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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턱대고 텃밭 일기(2) - (D+9) 1차 밭 다지기






내 밭에 기운을 불어넣어주자!



2주 연속 텃밭 모임에 나가지 못했다. 지난 토요일 아침에 모여 텃밭의 선험적 지식을 가진 분의 주도하에 교육과 실습이 진행됐다. 출발부터 엇나가는 기분이 들어 나 자신에게도, 같이 텃밭을 일구는 일원들에게도 미안했다. 정규 수업처럼 진행하는 건 아니지만, 공동의 활동으로 공공의 밭을 일궈 수확하는 게 모임의 취지이기 때문에 단독 행동보다는 대의를 따르는 걸 내 스스로 권고했다. 대부분의 땅은 정리가 어느 정도 된 상태였다. 버림받은 자식처럼 내 텃밭은 화가 오를 대로 올랐다. 차마 두 눈으로 떳떳하게 바라볼 수가 없었다.



20160830_110557.jpg 잡초라기 보다는 나무에 가까운 잡초.


이웃들과 보조를 맞추려고 평일에 시간을 냈다. 집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에 있는 텃밭. 집에 모종삽조차 없었고, 어떤 도구가 필요한지도 몰라 두 손 가볍게 나왔다. 혹시나 하고 간 텃밭에는 나 밖에 없었다. 조언을 구할 사람도 없어서 눈치껏 제멋대로 자란 잡초부터 뽑기 시작했다. 특별한 도구 없이 근처 편의점에서 산 목장갑만을 끼고 작업했다. 유난히 뜨거운 햇볕은 한낮 작업을 더디게 했지만, 그걸 탓할 시간도 없었다. 뽑기 쉬운 자잘한 잡초부터 저항력이 높은 순으로 제거했다. 이런 작업은 생각을 비워야 생산적이어서, 손이 하는 일을 머리가 모르게 했다. 남은 잡초는 2개. 쉽게 뿌리를 내줄 것 같지 않았다. ‘너의 이름은 뭐니?’ 정체가 궁금했다. ‘모야모’ 앱(알고 싶은 식물을 찍어서 업로드하면 집단지성의 힘으로 이름을 알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 ‘식물계의 지식인’으로 보면 된다.)의 도움도 얻지 못했다. ‘넌 어디서 날아와 누구의 관리도 없이 이렇게 자랐는가?’ 족보 없이 자란 잡초에게 안타까운 감정이 들었다. 한동안 바라만 봤다. ‘이도 생명인데, 내가 뽑을 자격이 있을까?’ 더 이상 감정을 실으면 작업을 진행할 수가 없었다. 뭔가 찝찝하긴 했다. ‘생명 위에 생명’이 존재하진 않는데 말이다. 재개발에 밀려난 힘없는 민초들의 고통을 난 무시 해버렸다.



20160830_112015.jpg 어느 정도 작은 잡초를 제거한 텃밭. 한 가운데 모래밭.




20160830_114441.jpg 모든 잡초와 돌을 제거한 모래가 가득한 텃밭.



1시간 정도 정리하니 민낯이 드러났다. 수북하게 쌓인 모래성이 민낯의 중심이었다. 식물이 자라는데 중요한 요소가 흙인데, 알알이 성성한 모래로 밭을 만들 수 있을까. 모래의 효용성이 의심되지만, 그렇다고 다 퍼 낼 근거가 없어서 그냥 두기로 했다. 거의 마무리되어 갈 때쯤 나에게 텃밭을 제안하고 같이 분양받은 동생(닉네임: 아바타)의 연락이 왔다. 그녀는 저번 주에 이미 밭을 일궜는데, 지금의 상태가 궁금했던 모양이다. 아바타의 밭은 의장대 기수처럼 자란 해바라기가 랜드마크다. 보기 좋은 팻말로서 효용 가치가 있어서 그냥 두기로 했었다. 그녀의 땅은 균 배양을 한 후 뽑은 잡초로 자연 멀칭을 한 터라 더 정갈해 보였다. 새로운 씨앗이 뿌려지기 전 입주공사가 잘 된 아바타의 밭이 부러웠다.




20160830_112639.jpg 아바타의 정리된 텃밭. 뽑은 잡초로 자연 멀칭한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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