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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턱대고 텃밭 일기(1) - (D+0) 텃밭 분양







농부. 감히 꿈꾸지도 않았고, 꿈꿀 수 없었던 직업이다. 특히, 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란 나에게 농사는 경험조차 할 수 없었다. 시골을 동경만으로 생각하다가 행동에 옮겨 참여하게 된 게 ‘시골살이 학교’였다. 귀농귀촌에 한 발을 비집고 들어가 그 삶을 엿듣기 시작했다. 1주일 동안 듣고 겪은 시골은 내 인생에 있어서 몇 안 되는 임팩트였지만, 그 삶은 온전히 내게 행하라 하면 머뭇거릴 수밖에 없었다. 결국 내 깜냥으로 토양에 무언가를 심고 기르는 건 무리라는 게 학교를 수료한 후 내린 결론이다. 그래도 미련은 남았다. 우선 뭐라도 심고 가꿔보잔 마음으로, 서울농업박람회에서 데려온 상추와 오이 모종을 시험 삼아 베란다에서 키워보기로 했다. 상추는 거의 입양 수준이어서, 이미 1/3 정도 잎이 자란 상태였고, 오이는 꽃이 필 시기였다. 상추를 따서 고기쌈을 해 먹은 이후, 다른 수확물은 없었다. 하늘 높이 자라는 상추 줄기는 심상치 않았고, 가지치기를 하지 않은 오이도 줄기만 길게 누워 있는 형상이었다. 그렇게 나의 첫 수확은 마감되었고, 절반의 성공이라는 후한 평점을 나 자신에게 매긴 채 다음을 기약했다.



20160821_193404.jpg 공덕 공유지에 있는 텃밭


약 1년이 지났다. 우연한 기회에 지인에게서 텃밭 분양 제의를 받았고, 한 줌의 고민 후 바로 모임에 합류했다. 일단, 내가 사는 곳과 텃밭과의 거리가 가까웠다. 물리적 거리가 멀수록 애정도도 비례하기 때문이다. 걸어서 5분 거리에 내 텃밭이 있다는 상상만으로, 난 이미 수확 상상까지 마쳤다. 겸손해지자. 하늘과 땅 앞에서 식물은 거짓말을 하지 않으니. 이번에는 열심히 길러보자.



20160821_193434.jpg 분양받은 텃밭. 정리할 게 많다.


첫 모임에 불참했다. 이미 계획된 여행을 취소할 수 없었기에. 분명히 첫날 소개하면서, 텃밭의 임자가 나눠질 텐데 말이다. 하지만 욕심을 버렸다. 주어진 내 땅에 애정을 선사할 준비까지 마쳤다. 이 모임에 이끈 동생이 내가 지을 땅을 카톡으로 보내줬다. 예상은 했지만, 생각보다 땅이 거칠어 정리하는데 많이 노고가 필요해 보였다. 이미 땅을 정리한 다른 구역과는 달리, 내 땅은 야생 그 자체였다. 철거가 필요한 나무, 이름 모를 잡초들, 그 한가운데 쌓인 모래성. 오합지졸 모인 외인 구단 팀을 구원할 감독이 된 기분이었다. 절망이 아닌 바닥부터 치고 올라갈 수 있다는 긍정의 힘이 불렀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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