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치유의 땅에서 만난 아저씨

아일랜드 여행동화 <위클로우의 파라다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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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로우 웨이의 시작은 말레이 공원부터였다. 출발점이라고 하기에는 돌 몇 개 쌓아 만든 게 전부였다. 그나마 지도가 그려진 게시판은 바래서 보기 불편했다. 일정한 간격에 세워진 ‘옐로 맨 Yellow Man’이란 표지판이 유일한 안내자였다. 아빠가 챙긴 종이지도와 옐로 맨을 믿고 출발했다. 걷는 순서를 정하지는 않았지만, 자연스레 아빠가 앞에 그 뒤를 엄마가 따랐고, 머피와 브랜든은 짝을 이뤄 행렬의 끝에 섰다. 둘은 드넓은 초원 자체가 낯설고 신기했다. 걷다 서다를 반복하더니 몇 분도 안 돼 대열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얘들아, 곧 비가 내릴 것 같아. 그 전에 숙소를 찾아야 하니까 얼른 따라와”


출발했을 때만 해도 맑았던 하늘이 어느새 어두워졌다. 공원에서 멀어지니 끝이 보이지 않는 초원과 닿았다. 눈앞에 보이는 건, 풀이 무성한 대지뿐. 오르막길을 가다가 저 멀리 길옆에 놓인 옷가지가 어렴풋이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니 누워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배낭을 옆에 두고 곤히 잠이 들었다. 마치 집 안에 누워 있는 듯 편안하게. 인기척에 아저씨는 깨어났다.


“죄송해요, 저희 때문에……”


아빠는 놀라서 아저씨에게 사과했다.


“아뇨, 서늘한 바람이 불어서 깬걸요.”

“위클로우 웨이 여행 중이신가요? 저희는 이 길이 처음이라 잘 몰라서……”

“여행이라…… 뭐 여행이라 하면 여행이죠.”


아저씨는 일어나 앉으며, 이불로 사용한 겉옷을 다시 입었다.


“전 집을 잃었어요. 7살 난 어린 딸이 있는데, 어느 날 울고 들어와 사정을 들어보니 괴물이 자기를 괴롭힌다는 거예요. 궁금해서 다음 날 딸 옆에 몰래 숨어서 봤어요. 바로 노란 먼지 괴물이었어요.”

“노란 먼지 괴물이요??? 아저씨 저도 그 괴물 때문에 코가 이렇게 작아졌어요.”

“내 딸만 당한 게 아니었구나. 내 딸의 코를 비틀더라구. 화가 난 나머지 나는 연신 물을 뿌려 댔지. 괴물은 당황해서 잠시 저항하다가 도망가 버렸어.”


이야기를 듣던 아빠의 표정이 머쓱해졌다. 머피가 괴물에 대해 하소연할 때 도와주지 못한 게 마음에 걸려서일까. 머피는 지난 기억이 되살아났는지 아빠를 향해 뭔가를 말하려다가 참았다. 다시 아저씨에게 시선을 돌렸다.


“괴물은 다시 나타났었나요?”

“비바람의 여신을 데리고 와서는 우리 집을 몽땅 날려버렸어. 노란 먼지 괴물의 부인이야. 난 딸과 지하에 숨었지. 다치진 않았지만 모든 게 사라졌어.”

“헉, 진짜요?”

“너무 무서워서 텐트 하나 들고 이렇게 나왔어. 그런데 떠난 이후부터 마음이 편해지는 거야. 초원에 누워 있으니 집이 생각나질 않아. 두려움이 사라지니, 가려있던 평온함이 보이더라. 날 지켜주는 자연이 있어서 든든해.”


아저씨는 저 멀리 어딘가를 가리켰다. 거기엔 작은 텐트 하나가 있었다.


“우리 딸은 아직도 무서운지 텐트에서 나오질 못해. 여기가 좋지만 언제 또 노란 먼지 괴물이 나타날지 몰라.”


머피는 좀 더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갈 길이 멀어 지체할 수가 없었다. 아저씨는 우리에게 길을 설명해주었다. 좀 더 가면 산이 보이는데 그 산 중턱을 둘러 돌아가면 마을이 하나 있다고 알려주었다.

아저씨는 다시 누웠다. 발로 까딱까딱 박자를 맞추며, 정체 모를 노래를 흥얼거렸다. 텐트의 문이 열리고 꼬마 여자아이가 머리를 내밀었다. 머피의 가족이 손을 흔들자, 다시 들어갔다. 아저씨는 누워서 하늘의 구름을 세고 있었다.

같은 시각, 노란 먼지 괴물은 머피의 집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머피가 나오기만을 기다리는데 생각보다 조용해 창문으로 안을 살펴봤다. 평소와는 다른 기운을 느낀 괴물은 학교로 향했다. 학생들이 학교 정문에 많았지만, 머피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머피가 위클로우로 향하고 있는 걸 괴물은 알 수가 없었다. 롤리팝 맨은 아이들을 챙기다가 괴물을 발견했다.


“뭐 하러 여기 왔어!!!”

“나한테 신경 쓰지 마쇼.”

“머피는 여기 없으니 이제 오지도 마라!!!”


괴물은 어리둥절했다. 반신반의하며 다시 꼼꼼하게 머피를 찾아보는 데 있을 리가 없었다. 결국, 먼지를 내뿜으며 그곳을 떠났다. 아이들은 일제히 손으로 코를 막았다. 하늘은 점점 어두워졌다. 먹구름이 하늘을 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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