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걸리는 막 걸러서 막걸리고, 누룩은 눌러 만든다고 해서 누룩이야”
“뭐야 장난하지 말고”
“맞다니까?”
잘 눌러 만든 누룩 두 개를 봉지에 싸서 무사히 집에 가져왔다. 혹시나 부서질까 봐 노심초사하며 가방에 넣지도 못하고 손바닥에 올려 모셔왔다. 하굣길 고사리손에 쥔 천 원 한 장으로 꽉 쥐면 죽을 것 같은 노란 병아리 두 마리를 흰 봉지에 넣어 가져올 때의 감정이 소환되었다.
교재를 펼쳐 메모한 대로 실행에 옮겼다. 당장 필요한 건 스티로폼 박스와 부재료로 사용할 솔잎. 아파트 재활용 분리수거함에서 가장 청결한 스티로폼 박스를 찾았다. 바로 옆 화단에 자라는 소나무에서 솔잎을 채집하면 되는데, 오염된 거라 주저했다가 당장 구할 수 없기에 몇 줌 뜯어 왔다. 스티로폼 박스는 소독하고 솔잎은 찬물에 담가 불순물을 제거했다.
<Tip> 누룩의 습기가 잘 날아가지 않도록 스티로폼 박스를 사용했고, 솔잎은 누룩에 좋은 곰팡이가 피는 것을 돕고 물과 누룩이 직접적으로 닿지 않게 하는 역할을 한다.
누룩은 하루아침에 완성되지 않는다. 최소 이주일 이상 한 달은 버텨줘야 성체를 이룬다. 스티로폼 안에 가만히 놔둬 알아서 크면 좋겠지만, 아니다. 애완동물과 식물, 금붕어까지 키웠던 지난날의 과오를 청산하기 위해서라도 애완 미생물은 잘 살려야 한다.
썩지 않게 이틀마다 누룩을 뒤집어 주고, 일주일 정도 지나면 습이 날아가게 스티로폼의 입구도 조금씩 열어줘야 한다. 처음에만 정성을 몰아줘도 탈이 난다. 나쁜 균은 공기 중에서 오는 게 아니라 내 무관심에서 시작됨을 명심하자.
“이게 뭐야? 저...... 저리 치워. 왜 들고 왔어?”
“내가 알아서 할 거니까, 내버려 둬”
“알아서 하긴 뭘 알아서 해? 털 날리고 알레르기 옮는다고. 베란다로 일단 치워. 개도 아니고 웬 토끼야?”
동생과 엄마와의 기싸움이 팽팽했다. 난 귀만 열어놓고 상황만 주시했다. 내 동생이 학교 친구가 분양해 준 토끼 한 마리를 집에 데려온 것이 본 사태의 발단이다. 본능이 이성을 이기지 못했다. 귀여워서 데려왔단다. 미술을 전공하는 동생은 야작(야간작업) 때문에 집에도 잘 들어오지 않는데, 본인이 뭘 알아서 한다는 말인지. 부모님은 원체 동물을 싫어하는 분이고. 고래 싸움에 새우 등이 터졌다. 결국 그 몫은 내게로 왔다.
“난 몰라. 네가 책임져. 제대하고 소일거리 하나 생겼네”
30개월(공군 550기 재임 기간) 동안 국가에 헌신은 처우는 박했다. 물론 딱히 하는 일도 없었다. 복학 시기도 아니고 구직보다는 얼빠진 민간인 초년생으로 시간의 수로를 열어 흘려보내는 게 일상이었으니 말이다. 뜻한 바는 아니었지만, 그렇게 말순이(토끼)는 내 첫 애완동물이 되었다.
그때와 비슷한 상황이 다시 전개됐다. 엄마는 누룩을 병균으로 비하하며 노발대발했다(지금도 외부에서 들어오면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이 환복과 손 씻기다). 10년 전, 동생에게 가한 등짝 스매싱이 회귀하는 순간이다. 차분하게 설명할 틈도 없었다. 엄마는 술을 일절 입에 대지 않아서, 누룩이란 존재는 전혀 모를뿐더러 알고 싶지도 않은 눈치였다.
