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를 추억하며
맛있고 예쁜 것을 보면 나는 딸에게 말한다.
“엄마 이거 정말 좋아해. 이렇게 맛있고 예쁜 게 엄마도 너무 좋아.” 하고 말이다. 진심이기도 하고 일부러 하는 말이기도 하다. 딸이 알아줬으면 하고 말이다. 물론 이렇게 말하게 된 데에는 그만한 계기가 있었다.
어렸을 적 우리 집은 다섯 형제자매들이 살았다. 먹을 것을 준비하는 엄마는 늘 큰손이었다. 밤이 긴 계절에는 야식으로 여러 가지 주전부리를 준비해 주셨는데 그중에서도 오징어는 모든 식구들이 좋아하는 간식 중 하나였다. 나오기가 무섭게 맛있는 부분을 차지하려고 열개의 손이 바쁘게 움직였다. 식구들이 많은 집은 좋은 것을 차지하기 위한 생존 경쟁을 치러야 했다. 막내인 나도 그럴 때는 잽싸게 움직여서 내 몫을 차지해야만 했다. 막내 ‘챙겨주기’가 통하지 않는 시간이기 때문이었다.
오징어에서 인기가 있는 부위는 단연코 몸통 부분이었다. 우리는 서로 조금 더 두껍고 고소한 몸통 부분을 차지하려고 정신없이 움직였던 것이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아빠와 엄마의 존재를 알아챈 사람이 아빠와 엄마의 몫을 챙겨 드린다. 아빠는 머리 부분이 좋다며 머리를 달라고 하시고 엄마는 다리가 좋다고 다리를 달라고 하신다. 나는 용케도 그것을 기억해서 오징어가 나오는 날이면 맨 먼저 머리를 떼어서 아빠에게, 다리는 엄마에게 드리곤 했다.
결혼을 하고 첫 명절, 고향에 내려와 가족과의 정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날 엄마는 멀리 사는 막내 가족이 와서 그런지 좀 더 통통하고 맛있게 생긴 오징어를 듬뿍 구워서 내주셨다. 늘 해왔던 대로 나는 머리 부분을 떼어서 “이건 아빠 거”하며 건네어 드렸다. 순간 남편이 내 옆구리를 쿡 찌르며 말했다.
“아니 왜 아버님 머리를 드리는 거야. 몸통도 많은데. 얼른 이거 드려.
“아냐, 우리 아빠는 머리를 좋아하셔.”
나는 이렇게 말하며 몸통을 내가 먹으려 했다. 남편이 나를 측은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응? 내가 뭐 잘못했어? 하는 눈빛으로 내가 응수했다. 내 손에서 몸통을 빼앗으며 작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여보세요. 진짜로 아버님이 이 얇고 짜기 만한 머리가 맛있어서 좋다고 하셨을 것 같아? 아버님한테 여쭤봐. 오징어에서 어느 부위가 맛있는지를.”
그래서 나는 의기양양하게 아빠에게 물었다.
“아빠, 아빠는 머리가 젤 맛있지? 아니 아빠, 말을 해봐. 아빤 오징어 어디가 제일 맛있어? 머리가 제일 맛있다고 했잖아.”
그때 아빠의 표정은 설명하기 참 어려웠는데, 아마도 평생 나는 그 표정을 잊지 못하리라.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아빠의 표정이 떠올라서 가슴 한켠이 시큰해지는 것이다. 아빠는 아무 말씀도 하지 않고 알 수 없을 미소만 살짝 지으시면서 허공을 향해 헛기침을 몇 번 하셨다.
“허허. 허허허… 맛은… 몸통이 맛있긴 하지. 허허. 흐흠”
헛기침과 함께 하신 말씀이었다. 아니 아빠는 여태 머리가 좋다고 하셨는데, 그래서 일부러 머리를 먼저 떼어서 아빠를 챙겨드렸는데 이게 무슨 일이야. 그리고 다리가 좋다고 했던 엄마를 바라보았다. 엄마도 알 수 없는 미소만 짓고 계셨다.
“엄마, 엄마도 그래? 몸통이 맛있어?”
“맛이야 몸통이 맛이 있지.” 하시는 거였다.
아이고 이런. 엄청난 거짓말쟁이들 이셨어.
“이 철딱서니야. 이제 알겠어? 아버님 어머님이 몸통이 맛있는 걸 모르고 머리와 다리가 좋다고 하셨겠어? 맛있는 거 자식들 먹으라고 양보해 주셨다는 걸 정말 몰랐어? 어떻게 그걸 모를 수가 있어 이 철딱서니 없는 막내딸아.”
