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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징징 Nov 20. 2023

이 다음엔 어디서 살게 될까

이왕이면 좋은 곳에서 좋은 사람들과 어울려 살았으면 좋겠어



2주 만에 서울에서 맞이하는 토요일. 약속도 없어서 오롯이 혼자 보낼 수 있는 주말이다. 뭘 하며 시간을 보내는 게 좋을까? 역시 친구를 만나는 게 낫나? 잠시 고민하다가 홀로 있기를 택한다. 좋은 공간에서 책도 읽고 글도 쓰며 시간을 보내면 좋을 것 같은 날씨다. 지도 앱을 뒤져 아무렇게나 목적지를 정하고, 훌쩍 버스에 오른다. 


한 시간 반이 걸린다곤 했지만, 환승 없이 한 번에 갈 수 있다고 하니 괜찮다. 경로가 복잡해지는 것보단 오래 걸리는 것이 낫다. 혼자 있기에 가능한 여유다.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면 익숙한 거리가 보이고, 처음 보는 가게도 보이고, 길가에 수북하게 쌓인 은행잎도 보인다. 떨어지는 은행잎은 모두 노란색인 줄 알았는데, 어느 골목에 쌓인 은행잎은 유독 초록빛이 많다. 어쩌다 채 물들기도 전에 떨어졌을까? 은행잎의 사연이 궁금해진다.

 

버스는 제법 익숙한 골목을 차례차례 지나간다. 차를 끌고 병원에 갈 때면 항상 지나던 골목을, 여권을 재발급받으러 찾아왔던 구청 주변을, 다니던 대학교 주변을 지나간다. 학교 주변에서 자취하던 그때가 자연스레 머릿속을 스친다. 학교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참 좋은 골목이 많았는데, 그땐 왜 이게 좋은지 모르고 안 돌아다녔담? 하고 과거의 나를 타박하려다가 곧 멈춘다. 그때의 나는 돈도 없었고, 마음의 여유도 없었고, 무엇보다 많이 불안했다. 주변이 눈에 들어왔을 리가 없지. 


창밖으로 지나는 길을 바라본다. 그때 나는 내 동네를 어떻게 여겼더라? 좋아하기도 했고, 지겨워하기도 했다. 번화가라 놀러 갈 곳이 많아 좋았고, 번화가라 시끄럽고 복잡했으며, 뭣보다 지저분해서 싫었다. 처음으로 가족의 품을 떠나 홀로 살 수 있어 자유롭고 좋았고, 처음으로 가족의 품을 떠나 홀로 살아야 해서 힘들고 싫었다. 

2018년 어느 날, 지하철에서 찍었던 한강 사진. 

장소에 대한 감정이 좋다, 싫다 한 가지뿐일 리 없다. 오래 머물렀다면 더더욱. 나는 그곳에 꽤 오래 머물렀고, 그래서 여전히 익숙한 그 거리를 볼 때마다 마음이 복잡해진다. 그립기도 하고, 지겹기도 하고. 나고 자란 곳은 아니지만, 꼭 고향 같다는 생각이 든다. 간혹 그립지만, 그렇다고 자주 찾지는 않는. 이름을 듣거나 어쩌다 한 번 돌아왔을 때야 그리워했다는 걸 깨닫는. 그리워하는 것이 장소인지, 아니면 그 시절의 나인지 구분할 수 없는. 


서울에 와서 나는 다섯 번의 이사를 했다. 정나미가 뚝 떨어지는 학교 기숙사. 너무 춥고 바퀴벌레까지 나오던 첫 번째 자취방. 대학원 동기들의 아지트가 되었던 두 번째 자취방. 오빠와 살던 집. 그리고 지금 사는 곳. 하나하나 말하자면 끝도 없는 이야기가 녹아 있어 떠올릴 때면 마음이 복잡해지곤 하는 곳들. 이다음에 나는 어디로 또 가게 될까. 


좋은 카페나 식당에 가면 이 근처에 사는 내 모습을 상상해 보곤 한다. 산책하기 좋은 곳은 있는지. 너무 시끄럽진 않은지. 너무 외지진 않았는지. 도로는 복잡한지. 근처에 마음을 붙이고픈 식당이나 카페가 있는지. 집값은 너무 비싸진 않은지. 혼자 이런 것들을 열심히 재본다. 이곳은 나를 환영해 줄지. 


서울을 벗어나도 좋겠어. 여행지에 마음을 빼앗긴 채 그런 상상을 하다 이내 마음을 접는다. 친구들이 멀어지는 건 싫다. 어디에 살든, 친구가 “뭐해? 술 마실래?” 하면 한달음에 달려갈 수 있는 곳에 살고 싶다. 그러려면 서울에서 멀어져 봐야 경기도. 친구들은 직장에 발목이 묶여 이 즐겁고 지겨운 도시에서 벗어날 수 없다. 친구들을 따라 내 발목을 수도권에 묶는다. 이렇게나 답답할 수가. 


얼마 전부터 귓가에 맴도는 말이 있다. ‘젊은 사람들이 도시를 선호하는 건 당연한 현상이지만, 우리나라엔 그 젊은 사람들이 선택할 수 있는 도시가 서울 말고는 없다.’는. ‘듣똑라’의 ‘서울에 대체 왜 살고 싶을까’ 영상에서 나왔던 말이다. 회사가 죄다 서울과 경기도에 있으니 제아무리 다른 도시를 탐한다 한들 이곳을 떠나겠다 결심하기는 쉽지 않다. 그렇게 자꾸만 서울로 사람이 몰린다. 시끄럽고 복잡한 이곳이 지겨운데 지겹단 이유만으론 떠날 수 없다. 


좀 더 나이가 들고, 나와 친구들 모두 거주지를 마음대로 고를 수 있는 때가 오면 (오긴 할까?) 난 내 머물 곳으로 어딜 선택하게 될까? 어디든 마음 맞는 친구들 몇 명과 가까운 곳에 옹기종기 모여 살고 싶다. “뭐해? 술 마실래?” 하면 모자만 푹 눌러 쓰고 어슬렁어슬렁 나와도 서로를 만날 수 있는 곳에서. 누군가에겐 유치하고 철딱서니 없는 상상으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난 진지하다. 

친구와 놀러갔던 동탄 호수공원에서. 연을 찍은 건데 아파트가 더 크게 찍혔다. 

“나 농담이 아니고 진짜 진지한데.” 친구들과 한집에 모여 떡볶이를 배 터지게 먹고 늘어져 있던 어느 날. 실없는 농담을 주고받으며 웃다가 갑작스레 운을 띄웠다. 다들 귀를 기울여준다. 나중에 진짜로 같은 동네에서 살자고 말을 잇는다. 아무도 웃어넘기지 않는다. “당연하지. 나도 진지해.” 돌아오는 대답이 고맙다. “네가 미리미리 땅 알아보고 있어라. 연장자니까.” 젠장. 이건 좀 부담스럽다. 


대화는 자연스레 어디에서 사는 것이 좋을지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진다. 애석하게도 수도권 밖을 상상할 수 있는 사람은 아직 없지만, 그래도 저마다의 이유를 들어 자기 동네를 영업한다. 주변의 좋은 카페와 공원으로 어필하던 A의 동네는 아쉽게도 우리의 단골 떡볶이집이 있는 B의 동네 인기에 밀린다. 아무래도 이 떡볶이를 포기하긴 힘들지. 대화 주제가 또다시 떡볶이로 향한다.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망상은 잠시 집어치우고, 떡볶이 소스에 밥을 볶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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