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여행자로의 첫날밤

아일랜드 여행동화 <위클로우의 파라다이스>



위클로우12길게.jpg





오른쪽 산을 한 바퀴 돌아 원점에서 다시 시작했다. 이젠 옐로 맨을 확인하고 길을 걸었다. 빽빽한 큰 나무들이 올곧게 서 있었다. 웬만한 바람에는 흔들리지 않았다. 잎은 바늘 같아서 바람개비처럼 돌다가 바닥에 떨어졌다. 나무가 우거진 숲을 지나자 탁 트인 절경이 나타났다. 몸에서 긴장이 풀리니 배고픔이 전염됐다. 풍광은 아름답지만, 오늘 밤 머물 마을은 보이지 않았다.


“이렇게 젖은 신발로 걷게 되면 발바닥이 불어서 물집이 금방 잡혀. 그때는 진짜 못 걸을 수 있으니 먼저 신발과 양말부터 말리자.”


엄마의 주도로 잎이 없는 나뭇가지에 빨래를 널었다. 아침에 준비한 도시락을 펼쳤다. 채식 위주의 도시락은 엄마 앞으로, 나머지는 각자의 취향에 맞게 가져가 먹었다. 아빠는 샌드위치를 들고 일어났다. 다른 일행들이 누워서 쉬는 사이에 아빠는 좀 더 길을 걸었다. 몇 분 후, 다시 돌아와 가족들을 깨웠다.


“한 10분 거리에 우리가 오늘 밤 보낼 곳을 찾았어. 집은 아닌데 충분히 지낼 수 있을 만한 공간이야.”


아빠의 말에 세 사람은 널어놓은 옷과 먹다 남은 도시락 박스를 챙겼다. 얼마쯤 길을 걷자, 나무로 지은 헛 Hut이 나왔다. 여행자의 쉼터이자 숙소로써 머피의 가족에게는 최적의 장소였다. 헛에 가방을 던져놓고 저마다 걸터앉아 초원의 경계에 스며드는 노을을 바라봤다.


‘여행 오니 그동안 잊었던 걸 되찾는 기분이야.’


아빠는 과거를 회상했다. 여행자로서의 자신을. 딸의 부탁으로 떠난 여행이었지만, 그에게 오늘은 청년 시절을 돌아보게 했다.


“그런데 여기서 오늘 잘 수 있어요?”


헛이 익숙한 아빠와는 달리, 머피와 브랜든에게는 낯선 공간이었다. 온 가족이 누울 정도의 작은 공간 속에는 나름대로 볼거리가 있었다. 쓸고 닦을 수 있는 빗자루와 작은 대걸레, 그 위로 사물함이 보였다. 자물쇠는 열린 채로 걸려 있었다.


“우리 여기 뭐가 들어있나 보자!!!”


머피는 호기심이 생겼지만, 겁도 났다. 사물함 안이 어두워 보이지 않아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브랜든이 용기 내어 대신 사물함을 열었다. 실로 보물함 같았다.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보드게임, 다이제스트 과자, 컵라면, 때가 탄 피규어, 열쇠고리, 각국의 동전이 작은 함에서 쏟아졌다. 사물함 안쪽에는 작은 메시지가 적혀 있었다.


‘여러분, 필요한 물건이 있나요? 여기는 여행자의 물건을 교환하는 곳입니다. 필요한 물건을 가져다 쓰고, 본인의 물건으로 채우세요. 여행은 비우고 채우는 일상입니다.’


사물함에는 여행자의 물품뿐만 아니라 그들의 기록들도 담겨 있었다. 머피는 쪽지가 붙은 작은 크레파스를 집었다.


“이 크레파스는 당신을 지켜줄 거에요. 단, 필요할 때 한 번만 쓰세요.”


영험한 기운이 감돌았다. 머피와 브랜든은 어른들 몰래 크레파스를 챙겼다. 엄마가 다가오자, 머피는 배고프다며 관심을 돌렸다. 아빠는 예전 솜씨를 발휘하며 텐트 조립에 여념이 없었다. 브랜든은 아빠를 도왔다. 머피는 엄마를 도와 저녁 준비를 했다.





이전 11화11. 비바람의 여신이 준 선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