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2013년의 나
아일랜드는 섬나라다. 유럽에서도 아이슬란드 다음으로 서쪽에 있(유럽연합국 중에는 가장 서쪽에 위치)는 약간 소외된 국가다. 미국에서 보면, 유럽의 관문인 나라이기도하다. 지리적으로 영국과 인접해 있고 대서양이 나라를 둘러싸고 있어서 바이킹이나 영국의 지배를 역사적으로 많이 받았다.
_2018년의 나
아일랜드의 케리 Kerry에서 미국과 캐나다 국기를 심심치 않게 본다. 여름이 되면, 그곳은 관광지로의 면모를 갖춘다. 꽤 많은 미국인과 캐나다인이 이곳에 집을 짓고 휴가를 즐긴다. 단순히 유럽에서 동떨어진 나라로만 알았지만, 숨어있는 1인치를 열어보면 아메리칸 대륙과 가까워 교류가 잦다. 처음에는 이 나라에 브라질인이 많은 이유도 도통 몰랐으나, 지리적인 조건을 이해하고는 얼른 수긍했다. 절대 소외된 국가가 아니다.
_2013년의 나
더블린 시티에서 가장 높은 빌딩은 하이네켄 Heineken 건물이다. 더블린에서 가장 인구 이동이 많고 관광객이 즐비한 거리에도 건물 대부분은 5층 이하다. 그것도 오랜 시간 견뎌온 건물 안에 상점들이 들어서 있다. 하늘이 건물을 허락하지 않은 건 아니겠지만, 늘 하늘이 가까워서 좋다. 1층은 ground floor라고 하고 우리나라에서 2층이 아일랜드에서는 1층에 해당한다. 어학원 첫날, 난 강의실을 헤맬 수밖에 없었다.
_2018년의 나
아일랜드의 영토는 산지보다 초원이 주를 이룬다. 고속도로를 달리면 넓은 초원 저 멀리 낮은 산이 보일 정도다. 흙만 좋으면 기름진 평야가 펼쳐졌을 텐데. 더블린 1, 4 지역에서 더블린 항구 쪽으로 갈수록 새로운 건물들이 들어서서 제법 높고 신식 건물들이 보인다. 구글, 페이스북 등 각종 IT 계열의 유럽지사가 입주한 더블린 4는 우리나라의 강남의 테헤란로를 연상케 한다. 젊은 더블리너들도 돈을 벌어 이곳에 보금자리를 얻는 게 꿈이라고 한다. 집값이 시티 안쪽보다 훨씬 비싸다. 아파트의 연식도 그리 오래되지 않아 딱 봐도 값이 나가 보인다. 브렉시트의 영향인지 아일랜드의 몸값은 더 오르고 있다. 다른 국가에서 공부하고 일하던 아이리시 젊은 층이 들어오면서, 집과 일자리의 수요가 폭증했다. 자연스레 월세는 5년 전보다 50% 이상 상승했고, 외국인 노동자들이 있던 일자리를 아일랜드 사람들이 점유하는 형국이다. 다행스러운 건, 고용주들이 한국인의 평이 좋아 서로 쓰려고 한다는 점이다. 자원이 없고 오롯이 노동력으로 대한민국의 경제를 이끈 민족 아니겠는가. 암튼 매년 갈수록 건물을 짓는 크레인 수는 늘어만 간다. 더 이상 하이네켄 건물이 마천루처럼 보이지 않는다.
_2013년의 나
소외된 국가여서 그런지 아일랜드인의 외모는 타 유럽인과 구별된다. 아일랜드 어학원 선생님이 수업 시간에 이실직고했다. 공식적인 자료에 의한 건지 모르지만, 아일랜드인(남성이라 지칭한 거로 사료됨)은 유럽에서 외모 순위가 뒤에서 3등이라고 했다. 여성은 뚱뚱한 호호 아줌마 같고, 남성은 키 작고 바보 같다고 했다. 그래서 아일랜드 남성과 여성이 서로를 ‘지적질’하면서 비난한단다. 물론 약간의 과장과 유머를 첨가했지만, 어느 정도 수긍이 간다. 키가 작고 ‘딴딴’한 체형을 더블린 시내에서 찾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시티센터에서 인구 이동이 잦은 곳에는 스타벅스 벤티 사이즈 정도의 종이컵을 놓고 구걸하는 거지들이 앉아 있다. 내 아일랜드 친구는 그 거지들 생각보다 돈을 많이 버니까 동정심 갖지 말라는 거다. 혹시나 해서 지켜보니 그러하다. 생각보다 많은 행인이 그 안에 동전이 넣고 간다. 그렇게 모은 돈으로 그들은 술이나 약을 사 먹는다. 그렇다. 더블린 거리에서 약(drug)을 하는 젊은 청년들을 쉬어 볼 수 있다. 가끔 눈이 퀭해 보이거나 대낮에 길거리에 앉아 졸고 있다면 그들이 확실하다.
