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비바람의 여신이 준 선물
아일랜드 여행동화 <위클로우의 파라다이스>
by 술빚는 여행자 신동호 Dec 10. 2019
“여기 봐봐. 옐로 맨이 아니야. 레드 맨이라고.”
두 갈림길 중 오른편 길에 빨간색으로 그려진 사람 모양의 표지판이 보였다. 색이 다르지 자세나 크기는 옐로 맨과 같았다. 위클로우 웨이의 시작점부터 옐로 맨을 따라 걸었다가 비바람의 여신이 헤집고 간 이후, 그 집중력을 잃었다.
“아마 산이라 빨간색으로 그렸을지도 몰라. 우리가 여태 놓치지 않고 잘 왔잖아.”
아빠는 이 길이 맞다 생각하고 다시 인원을 이끌었다. 하지만 브랜든은 인정하지 못했다. 한동안 따라가다가 뭔가 불길한 기운을 느꼈는지 왔던 길을 다시 가보기로 했다. 다른 가족들은 그런 브랜든을 눈치채지 못했다. 브랜든은 그렇게 한동안 혼자 반대로 걸었다.
아빠는 길을 걸을수록 걱정이 쌓였다.
‘이상하다. 산을 벗어나도 남을 시간인데……’
“어!! 다들 어디 간 거야?”
돌아보니 아무도 없었다. 비바람이 지난 곳에 안개가 자욱하게 껴서 시야를 가렸다. 전방 20m도 보이지 않았다. 아빠는 레드 맨 표지판 옆에서 잠시 일행을 기다리기로 했다. 땀이 식었다. 잠시 앉았을 뿐인데, 소름이 돋고 추위가 밀려왔다. 저 멀리 실루엣으로 머피를 업은 엄마가 보였다.
“브랜든이 없어졌어요. 머피는 지쳐서 걸을 수가 없데요. 이러다가 감기 걸려 열이 오를지도 몰라요.”
“여보, 따뜻한 차 챙겨 온 거 있지 않아?”
엄마는 비가 덜 젖은 땅에 매트를 깔고 머피를 눕혔다. 그러고는 보온병에 담긴 따뜻한 홍차를 내줬다. 모두 겉옷을 꺼내 체온을 유지했다. 엄마는 머피를 맡고, 아빠는 서둘러 브랜든을 찾으러 갔다.
비가 멎고, 안개가 더 짙어졌다. 안개 사이로 아빠의 모습이 보였지만, 브랜든은 보이지 않았다. 아빠는 머피의 상태를 엄마에게 물었다.
“머피는 좀 어때? 우리 얼른 짐 챙겨서 돌아가자. 브랜든을 찾아야 할 것 같애.”
“브랜든을 못 찾았어요? 머피야! 일어나봐.”
머피의 뺨에 물방울이 떨어졌다.
“아빠, 여기 어디야?”
“머피야, 괜찮아? 아빠가 얼마나 걱정했는데.”
“난 괜찮아. 그런데 브랜든은 못 찾았어?”
“그래서 말인데, 우리 돌아가야 할 것 같애.”
“얘는 도대체 어디로 간 거야?”
머피는 울먹였다. 기온이 내려가고 머피의 재채기가 잦아졌다. 얼굴은 눈물과 콧물로 범벅됐다. 엄마는 머피의 얼굴을 닦아주면서 핫팩을 쥐어줬다. 아빠는 엄마의 배낭을 대신 꾸렸다. 산속은 세 가족의 목소리와 까마귀 울음소리뿐. 괴괴해서 더 불안했다. 머피가 울음을 멈췄다.
“무슨 소리가 들려요!!!”
“잘못 들은 거 아니니, 머피?”
“아…… 저…… 씨……”
머피는 숨을 죽이며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걸어갔다.
“브랜든 목소리예요. 아빠를 부르고 있어요.”
머피를 선두로, 엄마와 아빠가 따라갔다. 저 멀리 온몸이 흠뻑 젖은 브랜든이 보였다. 많이 지친 기색이지만, 머피의 가족을 발견하자 달려왔다.
“아저씨, 여기에요. 헉…… 헉……”
“네가 어떻게 여기서 오는 거니? 우선 옷부터 갈아입고 따뜻한 차 마시자.”
브랜든은 젖은 옷을 벗으며 말했다.
“뭔가 잘못된 길로 가는 것 같아 돌아갔었어요. 우리가 봤던 지도 표지판을 천천히 살펴보니, 레드 맨은 오른쪽 산 등산로를 알리는 표시였어요. 당연히 우리는 옐로 맨이 있는 왼쪽 길을 택했어야 했는데 말이죠. 아까 비바람의 여신이 붙어 있던 두 개의 산을 제멋대로 돌려놔서 헷갈렸나 봐요.”
“그래서 우리가 지금 다른 길에서 헤매고 있었던 거구나?”
“여기서 좀 더 가면 원래 우리가 지나갔던 지도 표지판과 갈림길이 나와요. 한 바퀴를 돈 셈이죠. 비바람의 여신이 파놓은 함정에 오른쪽 산을 한 바퀴 돌게 된 거예요.”
“어쩐지 뭔가 돈다는 기분이 들긴 했어. 평원이 나와야 하는데 말이야. 브랜든 니 덕분에 일을 해결했구나. 고마워.”
“먼저 멋대로 행동한 건 죄송해요. 비도 그쳤으니 다시 떠나요.”
비 온 뒤에 땅이 굳었다. 비바람의 여신으로 인해 일정이 꼬였지만, 오히려 모두가 단합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머피는 엄마의 도움으로 같이 걸었고, 아빠와 브랜든은 이후 일정을 이야기하며 앞서갔다. 먹구름은 걷혔지만, 날이 저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