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평생 내 뒷모습을 볼 수 없다. 도구나 남의 눈으로 확인 정도는 가능하다. 내 미래를 스스로의 통찰력으로 깨우칠 수 있지만, 신뢰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물을 수도 있다. 당신은 내가 알 수 없는 뒷모습의 표정을 보고 말해 줄 수 있으니까. 민주가 어젯밤에 내게 한 말이 아직도 둥둥 떠 다녔다. 내 미래를 커피와 술 중 어디에 맡길 것인가. 딱딱하게 얼어버린 난제를 한 번에 깨트릴 방도가 필요했다.
‘내가 일주일을 살면서 포기할 수 있는 게 뭘까?’
선택의 기로에서 나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이다. 커피와 술의 본질적인 고민보다 난센스 같은 물음이 오히려 적절했다. 좀 더 힘을 빼고 질문을 곱씹어보니 대답도 쉽게 나왔다. 이 질문을 도출하는 게 어렵지, 대답은 이미 내 생활 내면을 들여다보면 알 수 있었다. 커피는 내 미래 설계도에 맞는 부품이라 판단해 데려온 애였지만, 술은 이미 부품들이 내재된 기판 같은 존재였다. 이미 미래의 원동력이 될 전류가 흐르고 있었는데도 그걸 감지하지 못하다가 이제야 감전될 만큼 존재감을 확인했다. 결국 내 미래는 커피가 아닌 ‘술’로 결정했다.
다음 날 저녁, 카페에 일하러 온 난 출근하듯 오는 민주와 바 사이를 두고 앉았다. 그동안 커피보다 술이 어울린다고 말해도 대답 대신 웃기만 했던 내가, 다른 결정을 하고 민주를 만나니 새로운 궁금증에 앞뒤 재지 않고 질문들을 던졌다.
“나도 배울 수 있어?”
“가면 어떤 술 만드는 거야?”
“다음 수업은 언제야?”
“얼마나 배워야 졸업하는 건데?”
상담하듯 시작하다 채근하듯 쪼아대며 그녀를 달궜다. 새로운 목표가 생기면 실행하기 전 부산스럽게 관련 정보를 파는 습성이 있다. 커피는 다시 기호식품으로 내려앉았다. 마치 신흥종교에 새 신도가 된 양 민주의 입은 곧 내 미래를 알리는 종이 되었다. 술빚기 과정을 간증하는 그녀와 전도받는 나, 쉽사리 대화가 끝나지 않았다. 내가 아는 한국 술은 뭐가 있을까. 막걸리라면 난 장수막걸리 외에는 아는 정보가 없었다. 대학교 신입생 때 신촌 앞 유흥가에 <포석정>이란 주점이 있었는데(현재도 운영 중), 일인당 몇 천 원을 내면 막걸리를 무제한 마실 수 있었다. 포석정은 통일신라시대 때 왕과 신하들이 물길에 앉아 잔을 띄우며 마시던 연회 장소였다. 그 술자리 그림을 착안해 테이블에 물길을 내서 막걸리를 흐르게 하고 알아서 떠 마시는 시스템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위생관리 때문에 문제가 생길 수 있었지만, 그땐 개념도 없이 부어라 마셔라 하며 토하면서 마셨었다. 한 번은 술병을 얻어 1주일 간 앓아누웠었다. 그 이후 한동안 막걸리를 멀리했고, 대체제인 소주에 밀려 잘 마시지 않는 술로 밀려났다.
민주랑 함께 카페 문을 닫고 나왔다. 인사를 하고 헤어질 법한데, 그녀는 내게 집에 갈거냐며 물었다. 별일 없다고 하니, 가방을 내게 맡기고 잠시 사라졌다. 다시 나타났을 때 이전과 달라진 건, 손에 쥔 검은 봉지. 서로 떨어져 있었지만, 광장 쪽으로 방향을 가리키는 그녀의 수신호가 보였다.
“형, 12월인데 바람이 불지 않아 밖에 있을 만하다.”
다행스럽게 추위가 비껴간 밤, 헬로에이피엠 건물 앞 광장 계단에 앉자 검은 봉지 안의 내용물을 공개했다. 투명한 페트병에 담긴 흰색 음료(?)는 막걸리였다. 라벨에 적힌 ‘느린마을 막걸리’는 내가 그녀에게 물을 질문의 실마리가 되었다.
“느린마을 막걸리라고 들어봤어?”
“마셔보진 않았는데 본 적은 있어.”
장수막걸리는 막걸리의 대명사였다. 다양성의 범주에 속하지 않아, 막걸리라는 상위 카테고리에서 바로 연결된 보통명사였다. 맛에 기댄 만족감보다 존재 자체의 인지만으로도 대중의 니즈를 채운, 마치 보급품 같았다.
“형, 혹시 아스파탐이라고 들어봤어?”
“아니...... 그게 뭐야?”
배상면주가의 ‘느린마을 막걸리’는 장수막걸리보다 두 배 정도 비싸다. 그녀는 아스파탐을 첨가하지 않은 게 그 이유라고 설명했다. 합성 감미료 없이 빚어낸 막걸리여서 특유의 인공적인 맛이 없었다. 쌀 자체에서 나오는 단맛이 막걸리의 풍미를 완성했단다. 학습하며 마시는 술은 낯설지만, 흥미로웠다. 내가 아는 것과 네가 아는 것이 부딪히는 게 아니라 상호 흡수되니 술맛이 아니 나쁠 수가 없었다.
어느새 막걸리 두 통 모두 비웠다. 술은 항상 대화의 매개 역할로 시간이 ‘소비’되는 객체였는데, 지금은 시간을 ‘주도’하고 있었다. 이전까지 들었던 원곡도 좋았지만, 민주의 술 이야기로 변주된 편곡이 더 마음에 들었다. 술 빚는 노하우를 속성으로 전수받으며 선험적 지식을 쌓아갔다. 특히 날 설레게 한 말이 있었다.
“마시는 즐거움의 몇 배가 빚는 데 나올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