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 꼭꼭 눌러 빚어서 누룩이다







누룩은 우리나라 술의 브로커


우리 부모님은 중매를 통해 결혼하셨다. 지금처럼 결혼정보업체가 있던 시대도 아니다. 경직된 사회여서 연애결혼보다는 중매 혹은 마을 안에서 만남이 맺어졌다. 이모할머니 덕에 지금의 내가 세상의 빛을 볼 수 있었던 것이다.


뜬금없이 중매 이야기? 술을 배울 때 여러 가지 연상법을 활용했다. 술은 미생물이 만들어낸 작품이다. 문제 해결을 하려면 이론적 배경을 이해해야 하는데, 줄곧 문과생이라 스스로 ‘문과스런’ 방법으로 이과의 체계를 이해해야 했다.


20130116_191447.jpg 누룩을 빚을 때 모양을 잡아줄 누룩틀


술의 기본 공식은 <녹말→당→알코올>인데, 이런 화학적 변화가 이뤄지려면 발효제가 필요하다. 효소는 녹말을 잘게 분해해 당으로, 효모는 그 당분을 이용해 알코올을 만든다. 여기서 누룩은 효소와 효모 성분을 동시에 지닌 우리나라 술의 대표적인 발효제다. 공기 중에 떠다니는 천연효모로도 가능하지만, 시간도 오래 걸리고, 원하는 맛을 내기 어렵다.


처음 발효를 쉽게 받아들이려고 말도 안 되는 연애결혼(천연효모)과 중매결혼(누룩)을 연결시켰다. 누룩이 중간 중개인이 되어 술이 된다는, 지금 생각하면 낯 뜨거운 이해 공식이다. 발효의 기본을 이해하니까, 빵이나 김치의 전개과정에도 미생물이 개입한다는 걸 깨달았다. 신비한 발효의 세계.


“예전 할머니가 누른밥에 물과 누룩을 섞어 술을 만드셨는데, 처음에는 누룩이 모래인 줄 알았다니까”


오늘은 누룩을 만드는 날. 여기저기서 무용담이 터져 나왔다. 우리네 할머니들은 슈퍼우먼이셨던 것 같다. 술빚기 전설 속에 주인공은 꼭 ‘할머니’다. 나에게는 그런 흔한 에피소드도 없었다. 시골도 없을뿐더러 두 집안 모두 술과는 거리가 멀었다. 참 재미없는 집안이라는 걸 대학 이후에 알았다. 바꿔 말하면, 평생 향토적 무드 없이 보낸 서울깍쟁이는 이제야 전통 물에 발을 담가 누구보다 즐기고 싶었다.






20130116_191437.jpg 물에 불린 통밀을 제분기로 가는 과정



밟을수록 단단해진다


“훌륭한 술은 좋은 누룩에서 나옵니다”


누룩이 뭐길래. 작업대 위에는 물에 불린 통밀이 한가득 담겨 있었다. 누룩은 ‘빚는다’ 혹은 ‘밟는다’라고 말한다. 빚고 밟는 방법은 대략 이렇다. 먼저 거피 안에 밀가루가 나올 정도로 통밀을 분쇄기에 간다. 밀의 전체 무게에 약 30%의 물을 뿌려 혼합한 뒤 나무 누룩 틀 안에 방목천을 대고 혼합물을 채운다. 천의 끝을 잘 여며 바닥에 누룩 틀을 놓고 발뒤꿈치를 이용해 밟으면 완성된다.


20130116_192144.jpg 통밀을 갈아놓은 상태



보통 5~10분 정도 누룩을 밟는다. 그동안 여러 유형의 에피소드가 발생한다. 누룩을 성형하기 전까지 손으로 작업하고, 밟을 땐 바닥에 돗자리를 깔고 신발을 벗어 올라가는데, 이 상황을 예상하지 못한 수강생들의 탄성과 원망의 목소리가 들린다.


“신발 벗을 줄 알았으면 양말을 갈아 신고 오는 건데”
“누룩에서 발 냄새나는 거 아냐?”
“제 것도 같이 밟아주세요. 오늘 양말 상태가 좋지 않아서”


말은 저렇게 해도 대부분 신발을 벗고 비닐봉지로 발을 두른 채 누룩에 중력을 가한다. 노동요가 여기저기서 흘러나오고, 결과물이 궁금해 먼저 광목천을 열어 깨진 누룩을 확인하고 다시 만들기 시작하는 성급한 사람도 발생한다. 그 장면을 보고 함께 웃고는 타산지석 삼아 더 공을 들여 밟는다.


“난 왜 안 될까? 내 것 좀 밟아주세요”


체중이 나가는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의 누룩까지 밟아줬다. 같은 시간을 배우고 익혀도 실력이 특출 난 사람은 나오기 마련이다. 기술과 힘이 동시에 요구되는 남성들의 발이 바빴다. 내 하드웨어는 다른 사람들의 눈에 띄어 기술력과 상관없이 두레 활동에 투입됐다.


디딤발이 안정화되면서 수행의 길이 열렸다. 멍을 잡으며 일정한 속도로 움직이니 세상 시름과 걱정도 발아래로 떨어뜨려 밟아 없앨 수 있었다. 생각의 수전을 잠그고 시간을 흘려보내는 종목이 하나 늘었다. 좋은 누룩은 좋은 수행에서 나오는 것 같았다.



@brewer_di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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