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중에서 가장 헌신적인 사랑의 형태를 꼽자면 바로 팬심이 그중 하나가 아닐까? 팬심이라는 단어 외에 우리말로 된 단어를 생각해 보았지만 적절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다. 네이버에서 찾아본 팬심의 뜻은 다음과 같았다.
Fan 心 : 운동 경기나 선수 또는 연극, 영화, 음악 따위나 배우, 가수 등을 열광적으로 좋아하는 사람의 마음. 영어의 fan과 마음 心의 한자가 합쳐진 신조어. <출처 : 네이버>
보통 이런 팬심은 여고시절 절정을 이루기도 하고(요즘은 꼭 그렇지도 않다), 중년의 나이쯤 또 한 번 찾아오기도 하는 것 같다. 나에게도 누군가를 열광적으로 좋아하던 시절이 있었다. 내가 중학생이었을 때, 영화관에서 <터미네이터 2>를 보고 온 후로 터미네이터를 연기한 배우의 포스터를 내 방 벽면에 덕지덕지 붙여 놓은 적이 있었다. 어느 날 평소처럼 내 방문을 열었는데 그 많던 포스터가 다 사라지고 없었다. 저녁 식구들이 다 모였을 때 포스터의 행방을 물었다. 그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아빠는 붉으락 푸르락한 얼굴로,
“내가 다 떼어서 태워버렸다! 사람을 좋아하려면 좀 보기 좋은 사람을 좋아하든가 할 것이지. 그게 … “
아빠는 더 이상 말씀을 잇지 못하셨다. 엄마가 눈을 끔뻑이며 내게 그만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나중에 아빠가 안 계실 때 엄마가 그 나머지 말을 덧붙여 주셨다.
“어디서 저런 시커먼 소도둑놈 같은 놈의 사진을 갖다가… 지 아빠 사진을 저렇게 붙여 놓아 봐라.”라고 하셨단다.
엄마와 언니는 박장대소했고 나 역시 속은 상했지만 아빠의 심정이 조금은 이해가 가기도 했다. 그 사진들은 정말 어린 소녀가 좋아하기에 조금은 부담스러워 보이기도 했을 것이다. 보디빌더로서 화려했던 과거를 가지고 있었고, 맡은 배역들도 외모와 너무 잘 어울릴만한 액션 영화의 배역들이었다. 하지만 그 영화배우를 좋아했던 이유 중 하나가 그가 보이는 외모나 맡은 배역과는 달리 상당히 엘리트였다는 것도 있었는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아빠가 왜 그렇게 싫어하셨는지 조금은 그 마음을 알 것도 같았다. 그 사람이 아니라 누구의 사진을 붙였더라도 아빠는 싫었을 것이다. 우리 막내딸의 방에 슬그머니 들어앉아 있는 남자의 사진 같은 것을 말이다.
이런저런 사람들을 좋아하던 시기를 거쳐 대학에 가서 록음악 장르를 접하게 되었다. 정확히는 김경호라는 가수의 노래를 좋아하게 되었다. 그의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 뒷목에 소름이 쫙 올라오던 느낌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그의 전 곡을 무한 반복해서 들었던 것 같다. 물론 팬클럽에도 가입을 했다. 성인이 되어서 누군가를 좋아하는 일은 선택권이 좀 더 많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가 각 지역을 돌며 투어 콘서트를 하면 우리들도 그를 따라 철새처럼 이동하며 콘서트장을 찾아다녔다. 그가 방송활동보다는 콘서트 활동을 훨씬 더 활발히 한 덕분에 우리는 좀 더 자주 그런 즐거운 시간을 가질 수 있었던 것 같다.
처음엔 노래와 가수가 좋아서 그랬겠지만 팬클럽 활동을 할수록 사람들과의 소통도 소중한 시간이 되었다. 같은 사람, 같은 노래, 같은 시간을 공유한다는 것은 소속감과 큰 위안을 주곤 했다. 지방에 살던 내가 경기도나 서울로 공연을 보러 가게 되면 팬클럽 친구의 집에서 머물곤 했었다. 또 내가 있는 곳에서 공연이 있을 때는 나도 친하게 지내던 친구를 우리 집에 초대했다. 지역별 팬클럽 모임도 활발해서 우리 지역 팬클럽 사람들과 자주 어울려 소풍도 가고 다른 가수들의 공연도 보러 가곤 했다. 그중 김경호와 비슷한 장르의 노래를 부르던 가수 윤도현의 콘서트에 갔었는데, 김경호 콘서트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에 조금은 어색했지만, 워낙 좋은 노래들이 많고, 비슷한 장르의 음악이어서 우리들은 함께 어우러져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2-3년 정도 팬클럽 활동을 하면서 보내던 중 나에겐 남자친구가 생겼고 점점 팬클럽 활동은 연애활동에 밀리게 되었다. 역시 현실에서 만나 이루는 사랑의 힘은 큰 것인가 보다. 그렇게 열심이던 활동을 더 이상 하지 않는 것에 대한 미련이 전혀 없었으니 말이다. 그 속에서 나는 충분히 빠져들어 누군가를 좋아했고, 그런 나의 모습을 스스로도 좋아했던 것 같다. 이제 그런 열정을 나는 내가 새롭게 꾸릴 가정에 쏟아붓고 싶었다. 우리 부부는 노래 취향이 비슷했다. 남을 쉽게 인정하지 않는 남편도 김경호의 가창력만큼은 인정했고, 나의 팬클럽 활동의 마무리를 잘 지켜봐 주었다. 그런 활동을 우스꽝스러운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았고 존중해 주었다.
