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민들레

수필

by 조정호

아내에게 꼼짝없이 잡혀 사는 선배, 그의 침묵은 바람 빠진 풍선 같이 쭈그러졌다. 그의 꾹 다문 입술을 대신해서 80년대 여자 깡패를 닮은 독살스런 형수의 표정이 사나운 말을 하는 것 같다. 설득되지 않는 함구와 이해할 수 없는 얼굴을 잔뜩 뒤집어쓰고 머물던 집에서 쫓겨나게 되었다. 고작 3개월 머물렀을 뿐이다. 그들이 한국에 가 있는 한 달 동안 개 마냥 집을 지켰으니 이제 내가 필요 없어졌을 것이다. 미국에 살며 멋대가리 없는 놈들을 아귀찜의 콩나물 대가리만큼 만나왔다. 어떤 환경에서 어떻게 부대끼며 살아왔는지, 그 부부 역시 부드러운 식감을 가지고 먹는 이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아귀 같은 존재는 아니었다. 아귀의 자리를 빼앗은 콩나물 같았고, 악독한 모습은 아귀와 같은 특성을 가졌지만 독을 숨긴 복어를 연상케 했다. 아귀 역시 원래 밍밍하지만 요리하는 대로 맛이 변하는 것을 그들은 알고 있을까? 어찌 보면 그들은 괜찮은 선생님이기도 했다. 아내의 엉덩이에 깔려 짜부라진 공처가를 결혼하기 전에 본 것은 행운이었다. 아들에 대한 사랑을 다 표현하지 못해 안달 난 만큼, 주위 사람을 더 증오하지 못해 못마땅해하던 아내를 본 것에 감사했다. 마지막 인사를 건넬까 생각해 봤지만, 예의는 그들의 모습에 어울리지 않았다. 단지, 앞으로 해야 할 작업과 편한 환경에 대한 근심만을 짊어지고 집을 나섰다.


다행히 아는 동생 방순이네 집을 오가며 곡 작업을 할 수 있었다. 원래 이름은 방순국이지만 부르기 편한 대로 늘 방순이였다. 밴드에서 건반을 눌렀고, 아직도 종종 음악 작업을 같이 한다. 처음 미국에 발 디딘 20대 중반에 시골뜨기 같던 얼굴로 함께 막노동을 했고, 지금까지 서로의 성장을 지켜보고 있다. 우리 모두 어른이 되는 과정 속에서 일어날 법한 어리숙한 실수를 빼뚜름 없이 바라보며 자랐다. 내 장비를 사용할 수 없는 상황에서 흔쾌히 자기 집에서 작업하라며 작업실과 컴퓨터, 장비와 악기를 내주었다.


작업은 항상 안된다. 물론 잘 되기도 한다. 가담 가담 10 x 10 square feet 밖에 안 되는 작업실에 지구 크기만 한 상상의 공간이 펼쳐진다. 그럴 땐 모든 감정이 녹아든 끝이 보이지 않는 대지로 빨려 들어가곤 한다. 가만히 누워 음표의 비를 기다리면 이내 수백 개의 선율이 하늘에서 쏟아지고 온 몸이 젖어들어간다. 받아들일 수 있는 만큼 감각적 자극이 스며들게 둔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모든 것이 그려진다. 혹, 어떤 장면이나 시간의 중심에 서 있는 느낌이다. 수십 폭의 그림이 되기도 하고, 영화의 필름을 감기도 한다. 그것은 강아지가 노는 모습, 고양이의 껑충임, 아버지를 닮은 산, 어머니의 주름, 동생의 귀여움, 파도의 부서짐, 자정부터 새벽까지 흘러가는 세상, 사랑의 아림으로 표현된다. 조그만 책상 앞에서 한없이 자유롭다. 이미지가 음표로 자연스럽게 바뀌면 홀린 듯이 건반을 두드리고, 기타를 치고, 노트를 찍는다. 물론, 매번 그렇지는 않다. 흔한 보통 사람이기에 가끔 일어나는 현상이다. 천재라면 벌써 성공했겠지.


