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시간에는 각자 빈 페트병이나 술을 담아갈 용기 하나씩 가져오세요.”
노동력은 주기적으로 투입되었지만, 아직 손에 쥐어진 결과물이 없어서 술을 빚고 있다는 실감이 나지 않았던 지난 3주. 드디어 삼양주(세 번 빚은 술)를 다음 시간에 거른다고 한다. 삼양주는 보통 빚는 과정(1주)과 발효 과정(2주)이 3주 정도는 지나야 채주할 수 있다.
“도대체 언제 마실 수 있는 거야?”
“기다려봐. 술이 요리처럼 하루아침에 나오는 게 아니라......”
“술이 준비되면 안주는 우리가 세팅해놓을 테니.”
술을 만들어 마신다는 걸 알게 된 이후, 주당 지인들의 마음도 들썩였다. 새로운 술자리 모델이 고픈 사람들에게 직접 빚은 술은 군침 도는 아이템이기 때문이다. 자급자족해 만들어 소비하는 기호식품은 가히 매력적이다.
아일랜드 유학 시절, 가난한 유학생들이 돈을 아끼려고 담배를 직접 말아 피웠었다. 하지만 술은 직접 빚어 마시는 게 오히려 경제적이지 않다. 노동력을 제외하고 원가로만 계산해도 사서 마시는 술이 훨씬 효율적이다(물론 시중에 볼 수 있는 저가 막걸리와 비교했을 때 말이다).
술 거르는 날은 작은 잔칫날이다. 소장님이 이전 수업 시간에 공지사항을 내렸다. 다음 시간에 술을 거르면서 함께 나눌 안줏거리를 간단히 준비해달라고. 그 당시에는 일사불란하게 메뉴 리스트를 정하고 돈을 걷어 비용을 n분의 1로 깔끔하게 나누는 방식이 아닌, 적극성을 띤 몇 분들 위주로 중심 대화가 몇 번 오가면 잔치의 설계가 끝났다. 나를 포함한 막내 부류는 노동력을 보태면 충분했다.
드디어 술 거르는 날. 수업 시간 전부터 가져온 음식을 플레이팅하느라 분주했다. 소장님도 미리 나와 오늘의 분위기를 점검하셨다. 주방은 이미 인원 초과여서 빚은 술의 진척 상태를 확인하러 발효실에 들어갔다. 조별로 이름표가 붙은 항아리들이 출하를 목전에 두고 있었다. 이곳은 산부인과 인큐베이터 실 같았다.
같은 재료, 같은 비율, 같은 환경, 같은 시간대에 빚었다고 해도 다른 사람, 다른 체온, 다른 미생물, 다른 정성과 노력으로 4개조의 항아리는 전혀 다른 향과 맛을 품고 있다. 문과생이 보는 과학의 원리는 참으로 경이롭고 기이했다. 해당 숫자를 넣어 답이 나오는 공식도 아니고, 누르는 건반대로 만들어지는 멜로디가 아니어서 술빚기는 간간하면서 힘들지만 고결하고 거룩한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오늘 그 결과물이 탄생하는 날이다.
김치냉장고 광고 속 백종원 대표가 말했다. 김치 유산균이 발생하면서 나는 소리를 들어보라고. 술도 발효식품이다. 포도당이 효모를 만나면 알코올과 함께 이산화탄소가 배출된다. 술이 뽀글거리는 광경을 눈으로 확인하고 항아리에 귀를 갖다 대면 마치 소나기 내리는 소리가 청아하게 들린다. 균이 살아 있다는 증거다. 발효실 안 항아리의 뚜껑을 열었다. 소나기가 그치고 소강상태인 걸 보니 술이 거의 완성됐음을 알려준다.
보통 평균 25도의 실온 환경에서 2주 정도 놔두면 효소와 효모가 알아서 일한다. 그렇다고 양조사의 임무가 끝난 건 아니다. 미생물이 살기 편안한 환경을 조성해줘야 한다. 발효 초반, 산소와의 접촉을 위해 술을 저어준다. 그 이후에는 술 상태를 체크하는 이유 외에는 뚜껑을 개방하지 않는다. 산소는 효모에 의한 알코올 발효를 더디게 하기 때문이다.
“궁금하다고 자꾸 열어봐서 술이 잘 나올지 모르겠어.”
“난 한 번도 안 열어봤다고?”