그 시절에 1세대 아이돌이 활동을 시작했고 세대를 거치면서 아이돌의 팬덤 문화는 더욱 커져갔다. 요즘 아이들은 이런 팬심으로 하는 모든 활동들을 “덕질”이라고 표현했다. 우리가 가수나 배우나 스포츠스타 등을 좋아했다면, 요즘 아이들은 그 팬심의 반경이 훨씬 더 넓어 보인다. 아이돌 가수나 배우를 넘어, 만화 속 캐릭터를 좋아하기도 하고 인기 있는 유튜버가 그 대상이 되기도 한다. 다양한 매체가 생겨날수록 이런 팬심의 대상은 더욱 다채로워질 것이다.
우리 딸도 중학생이 되어서 방탄소년단을 시작으로 그 세대 아이들의 “덕질”이라는 것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나의 팬클럽 활동 시절이 떠올라 딸에게 가끔 얘기해 주기도 했다. 엄마 아빠의 DNA에 새겨진 음악적 취향이 반영이 되는 것일까? 딸은 우리가 좋아하던 노래도 곧잘 좋다며 같이 듣고 즐기기도 했다.
“엄마 할 이야기가 있는데, 듣고 뭐라고 하기 없기…”
고등학생이 된 딸이 어느 날, 나에게 말끝을 흐리면서 이야기 꺼내는 것을 많이 주저하는 것이다.
“내가 요즘, 아니 조금 지난 때인가, 음... 좋아하는 연예인이 생겼는데 말이야…”
연예인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일인가?
“어 그래. 누군데? 뭐라고 할 일이 뭐가 있어. 얘기해 봐.”
“그게, 좋아하는 사람이 나이가 좀 많아. 그러니까 엄마보다도… 좀 더 많을 것 같은데…”
아이쿠야! 우리 딸이 그 나이에 흔히 좋아할 법한 연예인을 좋아하는 게 아닌가 보구나! 나는 순간 내 방에 있었던 포스터들을 죄다 떼어 냈던 아빠가 떠올랐다. 어린 막내딸이 근육질의 소도둑놈 같은 남자를 좋아한다고 화를 냈던 아빠의 마음이 어땠을지 짐작이 가는 것이다. 하지만 최대한 침착해 보이려고 표정관리에 힘쓰며 누구인지 물어봤다. 내가 들을 준비를 하고 있다고 느낀 딸은 조금은 수줍어하면서 이야기를 꺼냈다. 어느 날 TV방송에 나온 가수 윤도현을 보았는데 노래가 좋아서 찾아서 많이 듣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자기가 생각해 봐도 좋아하는 가수가 나이가 좀 많아서 나한테 말하기 어려웠다고.
긴장을 하고 들었던 내 표정에 미소가 번졌다. 나는 윤도현이라는 말에 한편으론 놀라웠고 한편으론 반가웠다. 내가 이십 대였을 때 그의 콘서트 장에서, 같은 이십 대였던 윤도현의 노래를 듣고 즐겼었는데, 우리 딸이 자신의 세계와 한참 동떨어진 그 가수의 노래를 좋다고 한 것이 놀라웠다. 그리고 내심 내가 좋아했던 장르의 노래를 부르고 있는 사람이어서 반갑기도 했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세대가 흘러도 통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반대로 나는 이십 대 때 거의 듣지도 않았었던 힙합이 요즈음 즐거워지기도 했으니 말이다. 나는 딸의 새로운 “덕질”에 응원을 보냈다. 그리고 그토록 가고 싶어 하던 그 가수의 콘서트에 딸과 함께 가기로 약속했다.
얼마 만에 가보는 콘서트인지. 새삼 딸과 함께 콘서트장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괜스레 설레었다. 공연 전 굿즈를 사야 한하고 해서 조금 일찍 도착했는데 인기 있는 굿즈는 벌써 마감이 되어 살 수 없는 것들도 있었다. 딸의 좋아하는 표정을 사진에 담고 같이 웃고 곧 열릴 콘서트의 열기를 함께 기다렸다. 가수 윤도현은 세월의 흐름 속에서도 이십 대 그 시절의 목소리를 거의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오히려 나는 그때보다 지금 나이에 부르는 그의 노래가 더 와닿는 느낌이었다. 한 세월을 같이 지나고 있는 사람이라서 그러는 건지도 모르겠다. 딸이 아이돌 연예인을 좋아할 때보다 더 좋았다. 오랜만에 나도 어린 시절 내가 좋아하던 가수와 같이 뛰고 노래 부르던 그 시절로 돌아간 것 같은 뜨거움을 느꼈다.
무엇보다 딸과 함께 이런 시간을 보냈다는 점이 감격스러웠다. 연예인을 좋아하고 걱정하는 것만큼 부질없는 짓은 없다고들 한다. 사실 밖에서 바라보는 시선은 그렇게 보일 수도 있다. 뭐 저렇게까지 좋아할 일인가 싶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시간이 누군가에게는 살아갈 힘이 되어줄 수도 있다. 이런 추억 하나쯤 간직하면서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그리고 이 시간을 무엇보다 소중하게 만들어 주었던 것은, 나와 딸의 마음이 그 순간 함께 통하고 그래서 함께 뜨거워질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런 시간이 앞으로 또 있을 수 있을까? 조금 더 있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