그래서 작업하며 남은 기억은 대부분 머리를 쥐어뜯고, 오금이 저리고, 무기력하고, 재능 없음을 탄식하는 시시함 밖에 없다. 그날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얼이 빠진 채 협소한 작업실을 뱅글뱅글 돌고 있었다. 하루 종일 한 소절 밖에 만들지 못했다. 빙빙 돌며 미국 꼬마들도 코끼리 코 놀이를 하는지 궁금했다. 쓸모없는 생각을 한숨으로 버리고 다시 의자에 앉았지만, 물에 젖은 헝겊 같이 매달려 있을 뿐이었다. 벽은 모니터와 스피커가 놓인 책상 건너편에서 한심한 듯이 쳐다보며 1.5 미터의 공간만을 허락했다. 턱을 오른손으로 괴고, 왼손은 키보드 건반에 무겁게 걸쳤다. 여러 가지 라인을 만들어 봐도 도통 맘에 드는 것이 없었다. 계이름으로 이루어진 12개의 쇠창살에 갇혀버렸다.


아이디어도 얻고 기분 전환도 할 겸 유튜브에서 아무 노래나 재생시켰다. 듣다 보니 편하게 만든 느낌의 곡들이 있다. 악기와 화성을 최소화하고 딱 필요한 것만 넣은 요즘 인기 있는 미니멀리즘의 노래들이다. 간단하다고 해서 결코 쉽게 만든 것이 아니다. 몇 분 안 되는 노래지만 어떤 삶을 얼마 큼이나 담았을까. 이렇게 표현하기 위해 이 작곡가는 산책을 하고 길을 걸으며 무엇을 생각했을까.


주위 사람들은 이따금 내 노래를 듣고 복잡하다거나 악기가 너무 많이 들어간 것 아니냐는 이야기를 조심히 꺼낸다. 그럴 땐 덤덤히 '내가 좀 그래요.' 대답한다. '아, 씨. 작곡가 카페에서 천재 소리도 들어봤는데...' 속으로 퉁명 부린다. 내 성향이 그런 걸 어쩌랴. 요즘 방식은 화성과 악기를 적게 쓴다. 듣는 이는 노래를 깔끔하게 받아서 자신의 감성으로 다시 색칠한다. 그런 미니멀리즘도 좋지만, 여전히 듣는 사람의 감정에 상관없이 곡으로 인정사정없이 마음을 헤집어 파는 구식이 좋다. 어쩌면 듣는 사람을 배려하지 않는 아집이나 고집일 수 있겠다. 유행하는 요즘 노래와 만들고 싶은 대로 음표를 그리는 내 것을 비교하니 가슴이 답답한 게 소화가 덜 된 느낌이다. 곡도 잘 안 나오는데 뭐가 이리 복잡한지 모르겠다.


그러고 보면 병하리도 문화적 흐름 속의 변화를 잘 따라갔다. 그 녀석이 고등학생이던 꼬마 시절부터 알고 지냈다. 주뼛거리며 보컬 오디션을 보러 왔고 밴드에서 노래를 맡았다. 언제나 녹음을 도와주며 날 아저씨라 불렀다. 어릴 적부터 음악을 하고 싶었지만, 어른이 된 후 궁기를 면하기 힘들다는 부모님의 조언을 받아들였다고 한다. 의견이나 조언을 아랑곳하지 않고 하고 싶은 걸 하고야 마는 나와 다르게 말 잘 듣는 착한 딸이다. 두 번째 꿈이었던 요리를 고등학교 때부터 시작해서 Culinary Art를 대학교에서 전공했다. 졸업 후 사회인으로 살며 화려하게 포장된 꿈과 현실의 지독함이 다름을 배웠다. 바로 대학원에 진학해 Accunting을 공부했다. 지금은 회계사 명함을 지니고 세계 각국의 비행기를 신나게 타고 다닌다. 유행뿐 아니라 삶의 지혜를 습득하는 속도 역시 빨랐다. 한참 보컬 녹음을 하던 어느 날 쉬는 시간에 핸드폰을 내밀며 자신의 카톡 프로필을 보여주었다.


"아저씨, 이것 봐요. 이렇게 글 써보세요. 너무 예쁘지 않아요?"

"뭔데?"