_2014년의 나
유럽에서 1인당 맥주 소비량 2위 국가답게 술에 취한 사람은 아침부터 볼 수 있다. 물론 이 모든 건 시티 중심가의 이야기다. 아일랜드인은 친절한 민족이다. 하지만 종종 실망하는 모습을 경험한다. 특히, 틴에이저들은 동양인을 멸시하는 경향이 있다. 이들은 아일랜드에서 동양인이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해를 가하면 추방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이를 알고 역이용하는 셈이다. 그러나 시티에서 멀어질수록 친절하고 정이 많은 아일랜드 사람을 만날 수 있다. 그 지역의 틴에이저들도 순수하다. 시티센터에 사는 모든 아일랜드 사람이 위협적이란 말도 아니다. 어느 나라든지 일부가 문제를 일으키지, 대부분의 사람은 동양인에게 관대하다. 나는 습관적으로 인종차별에 대비했던 것 같다. 그래서 마냥 길거리를 걸을 때 편하지만은 않았다.
_2013년의 나
거리에 지나는 아일랜드 청년들은 회색 운동복 바지가 교복인 양 입고 다닌다. 아일랜드에서 축구가 유명하다고 하지만, 그 이후 때문은 아닌 것 같다. 축구에 더 열정적인 영국은 슈트 입은 남성들이 즐비하다. 몸매가 통통한 아일랜드 여성들도 공통적인 패션이 존재한다. 하지만 한국인이 판단하기에 패션 테러리스트에 가깝다는 게 중론이다. 짧은 치마나 반바지를 입지 않고 입는 레깅스. 처음에는 이들 뒤에서 걷는 것조차 민망했다. 가끔은 팬티가 실루엣 사이로 비치는데도 이들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반바지를 배꼽 위까지 추어올려 입어서 엉덩이를 ‘먹는’ 경우도 있다. 좀 논다는 10대 여성들은 분홍, 파란색 등으로 탈색하고 얼굴에 피어싱도 장착한다. 본인을 봐달라는 의미인지 형광 옷을 입고 시끄럽게 돌아다닌다.
_2016년의 나
아일랜드 사람의 얼굴에는 주근깨가 많다. 그들은 피부도 하얘서 티가 많이 난다. 일사량이 많아서 얼굴에 반점이 많은 것도 아닌데. 아일랜드는 해가 부족한 나라라서 우리나라처럼 햇볕을 가리고 다니지 않는다. 멜라닌 색소가 부족한 인종이라 해가 나면 잔디밭에 너나 할 것 없이 광합성을 즐긴다. 기차나 버스에 선팅 유리나 해가림 막 조차 없다.
_2013년의 나
홈스테이 하는 1달 동안 으깬 감자를 얼마나 먹었는지 기억이 안 난다. 그만큼 아일랜드는 감자를 많이 먹는 민족이다. 한 때 감자 대기근으로 인해 약 110만 명이 굶어 죽었다는 역사도 존재한다. 감자를 싫어하는 타입은 아니지만, 매일같이 나오는 감자에 애정을 끝까지 갖기란 어려운 일이다. 감자튀김이 속해 있는 요리인 피시 앤 칩스. 대구살로 튀긴 피시와 감자튀김의 칩스. 이 나라는 감자가 저렴하므로 돈 없는 유학생들에게는 안성맞춤인 재료다. 심지어 달콤한 디저트에 빠져 살이 찌는 한국인 여성들이 감자로 원푸드 다이어트를 시도한다고 했지만, 감자를 튀겨 누텔라 초콜릿 시럽에 찍어 먹는 불상사가 벌어지곤 했다.
_2016년의 나
길거리에서 임신한 아일랜드 여성을 자주 목격할 수 있다. 아일랜드는 아직도 가족구조가 대가족이 많다. 내가 묵었던 홈스테이에서도 사진 속 손자 손녀가 10명이 훌쩍 넘었다. 대가족인 나라의 인구는 약 500만 명 정도다. 성인으로 성장하면 아일랜드에 거주하기보다는 더 큰 나라인 미국이나 캐나다로 나간다고 한다. 물론 예전 감자 대기근 때 미국에 정착한 아일랜드 사람만 해도 꽤 된다고 들었다. 하여튼 예나 지금이나 자손 번식력은 아일랜드가 탁월하다. 생후 얼마 안 된 신생아의 외출이 빠르다. 우리나라의 경우, 태어난 지 100일 전에는 체온조절이 힘들고 면역력이 약화하는 이유로 외출을 삼간다. 아일랜드는 다르다. 뭐가 옳은지 모르지만, 1달도 안 된 신생아도 유모차를 대동해서 밖을 나온다. 심지어 담배를 피우면서 유모차를 끄는 엄마도 자주 본다. 나로서는 이해하기 힘들었다. 사파이어 눈을 가진 아이, 얼마나 귀여운지 모른다. 영아, 유아 시절까지는 그 귀여움이 유지하다가 10대가 되면, 남녀를 막론하고 급격히 성숙한다. 비단 아일랜드만이 아니다. 이는 백인의 특성인 것 같다. 여성들은 긴 파마머리가 눈에 띄게 많다. 아일랜드 지인에게 들은 말인데 켈트족 순수혈통의 아일랜드 사람은 머리카락의 색이 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