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남아있는 공부세포는 얼마나 될까? 겨우 이런 것이 궁금해서 시험을 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거라면 그간 공부를 해보지 않아서 너무 우습게 여긴 것이리라. 막연한 미래를 위해서 무엇이라도 준비를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시작하는 것이 그나마 가장 그럴싸해 보인다. 실상은 남편의 입김도 있었지만, 그렇다고 하기엔 시작의 이유가 너무 수동적이다. 몇 년 전 봄에도 같은 이유로 수험서를 잔뜩 샀다가 그 해 겨울 죄다 갖다 버리지 않았던가. 남편의 입김도 한몫하지만, 동기는 나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홀로 서는 준비를 하기 위해서라면 어떨까. 이제까지 많은 부분, 특히 경제적인 부분을 남편에게 전적으로 의지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언제까지 이렇게 살 수는 없지 않을까? 이런 자격증 하나로 경제적 자립이 바로 이루어지진 않겠지만, 그래도 괜찮은 시작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복잡한 생각으로 시작하게 된 공인중개사 자격증 시험이었다. 나는 솔직히 그 직업에 대해서 별 생각이 없었다.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결혼 전에도 그랬지만, 결혼 후에도 수동적인 삶을 살아온 나는 내 천성이 그런 것인지, 환경이 그렇게 만든 것인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수동적인 삶에 익숙해져 버린 탓에 누군가 나에게 할 일을 주면, 나는 그 일을 잘 해내곤 했고 주어진 일이 없으면 무엇을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그럴 때마다 갈 길을 정해주는 건 대부분 남편이었다.
그게 그리 기분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고민하고 방황하는 시간을 아껴주니 나에겐 좋은 셈이다. 공인중개사 시험 이야기를 먼저 꺼낸 것도 남편이었다. 자격증만 따면 돈은 자기가 다 벌 테니 열심히 공부해서 빨리 따기만 하라고 했다. 자격증 시험이 어려운지 쉬운지 별로 생각해보지 않았다. 그저 내게 할 일이 생긴다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다만, 별생각 없이 시작하게 된 공부가 나의 끈기 부족으로 조용히 끝나게 되었던 것이 신경에 쓰였다.
중개사 시험을 위해 공부해야 할 책이 과목마다 꽤 두꺼웠고 생소한 단어도 많아 이해조차 되지 않았다. 나는 시험공부 초반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그만두었다. 다른 사람들은 독학으로도 자격증을 잘 딴다는 말에 쉽게 시작했다가 나는 안 되는 사람인가? 자괴감만 남겨두고 끝나버렸다. 쓰라린 기억이다. 같은 경험을 반복하고 싶진 않았다. 이번에는 공부 시작의 의미를 다르게 부여하고 싶었다. 나에겐 그 과정이 꼭 필요했다.
유료 강좌를 신청하게 된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다른 사람은 독학으로도 가능할 수 있지만, 나는 또다시 좌절감을 맛보고 싶지 않았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광고에서 많이 들어 익숙한 곳들이 눈에 띄었다. 나는 만에 하나 안될 경우를 대비해 수강료가 제일 저렴한 곳을 찾았다. 심지어, 등록 후 2년 안에 합격하면 수강료 전액을 환불해 준다는 조건이 붙은 2년 ALL-PASS 과정이었다.
이제 나 스스로에게 동기부여를 하는 일만 남았다. 홀로서기도 좋고 자신감 회복이라는 명목도 좋았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밀고 나갈 힘은 어떻게 만들어야 하나? 이런 고민을 안고 운동을 하러 가는 길에 사람들과 인사를 나눴다. “요새 어떻게 지내?” 으레 하는 인사에 나는 불쑥 “공부 시작했어요. 공인중개사” 이렇게 답했다. 다소 생뚱맞아 보일 수도 있지만 이것이 나의 ‘선포하기’의 시작이었다.
만나는 사람들이 안부를 물을 때마다 나는 묻지도 않은 공부 얘기를 일부러 하게 되었다. 뭐 대단한 일이라고 동네방네 떠들고 다니나 할까 싶지만, 동네방네 알고 있기 때문에 쉽사리 이 공부를 포기하진 못하리라 생각해 낸 것이다. 다음에 다시 만나게 되면 그들이 나에게 묻는다. “공부는 잘 되어가?” “합격할 수 있겠지?” “꼭 합격해 응원할 게” 이렇게 말이다. 그러면 나는 조금은 느슨해진 공부의 끈을 다시 잡게 되었다. 이보다 더 훌륭한 동기부여가 또 있을까? 내심 만족스러웠다. 나 스스로 만들어내지 못하면 그렇게 되도록 환경을 만들면 된다.
공부의 시작은 집이었다. 온라인 강좌라서 집안살림을 하는 나에겐 집에서 하는 편이 여러모로 좋았다. 하지만 살림을 하는 사람이라면 집안일이 눈에 띄기 마련이다. 평소 열심히 살림하는 것도 아니지만, 이런 나에게도 집안일이 신경 쓰였다. 강의를 켜고 5분쯤 지나면 자연스레 눈이 감겨오고 어느새 침대 위에서 자다가 깨는 게 일상이 되었다.