그곳엔 클래식한 느낌의 갈색 크라프트지 봉투에 예쁜 손글씨체 폰트로 한 문장이 쓰여 있었다. '네가 있기에, 볼 것 없는 이 풍경이 의미를 가지고, 내가 아름답다.'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이런 비슷한 문구로 인기인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에 올리기 좋은 글이었다.


"어때요? 어때요? 너무 예쁘죠?"

"이렇게 글 써서 감성적인 엽서 같이 포장하고 책 내면 돈은 되것다. '숨을 내쉴 나는 없고, 숨을 들이쉬니 네가 있더라. 그렇게 그대가 채워졌다.' 뭐 이렇게 쓰면 되는겨? 근데 이게 시도 아니고 뭐냐?"


서로 멀뚱멀뚱 쳐다보며 눈만 껌뻑일 뿐이었다. 병하리는 당혹스러운 때마다 나오는 특유의 표정을 지으며 한가득 공기를 머금고 왕눈이 사탕만큼 동그랗게 눈을 키웠다. 들릴 듯 말 듯 헛기침을 하고 다시 녹음하자는 말로 어색한 정적을 끊어냈다.


감성적인 짧은 글은 그 후로 몇 년간 인기를 끌어갔다. 유럽 문학 역사 토론에서 더 이상 우리가 아는 진짜 천재는 현실에 존재하기 힘들다고 했다. 역사 속 그들은 새로운 장르를 만들고 집대성시켰으며, 현시대에서는 흐름을 만들고 거기에 대중을 편승시킨다고 결론지었다. 음악 역시 마찬가지다. 곡과 글을 쓰며 살지만 나에겐 천재의 얼굴이 없었다. 새로움을 창조했던 과거에도 유행을 끌고 가야 하는 지금에도, 천재는 커녕 세상에 내 것이라고 내놓을 만한 것이 없었다.


커피와 소다를 사발로 들이키고 싶었다. 담배도 10개비쯤 연달아 피우고 싶었다. 커피는 그 씁쓸함이 요상하게 버티는 힘을 준다. 소다는 '톡' 쏘는 청량함으로 비대하게 부푼 스트레스를 가볍게 '푝' 찔러 시원하게 '펑' 터트린다. 덜 짜증 날 땐 마운틴 듀나 판타가 좋고, 꽉 막힌 날엔 콕이나 페리에 같은 탄산수가 좋다. 커피와 소다를 사 올까 싶다가 다시 의자에 주저앉았다. 통장의 잔고가 배시시 웃으며 '노가다 더 하고 싶지?' 비꼬고 있다. 3주 뒤에 뛰어도 될 막일을 2주 후로 앞당길 수는 없었다. 스트레스는 띄어 보내는 시간 속으로 사라지지만, 날아간 시간은 돌아오지 않는다. 언제 튀어나올지 모르는 영감을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돈과 맞바꿀 수 없었다. 아이디어는 시간과 상상 속에 있다. 잊히기 전에 스케치하지 못한 생각은 더 이상 내 것이 아니다. 초점 풀린 눈으로 멍하니 흘리는 시간도 착상을 받기 위한 소중한 1분 1초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거실로 나가 방순이네 냉장고를 열었다. 빨간 엠블럼의 코카콜라와 파란색 게토레이가 태극 마크로 강강술래를 추며 눈으로 파고들었다. 생각보다 먼저 손이 나갔는데, 그 1초가 팔이 저릴 정도로 오래 걸렸다. 우선 콕을 헐레벌떡 들이키니 머리를 틀어막은 갑갑한 벽에 탄산이 달라붙어 부글부글 부식시켜 녹여버렸다. 허물어진 벽의 찌꺼기는 소리로 게워냈다. 무거움을 덜어내자 몸이 붕 뜬다. 손과 발 끝에서 작은 불꽃이 찌릿하며 기분 좋게 튀긴다. 게토레이를 들고 베란다로 나갔다. 눈이 때꾼했던 것 같은데 멀리 보이는 레드락 케년의 줄기가 선명하다. 차가운 바람이 손과 발 끝에서 와류를 일으키며 열을 뺏어가기 시작한다. 온도가 떨어지자 곧바로 '토각 토각' 튀기던 불꽃이 '보르르' 타오른다. 공기는 연료가 되었다. 소름은 '부르르' 피어났다. 바람이 팔에 돋은 털을 일으켜 세워 레일을 만든다. 불똥이 '부르릉' 시동을 걸고 철길을 따라 털을 태우며 올라온다. 고스란히 머릿속으로 옮겨 붙어 무언가를 태우는 듯 '틱틱' 댄다. 담배에 불을 붙이려 라이터의 부싯돌을 돌리자 '철커럭'거리며 눈 앞에 색감이 진한 몇 줄기의 스파크가 튄다. 한 모금의 담배 연기가 하늘로 흩어지는 모습이 유난히 높고 멀다. 게토레이의 뚜껑을 돌리니 '뽀각'하는 소리가 경쾌하다. 그 소리가 팽팽하게 당겨진 활시위를 놓은 듯 귓가에 '윙윙' 거리고 제자리를 찾아가며 진자운동을 한다. 뭔가 가볍게 날아와 머리를 '통' 건드린 것은 분명한 착각일 것이다. 순간, 콕을 따며 '딸깍, 칙이익.' 하던 소리가 있었음을 상기했다.


