높은 점수가 나오곤 합니다.
더욱이 전두엽 치매는 기억력보다 판단력과 성격이 먼저 변화하는 유형이기 때문에 치매안심센터에서 실시하는 선별검사만으로는 조기 발견이 어렵습니다. 인지검사에서는 매번 ‘정상’ 판정을 받으셨기에 가족들은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체감했지만, 제때 치매 치료를 시작하지 못했습니다.
치매에 걸린 어르신은 대부분 자신이 치매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나마 병원 진료를 완강히 거부하시던 아버지의 치료를 시작할 수 있던 건 자주 드나들던 치매안심센터 덕분이었습니다. 낯설지 않은 공간, 익숙한 얼굴들, 부담 없는 분위기. 이 모든 요소들이 병원이라는 문턱을 낮추는 심리적 징검다리였습니다.
주소지 관할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신청
등급 판정 조사 (사회복지사가 방문에 인지·신체 기능 등을 체크합니다)
1~5등급(+인지지원등급) 판정 후 급여인정서 발급
등급에 따른 서비스 신청(복지용구, 방문 요양, 방문 간호, 주·야간 보호 또는 시설 입소 선택)
장기요양등급을 받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습니다. 분명히 예전과 달라졌고, 도움이 필요한데 등급 판정의 기준은 냉정하게도 ‘신체 기능’과 ‘인지 점수’로 환산됩니다. 그 과정에서 가족의 시선과 마음은 채의 작은 구멍 사이로 빠져나가고, 체감보다 낮은 등급을 받곤 합니다.
저희 아버지도 가족의 눈으로 보기엔 심각했습니다. 시간 감각이 흐려지고, 약을 챙기지 못하고, 종종 길도 잃으셨으니까요. 하지만 혼자 걷고, 혼자 화장실에 가고, 혼자 밥을 먹을 수 있다는 이유로 '아직은 괜찮은 상태(인지지원등급)' 판정을 받았습니다. 돌보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커다란 괴리감을 느낍니다. 매일 함께 있는 우리가 느끼는 변화는 너무도 선명한데, 그것을 '점수'로 담아내진 못합니다.
그렇다고 실망하진 마세요. 이 시기는 오히려 감정 돌봄을 나눌 수 있는 가장 좋은 시간입니다. 기억은 흐려져도, 감정은 여전히 선명하게 살아 있는 순간들. 그 시간을 어떻게 함께 하느냐에 따라 돌봄의 질도, 관계의 온도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저는 이 시기를 감정 돌봄의 골든타임이라고 부릅니다. 아버지와 내가 서로를 아직 알아보고, 느끼고, 웃을 수 있는 이 시간. 돌봄은 ‘등급’이 아니라, 함께 나눌 수 있는 마음에서부터 시작되니까요.
방문 요양보호사가 주기적으로 가정을 방문해 돌봄
비용은 등급별 본인부담금(약 15%)
신체·인지·정서 관리 모두 일정 부분 포함
장기요양등급 5등급부터 가능
저희처럼 가족이 아닌 타인과 함께 있는 걸 불편해하는 집에서는 '요양보호사'라는 단어 자체가 또 다른 긴장으로 다가옵니다. 그래서인지 여러 가정에서 결국 가족이 돌보는 방식을 선택하게 됩니다.
그럴 때 활용할 수 있는 제도가 ‘가족요양급여제도’입니다.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취득한 가족이 직접 요양서비스를 제공하고, 그에 따른 재가급여를 받는 방식입니다. 말하자면 가족이 요양보호사이자 돌봄 제공자가 되어 공적 제도 안에서 정식으로 인정받는 것이죠.
물론 쉽지만은 않습니다. 요양보호사 자격을 따기 위해 공부하고, 실습하고, 시험을 치러야 하니까요. 돌봄은 언제나 예고 없이 찾아오는 법. 여유가 있을 때 자격증을 준비해 두면 누군가를 돌볼 수 있는 힘이 생길 뿐 아니라
나의 노후와 죽음을 준비하는 데도 더 깊이 있는 이해와 감각을 얻을 수 있습니다.