“집에 이상한 벌레 들기 전에 얼른 버리고 와. 회사 그만두고 이상한 짓만 하고 있네”
결국 불씨는 최초의 시점으로 돌아갔다.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술을 배우러 다니는 게 아직도 못마땅하신 거다(현재도 유효하다). 여기서 맞불을 피우면 결국 큰 불이 나는 걸 알기에 조용히 눈에 띄지 않는 베란다 구석에다가 스티로폼 박스를 옮겨 놨다. 못다 핀 곰팡이의 전조가 아닐까 불안해졌다.
코이라는 관상어는 주변 환경에 맞게 자란다. 노는 물이 어디냐에 따라 크기가 결정된다. 작은 어항 속 코이는 5~8cm밖에 자라지 않지만, 강물에 방류하면 10배 이상의 크기로 성장한다. 이런 ‘코이의 법칙’은 사람도 주어진 환경에 맞게 본인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방증한다.
그렇다면 누룩은 환경에 지배를 받고 자랄까. 누룩 균은 일종의 곰팡이다. 곰팡이는 우리 몸에 해가 되는 균과 식용이 가능한 선한 곰팡이로 나뉜다. 그중 누룩곰팡이는 곡물의 당화를 촉진하는 역할을 한다.
곰팡이가 피는 환경을 기억해보자. 볕이 들지 않아 습도가 높은 지하실, 영화 ‘기생충’에서 기택의 가족이 사는 집안 곳곳. 인간의 기관지를 통해 들어와 해를 끼치는 미생물. 공기와 빛을 차단하고 습을 가두면 곰팡이가 생성된다. 습기와 곰팡이는 기생 관계로 서로에게 필요충분조건이다.
다음 날, 외출하고 들어오니 스티로폼 박스 입구가 열려 있었다. 문제는 그 안에 누룩의 일부가 부서져 소실되었다. 누군가의 소행인지는 짐작이 갔지만, 이차 피해를 막아보고자 현장 수습에만 매진했다. 애완동물처럼 감정을 바로바로 표현하지 않으니 답답함은 증폭됐다.
남 탓하기가 무섭게 내 탓으로 우를 범했다. 며칠간 집을 비운 사이에 누룩 한쪽이 썩기 시작했고, 이를 발견한 날은 손을 어디서부터 써야 할지 가늠할 수 없을 정도가 되어 버렸다. 하얗게 핀 곰팡이 포자가 신기했던 초반과는 달리, 2주 차에 접어든 현재 검은곰팡이의 세력 확장이 두드러졌다(누룩곰팡이는 주로 황국균이라 흰색, 노란색, 연두색 계열이며, 짙은 색일수록 안 좋은 곰팡이일 가능성이 높다).
실망감은 무력감으로 전이되어 무관심으로 점철되었고, 그런 날 본 엄마는 처분 의사를 물었다. 차마 보내줄 순 없었다. 실패의 기록도 기록이니까. 3주가 지났다. 완주의 기쁨보다는 얼른 진단을 받고 싶어서 소장님께 결과물을 보여드렸다.
있는 그대로의 평가를 받고 싶어서 겉에 싸인 포자도 털지 않았다. 증상은 어느 정도 예상되었다. 소장님의 집도가 시작됐고, 이곳저곳을 살펴보더니 한가운데를 갈랐다. 잘린 면의 상태를 보고 향을 맡아보시며 진단 결과를 말씀하셨다.
“아직 장내가 확 올라오진 않네요. 버릴 정도는 아니니까 이 누룩으로 술 한번 빚어보세요.”
희망 고문이라고, 동정 섞인 조언인 걸 왜 모르겠냐마는. 암세포가 아닌 게 어디냐. 혹시 몰라서 버리진 않았다. 여태 끌어온 시간이 아까워 마음이 허락하질 않았다. 곰팡이도 키운 정이 들었나 보다. 내 생애 첫 누룩이라 그런가. 잘 키워주지 못해 미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