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롤리팝 맨의 용서
아일랜드 여행동화 <위클로우의 파라다이스>
by 술빚는 여행자 신동호 Nov 25. 2019
“머피의 코가 작아졌다!!!”
등굣길에 지나가는 친구가 소리쳤다. 노란 먼지 괴물은 머피의 코를 비틀었다. 머피는 뿌리치고 도망갔지만, 괴물은 집요하게 머피를 괴롭혔다. 그나마 학교에서는 롤리팝 맨이 머피의 곁을 지켜주었다. 노란 먼지 괴물은 건강한 롤리팝 맨 앞에서는 꼼짝을 못 했다. 머피는 롤리팝 맨에게 달려갔다.
“할아버지 고마워요. 그리고 미안해요.”
“미안하긴 뭘.”
“저 때문에 진흙탕에 빠져 바지가 젖었잖아요.”
“머피야, 어서 들어가. 지각하겠다. 너 어제도 겨우 들어갔잖아. 내 바지는 걱정하지 않아도 돼.”
시간이 지나, 수업이 끝났다. 다행히 오후에는 비가 왔다. 우산과 우의가 없는 머피는 비가 그치길 기다렸다. 어제 비를 맞고 집에 왔다가 엄마한테 혼났기 때문이다. 교실 안의 친구들이 하나둘씩 집으로 떠나고 혼자 정적을 감당하고 있을 때, 앞문으로 롤리팝 맨이 들어왔다.
“머피야, 우산이 없어서 교실에 남아 있어?”
“할아버지, 전 조용한 교실에서 빗소리 듣는 게 좋아요.”
“신기해요. 몇 분 전만 해도 이 안은 사람과 소리로 가득 찼는데, 지금은 오직 저뿐이잖아요.”
“머피가 소리에 민감하구나?”
“빗소리, 바람 소리, 사각대는 소리를 들으면 있던 걱정도 사라져요. 놀랍게도.”
“머피가 좋아할 만한 곳이 생각났어.”
“어디요?”
“할아버지가 나중에 여기 정리하고 살 곳이야.”
“와, 나도 갈래요. 어딘데요?”
할아버지는 지갑을 열어 사진 한 장을 꺼냈다. 말끔한 아치형 동산 위에 큰 나무와 집 한 채가 전부인 풍경 사진이었다. 그는 교실 바닥에 눕더니 팔을 뻗어 사진을 지긋이 바라봤다. 머피도 같이 누웠다.
“머피야, 여기는 위클로우 Wicklow란 곳이야. 더블린에서 위클로우 웨이 Wicklow way란 길을 따라가면 만날 수 있지. 할아버지의 아빠가 위클로우에 집을 짓고 난 후 심장마비로 돌아가셨어. 그래서 나는 한동안 이 집을 미워했지. 아빠를 뺏어간 것 같아서. 세월이 지나고서야 용서가 되더라.”
“전 아빠를 미워하고 있어요. 서로 말도 안 해요. 그저 방에 혼자 있는 게 편해요. 이러면 안 되는 줄 알면서도 아빠 얼굴만 보면 싫어져요.”
“머피야, 너도 좀 더 자라면 아빠의 마음을 이해하고 용서하게 될 거야. 당장 그렇게 하라고 강요하진 않아. 잘 들어봐. 빗소리는 듣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크게 들리지만, 관심을 두지 않으면 존재마저 잊게 만들어. 머피는 지금 이 빗소리를 사랑하잖아. 분명 아빠도 언젠가는 너처럼 빗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될 거야.”
어느새 머피가 사진을 들었다. 자세를 고쳐 앉아 뚫어지듯 바라봤다. 할아버지는 머피에게 방해되지 않게 조용히 일어났다. 머피가 이 집에 누가 사느냐고 묻자, 그는 고개를 저었다. 이번에는 놀러 가도 되냐고 묻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머피는 사진을 할아버지에게 돌려줬다.
“혼자 갈 용기는 없어요. 하지만 가슴이 뜨거워졌어요.”
“난 기억이 가물거려 찾아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
“당장 떠나면 되잖아요.”
“할아버지는 머피만한 손자랑 같이 살고 있어. 그 손자를 키워야 해서 일을 멈출 수 없어. 마치 머피의 아빠처럼. 손자가 독립하게 되는 날, 난 떠날 거야.”
“제가 돕고 싶어요. 아직 큰 힘이 되지 않겠지만요.”
“할아버지는 머피의 말만 들어도 이미 그곳에 간 것 같구나.”
어느새 비가 멈췄다. 다행히 노란 먼지 괴물은 보이지 않았다. 머피와 할아버지는 함께 교실에서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