돌봄을 선택하는 순간 우리는 누군가의 하루가 됩니다. 그 하루는 언젠가 나의 미래이기도 하고요.
요양원은 생활 돌봄 중심, 요양병원은 의료적 처치 중심
장기요양등급이 있으면 본인부담금 대폭 경감
입소 전 반드시 여러 시설을 둘러보고 계약
요양원 실습을 하면서 눈으로 보고 경험한 탓에 나의 부모님을 그곳에 보낼 수 있을까, 솔직히 두렵고 여전히 고민됩니다. 내가 직접 집에서 돌볼 자신도, 집으로 돌아오고 싶어 하는 부모님을 마주할 자신도 없으니까요.
제가 실습을 마친 요양원은 시설이 오래되긴 했지만, 넓고 깨끗하고 구조적으로도 생활하기 좋은 곳이었어요. 그럼에도 대부분의 어르신들은 집에 가고 싶어 하셨습니다. 낯선 시설의 병상이 아닌 정든 내 집에서 삶의 마지막을 보내고 싶은 건 당연한 일이니까요.
안타깝게도 우리가 원하는 돌봄은 아직 사회 제도 안에 자리잡지 못했습니다. 통합 돌봄 서비스를 통해 집에서 요양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하고 있지만, 요양원처럼 24시간 상주 관리는 아니므로 중증 어르신은 한계가 있습니다. 결국 돌봄의 공백은 가족이 일정 부분 메워하며 제도가 성숙해져야 완전한 대체가 가능합니다.
INSIGHT
돌봄의 문턱 앞에 섰을 때 가장 먼저 찾아오는 감정이 죄책감입니다.
내가 더 잘해야 하는데, 끝까지 책임져야 하는데, 지금 이 선택이 맞을까.
이 죄책감은 한국 사회에 오랫동안 뿌리내린 가족 돌봄의 신화에서 비롯됩니다. 부모님을 모시지 못하면 불효이고, 제도에 의지하면 무책임하다는 시선. 그래서 누군가는 끝까지 혼자 감당하다 지치고, 누군가는 끝내 외면하다 죄책감을 떠안습니다.
하지만 돌봄을 모두 떠안아야만 좋은 딸, 좋은 아들이 되는 건 아닙니다. 감정 돌봄은 죄책감을 줄이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자 후회를 덜어주는 유일한 길입니다. 아직 부모님이 스스로를 알아보고, 대화를 나눌 수 있을 때. 아직 서로의 마음에 다가갈 수 있을 때. 그 짧은 시기에 주고받은 작은 친절과 존중이 훗날 “그때 나는 최선을 다했다”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는 근거가 됩니다.
늦기 전에 감정 돌봄을 시작하세요. 오늘 할 수 있는 만큼만, 오늘 표현할 수 있는 마음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아버지를 돌보는 동안 저는 자주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언젠가 나도 누군가의 돌봄을 받게 될 텐데 그때 내 가족이 오늘의 저처럼 혼란스럽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의 마지막이 억지스러운 누군가의 의무가 아니라, 나와의 이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과정이길 바랐습니다. 그래서 지금 부모님께 드리는 감정 돌봄이 곧 나의 웰다잉을 위한 연습이 되고 있습니다.
어떤 방식으로 늙어가고, 어디서 마지막을 맞이하고, 누구에게 어떤 마음을 전하고 싶은지, 조금씩 기록해 두면 좋겠습니다. 그 상상이 언젠가는 여러분 자신과 가족에게 가장 큰 위로가 될 테니까요.
[마인드 가드너]라는 이름으로
돌봄과 죽음을 감정의 언어로 가꾸고 있어요.
가족 돌봄의 여정은 영상으로도 기록합니다
유튜브 ‘조엘의 정원’ [치매 아버지에게 '유산' 받는 법 Ep]에서 함께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