'분명, 치이익 하는 소리가 도화선이 타는 소리지?'


소리의 기억을 미처 닫기 전에, 다시 한번 길고 단단한 화살이 냉장고에서 번개처럼 날아와 머리에 '쿵' 부딪힌다. 눈 앞의 풍경이 흔들리며 어찔하다. 이게 무엇인지 인지하기도 전에 천둥이 무거운 음압으로 '쾅' 떨어지며 터진다. 짙은 안개가 시계를 가린다. 모든 것이 하얗다. 정신병동에 갇히면 이런 느낌일까? 12 음계의 쇠창살과 퍽 어울린다. 곧 검은 날파리들이 날아와 백색 화면을 무질서하게 채워간다. 고주파의 이명이 작업실에서 원을 그리던 나를 데려왔는지 귓가에서 세차게 팽이를 돌린다. 오래도록 괴롭히던 잊고 있던 고질병이 다시 도졌나 보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는 모르겠다. 정신을 차리니 여전히 세상은 느릿느릿한 게 멀쩡했다. 저 멀리 지나가는 사람의 걸음도 느긋하다. 극히 짧았던 순간에 일어난 착각이 어벙하다. 골머리 앓던 것이 터졌는지 머릿속이 산뜻하다. 모든 기억과 지식을 잃으면 이런 느낌일까. 이층 베란다 난간에 두 팔을 얹고 그대로 눈을 감았다. 검은 배경에 촘촘한 헤아리기 힘들 정도의 하얀 민들레가 담배 연기를 타고 흔들린다. 씨앗은 어디로 가려는 것일까.


'그래. Yoshimata Ryo의 Dandelion을 좋아했었어.'


레드락 케년 뒤쪽으로 노을이 졸린 듯이 눈을 감고 있었지만, 감은 눈 앞엔 밤하늘에 흩날리는 민들레 씨뿐이었다. 홀씨 하나하나 달빛을 머금고 슬며시 안겨온다. 바람을 타고 날아든 빨래 향기는 보드랍게 맴돈다. I-215 고속도로를 달리는 스포츠 카의 배기음이 멀리 있다. 잘 조율된 관악기를 연주하며 달리는 기분은 어떨까. 리징 오피스 앞 흑인 친구들은 랩을 하며 대화한다. 관악기와 랩의 미스매치된 편곡이 유난히 잘 어울린다. 마냥 걷고 싶은 날의 오후다.


뭐가 그리 조급했을까. 뭐가 그리 불안했을까. 또 뭐가 그리 미웠을까. 싼 값에 방을 주겠다고 혀를 놀리고 자기들 편한 대로 실컷 이용하다 필요 없어지니, 며칠 전 표독스러운 얼굴로 방을 빼라던 그 어른 같지 않은 부부가 미웠을까. 덕분에 곡의 데드라인을 맞추기 위해 잠 한숨 못 자고 코피 쏟으며 작업해야 했던 시간이 조급했을까. 아니면 작업할 공간을 잃어버려 허무했을까. 아니면 몇 달러도 안 되는 소다 사 먹을 돈 조차 아껴야 하는 현실이 불안했던 것일까. 상상 속의 풍경은 이렇게 근사한데, 좋아하던 노래도 생각났는데, 뭐가 그리 초초했을까.