의지로 버틴다는 것은 젊을 때나 가능한 것인지, 하루에 2시간 공부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한 번은 딸이 다니는 스터디카페에 따라가서 공부를 했다. 집에서 안되니 다들 나와서 하는 것이겠지 하는 마음으로. 스터디카페는 생각 이상으로 정숙한 분위기였다. 들어가기 전 주의사항을 살펴봤다. 모든 행동 하나하나를 조심해야만 했다. 집중은 잘 되겠구나 싶었다. 하지만 조용히 해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인지 나는 오히려 마음이 너무 불편했다. 그곳에 어울리지 않는 이방인처럼 눈치만 보다가 나온 느낌이랄까.
그다음으로 집 밖에서 공부할 곳을 찾은 건 카페였다. 카공족 얘기가 좀 신경 쓰이긴 했지만 최대한 공부하기 좋을 만한 카페를 찾아갔다. 먼저 자리를 잡고 공부하는 사람들이 눈에 띄어서 다행이었다. 커피 맛도 마음에 들었다. 공부를 하다가 걸려오는 전화를 받아도 되고, 관절이 불편해서 움직이고 싶을 때 마음껏 움직이고 여기저기 걸어 다녀도 되고, 졸리면 밖으로 나가 바람도 쐬고 올 수 있어서 나에게 딱 맞는 공부 장소가 되었다. 사람들이 많아 시끄러울 땐 이어폰을 끼고 잔잔한 음악(지브리 0st 피아노 연주곡을 많이 들었다)을 들으면 된다.
지금도 그렇지만 세상살이에 태평하기 그지없는 나는 종종 한량이라는 소리를 듣곤 했다. 공부하는 데 있어서도 나의 한량 같은 성품이 그대로 반영되었다. ‘주경야독’하여 목표를 이루는 사람들이 있듯, 나는 ‘주롤야독’하여 반드시 합격하겠노라 가족들에게 큰소리를 쳤다. 낮에 하던 운동인 롤러스케이트를 포기하면서 공부하진 않겠다는, 한량 같은 내가 내건 고집이었다. 그렇게 공부한 결과 반은 성공, 반은 실패라는 애매한 성적표를 받았다.
1차를 합격하고 2차는 불합격이었다. 일도 하지 않고 공부를 했기에 1년 안에 1,2차 동시 합격하는 것이 나의 목표였다. 큰소리쳤던 나는 많이 위축되었고 자괴감이 깊숙이 들어와 앉게 되었다. 또다시 1년을 공부해야 한다는 사실이 괴로웠다. 쉽지 않은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공부한다고 선포하여 알고 있던 지인들이 합격 여부를 물어볼 때 1차만 합격했다는 말을 전하면, 그래도 다행이라며 위로와 격려를 해주는 이들이 고마웠다. 그들에게 나의 공부를 알리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2차만 공부해도 되는 두 번째 시험 준비는 공부량이 줄어서 더 할 만하겠다 생각했는데 그 생각은 완전히 예상을 빗나갔다. 반드시 합격해야 한다는 부담감은 모의고사 성적을 받을 때마다 오르지 않는 낮은 점수에 매번 좌절감을 맛보았다. 1년이 넘게 공부를 해오는데도 점수가 나오지 않자 자신감도 떨어지고 한량 같이 여유를 부렸던 내가 한심하기도 했다.
그래도 포기할 수 없는 오기는, 시험결과를 궁금해할 나의 지인들에게 합격했다고 말하고 싶은 간절한 마음에서 나왔다. 포기하지 않기 위해서 시작할 때 ‘선포’하는 방법을 선택하지 않았던가. 반드시 합격해서 나의 합격소식을 가족과 그들에게 전하고 싶었다. 매년 10월 말 토요일이 일 년에 한 번 시험을 보는 날이었다. 7월 모의고사를 시작으로 8월 모의고사부터는 합격 점수가 나오기 시작했다. 공부를 할 때 나오는 상승 곡선은 생각보다 직각의 형태를 띄는 것 같다. 끝이 없을 것 같은 정체기의 평행했던 선이 엉덩이의 힘을 받기 시작한 어느 시점부터는 계단처럼 상승하는 것을 보이기 시작했다. 자괴감을 넘어서 합격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하루에 7-8시간을 채우려 노력했고 결국 2년 만에 합격의 영광을 누렸다. 채점을 하는 차 안에서 얼마나 떨리고 초초했던가. 그 얼떨떨하고 흥분된 마음이 지금도 남아있다. 자격증을 땄다는 기쁨보다, 내가 선포했던 일을 해냈다는 기쁨이 더욱 컸다. 이제 내 안부를 물어봐 줄 그들에게 합격의 결과를 전해줄 수 있다는 것이 무엇보다 내가 거둔 큰 결실이었다.
지금도 나는 포기하고 싶지 않은 어떤 일을 시작할 때, 누군가에게 선포하는 일을 한다. 나 스스로 그 말을 한 이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포기하지 않고 하게 될 것이다. 이것을 선포하기의 매직이라고 부르고 싶다. 얼마 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둔 나에게 누군가 어떻게 지내냐고 물을 때 “글 쓰고 있어”라고 말했다. 이건 나에게 하는 선포인 것이다. 스스로 포기하지 않고 싶기에 누군가에게 “이것을 시작했노라” 말을 하고 나면 의지가 꺾이지 않는 힘이 생길 것을 알고 있다. 무엇인가 이루고 싶고 시작한 것을 끝까지 밀고 나가고 싶을 때 일단 선포하고 시작해 보라고 권하고 싶다. 어쩌면 선포하기의 매직이 펼쳐질 수도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