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그림자는 아빠를 닮았다

아일랜드 여행동화 <위클로우의 파라다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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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저귀는 아침 새소리에 머피가 먼저 깼다. 춥기는 했지만 온 가족이 한 텐트에서 옹기종기 모여 잤더니 생각보다 편했다. 머피와 브랜든은 밖에서 자는 첫날밤이라서 걱정했지만, 피곤함에 금세 잠들었다. 어제와는 사뭇 다른 맑은 날씨. 좀처럼 볼 수 없는 화창한 하늘에 머피는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오늘은 여행이 순탄할 것 같지 않니?”


엄마가 일어나 차를 끓이며 기분 좋게 말했다. 차 향기에 아빠와 브랜든도 일어나 떠날 채비를 갖췄다. 꽤 부지런해졌다. 브랜든이 먼저 헛 뒤쪽에 받아놓은 빗물로 세수를 했다. 첫날밤을 마을에서 보낼 생각에 엄마는 하루 치 끼니밖에 준비하지 못했다. 아침은 식빵과 우유, 홍차뿐이었다.


“엄마, 우유 줘.”

“머피, 아침에 우유 안 먹잖아.”

“그래도 빵에는 우유를 마셔야지.”


아빠는 지도를 펼쳤다. 현재의 위치에서 위클로우 까지는 그리 먼 거리는 아니었다. 어제와 같은 변수만 피한다면 오늘 마을에 도달할 가능성이 높다. 선천적으로 습기에 약했던 브랜든도 어제 하루의 경험으로 새사람이 됐다. 네 명 모두 전투력이 향상된 아침을 맞이했지만, 피곤함을 해결하기엔 하룻밤으로는 부족했다. 풀리지 않은 몸으로 둘째 날 여정을 시작했다. 앉은 채로 망부석이 되어 누구도 일어나지 않자, 아빠가 먼저 배낭을 들었다.


“자, 머피가 말한 위클로우에 도착하려면 부지런히 가야해.”


다시 펼쳐진 초원길. 비가 온 다음 날이라 땅은 진흙밭이 되었다. 산길에서는 말파리가 계속 윙윙거려서 괴롭히더니 이제는 양의 배설물이 문제였다. 머피와 브랜든은 겨우 마른 등산화가 더럽혀지는 게 싫었다.


“딱딱해진 똥은 밟아도 신발에 묻지 않는데, 이젠 달라붙네.”

“똥과 흙을 구별하지 못하겠어. 어떡하지?”


배설물이 없는 곳을 찾아 밟느라 온 가족이 춤추듯 길을 걷고 있었다.


“엄마, 나 좀 이상해. 아까 그 우유를 마시지 말았어야 했어.”

“왜, 배 아프니?”

“응, 그런 것 같아.”


위클로우 웨이는 특별히 화장실이 없었다. 광활한 초원에서 적당히 은폐된 곳이 화장실인 셈이다. 배설의 욕구가 생기면, 무언의 규칙처럼 행렬 뒤로 빠져 볼일을 해결했다.


“머피야, 휴지 줄 테니 일 보고 와”

“아냐, 엄마 좀 더 참을 수 있을 것 같아.”

“괜찮아, 아빠 보고 천천히 가라고 할 테니.”

“그럴까? 아냐 참을래.”

“왜, 브랜든 때문에 그래? 크크”

“엄마!!!”


뒤에서 오던 브랜든이 속도를 냈다. 그리고 머피의 배낭을 가로챘다.


“내가 선두에 갈 테니 이따 가방 찾으러 와. 무조건 천천히 와.”


브랜든은 양쪽 어깨에 하나씩 배낭을 걸쳐 메고 앞으로 나아갔다. 머피가 부끄러워할까봐 ‘작은 것, 큰 것’을 본인이 구별하지 못하게 천천히 오라고 당부까지 했다. 머피는 얼굴이 붉어질 틈도 없이 급하게 꽃밭으로 몸을 숨겼다.

급한 불이 꺼졌는지 머피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주변은 보라색 헤더 꽃이 만발했다. 바람에 따라 저마다의 리듬을 갖고 흔들리는데, 각본 없는 군무 같았다. 머피는 생각에 잠겼다.


‘불과 며칠 전만 해도 이런 광경을 볼 거라 상상도 하지 못했었는데……’


머피는 곧 대열에 합류했다. 전부 태양을 마주하고 걸었다. 머피는 아빠와 적당한 보폭을 맞춰서 따라갔다. 태양은 시간이 지날수록 일행의 머리 위로 올라왔다. 브랜든이 아빠의 그림자를 밟으려 하자, 머피가 살짝 밀쳤다.


“브랜든, 넌 아빠 말 잘 들어?”

“갑자기 무슨 얘기야?”

“오늘따라 아빠가 작아 보이네. 봐봐, 아빠 그림자가 아침보다 짧아졌어. 작아진 아빠를 보니 안쓰러워.”

“오호, 니가 걷는 동안 철들었구나?”

“아니 뭐 그렇다는 거지.”

“근데 잘 봐. 그림자는 작아졌지만, 아저씨의 키는 그대로잖아.”

“그렇지.”

“아무리 태양이 아저씨를 줄였다 늘렸다 해도 아저씨는 늘 그대로라고. 난 그런 아저씨가 정말 좋아.”

“사실 나도 그래.”


머피는 묵묵히 앞서 걷는 아빠가 자랑스러웠다.


‘이제 내가 그 짐을 나눌게요, 아빠’


영원할 것 같은 초원길 끝에 울타리가 쳐진 목장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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