남편은 웃는 표정이었지만 나를 진심으로 나무랐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날 들은 철딱서니라는 단어는 내 평생 가장 많이 들은 날이 되었다. 남도 아는 것을 가족인 나는 왜 몰랐던 것일까? 우리 집이 시골이긴 했지만, 엄마 아빠가 짜장면을 드시지 못할 만큼 궁상맞다고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닭을 먹을 때 다리는 늘 아빠 먼저 드시지 않았던가. 그랬기에 오징어의 머리가 좋다고 하셨던 걸 한 번도 의심해 본 적이 없었다. 그날의 일화는 웃음으로 마무리 지었지만 나는 그동안 나의 철없던 행동이 참으로 부끄러웠고 죄송스러웠다. 단지 그 하나의 사건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니었다. 내가 헤아릴 수 없는 부모님의 마음은 얼마나 큰 것이었을지 그걸 깨닫는 것이 두려웠다.
좋은 것, 맛있는 것, 예쁜 것이 있으면 자식에게 먼저 주고 싶은 것이 부모의 심정일 것이다. 왜 그런지 이유를 몰랐었는데, 내가 부모가 되어보니 그런 이유가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내 자식의 입으로 들어가는 맛있는 것을 보면 행복하고, 자식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면 그만이었다. 먹기 싫은 밥을 굳이 먹으라고 하시고, 먹지 않으면 온갖 근심 가득한 표정이 되곤 하시던 엄마의 마음을 이제는 알 것도 같다. 그렇다고 한들 내가 부모님의 심정을 만 분의 일이나 알 수 있을까? 아니 결코 알지 못할 것이다. 그것이 부모의 마음이다.
그렇다면 나는 그런 부모가 되어가고 있는 걸까? 나는 결단코 그러지 못할 것 같다. 그저 엄마 아빠께 받은 사랑을 나를 통해서 딸에게 흘려보내고 있을 뿐이다. 흉내만 내고 있는 것이다. 흉내라도 잘 낼 수 있다면 좋으련만. 그것마저도 버거워서 가슴을 쥐어뜯고 힘들다고 울고 있는 나를 본다. 그러면서도 한 가지 실수는 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우리 딸이 나와 같은 후회를 하지 않게 하려고 내가 딸과 똑같이 좋아하는 맛있는 것이 나오면 “엄마도 이거 엄청 좋아해.”라고 알려주는 것이다. 그럼 우리 딸은 자기 몫과 엄마 아빠의 몫을 똑같이 나누려고 애쓴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 흐뭇하다. 또 자기 입에 맛있는 것이 있으면 엄마의 입에, 아빠의 입에 먼저 넣어주는 모습이 아름답게 보인다. 그 마음씨가 나를 닮지 않아 다행이라 생각하게 된다. 적어도 나처럼 철딱서니 없는 딸은 아닌 것이 다행이다.
우리 세 식구는 치킨 한 마리를 시키면 다 먹어본 적이 거의 없다. 1인 1닭 한다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나는 그들을, 그들은 우리 식구를 서로 이해할 수 없었다. 치킨의 부위를 크게 나누자면 다리, 몸통, 날개가 있다. 안타깝게도 우리 세 식구는 모두 다리와 날개를 좋아한다. 아무도 퍽퍽한 가슴살을 무리해서 먹지 않으려 한다. 치킨을 접한 지 얼마 안 된 딸에게 슬며시 가슴살을 건네어주면 조금 먹다가 이내 닭다리를 찾았다. 그래서 늘 퍽퍽한 가슴살은 남기게 되었는데, 언제부턴가 치킨 메뉴에 콤보 세트가 나오게 되었다. 다리와 날개를 좋아하는 사람을 위한 신 메뉴였다. 우리 가족에게 너무도 필요한 메뉴였는데 실로 절묘한 메뉴였다. 나는 날개를 조금 더 좋아해서 우리 가족은 사이좋게 다리와 날개를 만족스럽게 나누어 먹게 되었다. 나는 우리 엄마아빠처럼 맛있는 다리와 날개를 포기하면서까지 딸과 남편에게 다 양보하지는 못했는데, 그런 고민이 해소된 것이다. 이어서 윙봉 세트도 나오고 세상은 참 개인의 취향을 세심하게 고려해 주는 모양이다. 나 같은 철딱서니 없는 사람이 조금은 없어지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이제 우리 아이는 더 이상 “우리 엄마 아빠는 짜장면이, 닭다리가, 오징어 몸통이 싫다”고 할 일은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좋은 것, 예쁜 것, 맛있는 것을 보면 언제나 딸아이가 가장 먼저 생각나고 그 입에 넣어주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 찐 밤을 까다가 상처 하나 없이 동그랗고 예쁘게 잘 까지면 딸의 입 속에 넣어준다. 내가 받은 엄마아빠의 사랑은 이렇게 나의 입을 통해서 딸의 입으로 흘러가는 것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