“선생님은 우리 조 빚을 때도 잘 안 도와주셨잖아요?”
“아니 그건 너희들이 알아서 잘하니까. 나까지 손이 필요할까 싶었지.”
술이 다 되고 짤 시간이 돼서야, 서로 간 농담조로 아쉬움이나 불만 사항들을 토로했다. 분명 조원 중에서도 누군가의 품이 더 들고 덜 들고 했겠지만, 마지막 술이 잘 나올지 기대하는 건 모두 같은 마음이었다. 드디어 이론 수업이 끝나고, 소장님의 주도하에 움직이기 시작했다.
“자, 조별로 항아리 챙기시고, 거름망과 동도지(동쪽으로 뻗은 복숭아 나뭇가지) 가져가셔서 술 거르세요. 그리고 남은 지게미(술을 짜내고 난 남은 술 찌꺼기)는 한데 모아주세요.”
스테인리스 대야가 떨어져도 아무도 놀라지 않았다. 그 정도로 장내는 부산했다. 우리 조 조원들이 재료와 도구를 챙기는 동안 나는 항아리를 가져다 놓은 뒤 손을 씻고 알코올 소독까지 마쳤다. 보통 모든 조에서 힘깨나 쓰는 사람이 팔을 걷어 붙었다.
대야 위에 동도지를 고정하고 그 위에 입구를 벌린 거름망을 올린 뒤 항아리의 술덧을 망 안에 들이부었다. 깔끔이 주걱의 날을 세워 제설 작업하듯 항아리 안쪽 지나지 않은 곳 없이 훑은 뒤, 거름망의 입구를 끈으로 동여맨 후, 본격적으로 힘을 가해 술을 내렸다. 한 방울이라도 더 뽑아내려는 의지와 손의 악력이 빚어낸 기합 소리는 마치 경연장을 방불케 했다.
“아직 멀었어. 더 짜봐요.”
“선생님들 그러다가 망 찢어져요.”
악력이 다 된 1번이 우주의 기운을 2번에게 넘기더니, 고통은 결국 모든 조원의 몫이 되었다. 소젖에서 우유를 짜던 방식이 쓸모를 다 했는지, 이제는 양쪽을 맞잡아 비틀어본다. 조원 한 명이라도 아쉬움이 사라질 때까지 노동은 그칠 줄 몰랐다. 소장님의 중재로 하나둘 손에서 거름망을 놓았다.
한데 모은 술지게미는 동네 형들에게 삥뜯긴 아이처럼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여기에 소장님은 생수를 더 넣고 망 안의 술지게미를 몇 번 더 주물렀다가 걸러 묽은 막걸리를 만드셨다. 이 막걸리를 모든 사람이 마실 수 있게 잔에 따르셨다. 그동안 우리는 다른 할 일이 남았다.
원주(물에 희석하기 전 원래 술)의 배분이 시작됐다. 양이 많지 않아 더 민감할 수밖에 없었다. 2ℓ 페트병을 몇 개 가지고 오신 분도 계셨는데, 눈대중으로 봐도 잘해야 2ℓ 좀 더 가져갈 수 있을 양이었다. 이 와중에 뜻밖의 논쟁이 불거졌다.
“오늘 결석한 분도 챙겨드려야겠죠?”
“그...... 그래야겠죠?”
뭔가 반대의 의견이 나오길 바라는 눈치였다. 원주는 보통 16도 이상 되는 도수라서 시중에 마셔본 막걸리와는 어나 더 레벨의 독을 품고 있다. 색은 순백이지만, 내뿜는 알코올 기운은 강력했다. 맛을 본 사람들의 리액션으로 만만치 않다는 걸 방증할 수 있었다.
작은 파티가 진행되는 소란한 틈에서 벗어나 내 할당량을 채운 페트병을 들고 자리로 갔다. 채 2ℓ가 채워지지 않은 이 막걸리를 앞에 두고 여러 생각이 들락날락했다. 보통 투자한 노고에 비해 결과물은 초라하고 허무한데, 이것이 인생의 섭리라 대수롭지 않게 헛웃음으로 퉁(?)치면서 다음 스텝으로 넘어가는 걸 연습해왔다. 아직 그 수련이 부족한가 보다. 아쉬움이 취기에도 지워지지 않는 걸 보니. 빚은 술을 잔에 따라 마셨다. 나의 한 달이 목구멍으로 넘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