하늘이 깨진다. 수만 개의 조각이 떨어진다. 민들레 씨는 싹을 틔워 함박눈이 되어 내린다. 눈이 떨어지는 속도가 원래 이렇게 느렸나 보다. 왼쪽 속눈썹을 건드리는 하얀 눈이 따뜻하다. 조금씩 타들어가며 그 체온으로 위로를 건넨다. 그렇게 처음 맞은 눈은 공기 중으로 섞여 들어 빨간 불꽃을 피웠다. 베란다에 기댄 팔에 두 번째 눈이 올라앉았다. 하이 소프라노 솔로이스트가 노래하며 verse b와 c를 연결하고 화르르 사라진다. 세 번째 눈은 첼로와 바이올린을 켠다. 끊임없이 눈이 내린다. 10도 소프라노 콰이어. 7도 보이 콰이어. 피아노는 반음 낮춘 블루노트. 팀파니와 베이스의 히트. 팀파니 롤. 리듬은 후반에 한 번 더. 윈드는 살짝. 브라스는 임팩트. 콘트라 베이스는 기준. 온몸에 부딪히는 선홍빛의 눈이 노래한다. 눈을 떠보니 하늘엔 온통 샐비어 빛 노을이 뿌려졌다.


'초등학교 때 그 골목에 피었던 깨꽃이 달콤했는데... 꿀벌이 옆에서 날아다녔어.'


레드락 케년은 천천히 석양을 끌어안으며 시간을 옮긴다.



Paint by 가영



좋은 음악이 뭐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 삶의 처절함이 진저리 나게 녹아 있어야 마음을 후비는 음악이 나오는 것이 아니냐고 물어본다. 그럴 땐 잘 모르겠다고 말한다. 다만, 시간이 무한하지 않은 짧은 인생 속에서 간접 경험을 얻기 위해 책을 읽듯, 공감과 상상, 표현력은 분명 중요한 것 같다고 답한다. 언젠가 음악 감독님과 좋은 노래에 대해 저녁놀부터 밤까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분도 편한 환경에서 고급스러운 음악이 나오는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부자들이 만든 음악의 때깔이 반지하 언더그라운드 음악가의 느낌보다 곱다고 하셨다. 노래에서 라면 냄새가 나면 슬프다고 하셨다. 마지막으로 스튜디오에 보낸 노래는 그 집에서 쫓겨나기 전에 데드라인을 맞추려 반지하에서 작업했다. 혹시 내 음악에 땅 속의 쿰쿰함이 고스란히 배어있는 것은 아닐까.


꿈을 꾸는 것이 무엇보다 행복했다. 느끼고, 생각하고, 상상하고, 아이디어를 넣고, 곡을 쓰고, 연주하고, 작업했다. 꿈을 현실로 만들겠다는 욕심은 버린 지 오래였다. 그저 현실을 꿈으로 노래하고 적으며 살아간다. 시지프스가 끊임없이 돌을 밀어 올리는 삶이지만 그냥 그게 좋으니까. 가끔,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커피잔 속에 비친 세월이 만든 짝눈을 가진 얼굴에 물어보곤 한다.


'넌 제대로 가고 있니? 언제까지 시대의 흐름을 따르지 않고 스코어 곡만 작업할 거야? 네 마음에 담은 시간과 그림을 더 정확한 음표로 그려내는 것이 그렇게 중요해? 사람들이 원하는 글을 적는 게, 너의 철학과 메시지를 전하는 것보다 더 똑똑한 일 아니야? 음악과 글의 예술성이 그렇게 중요해? 유행은 돈이란 말이야. 봐 봐. 집에서 내쫓기는 상황에서 코피 쏟고 책상에서 잠들고 3일을 밤낮으로 아이들의 웃음을 음악으로 그려서 스튜디오에 보내면 뭐하냐고. 넌 결국 실패했잖아. 사회적 이슈를 쓴다는 게 기껏해야 대필이야. 다른 사람 이름과 얼굴로 글이 실리잖아. 소다 사 먹을 돈도 없잖아. 언제까지 어른 자격 없는 사람들을 보며 살아갈 거야? 너 정말 잘 가고 있는 거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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