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 술은 머리가 아닌 감각으로 배우는 거야
2012년 10월, 술꾼들의 축제가 열렸다. 대한민국 막걸리 축제. 이런 축제를 이제 알았다니. 한눈에 보이는 부스들만 봐도 환희와 흥분의 세포가 일어났다. 인내는 순식간에 풍화, 침식되었고, 감각기관은 곧장 심장까지 이어져 성급하고 사나워졌다. 교감신경이여 진정하소서.
20대부터 관심사는 꾸준히 변주해왔다. 음악, 영화, 공연, 커피에 이어 현재는 ‘한국술’. 보통 관심사가 잉태하고 자양분을 얻는 곳은 방구석 모니터 앞. 기본적 소양을 갖췄다고 판단되면 오프라인으로 무대를 옮긴다(나름 절차를 중시하는 성격 탓에).
가장 굵직한 스케줄은 매년 비슷한 시기에 열리는 ‘축제’다. 그 축제만 전유해도 해당 지식 및 경험 그리고 인맥까지 부지불식간 성장하여 탑티어의 욕망을 꿈꾸게 된다. 술냄새가 진동하는 축제의 출구가 열렸다. 하지만 소양이고 뭐고 무작정 지인의 연락을 받고 왔다. 무대뽀로 파고들어 무지함을 무력화시킬 전략을 세웠다.
“형, 일산에서 막걸리 축제를 하는데 혹시 갈래?”
“언제 하는데?”
“주말에는 사람이 몰리니까 금요일 아침에 가자.”
“아침부터 마시자고?”
“왜 싫어?”
민주는 이 무렵부터 가영주연구소 수업을 듣고 있었다. 다양한 막걸리를 마셔봐야 우리술을 알 수 있다는 핑계 같은 명분을 들먹이며 축제 메이트로 날 꼬셨다. 나야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민주는 거기서 모든 걸 해결할 수 있으니, 맨몸으로 11시까지 정발산역에서 만나자고 했다.
일산 정발산역에서 민주와 조우했다. 특별한 지리적 정보가 없이도 군중 내비게이션을 따라 나오면, 큰 광장에 이미 모인 사람들과 하나가 된다. 작은 물방울이 모여 커진 큰 아치로 인해 광장의 산통은 심해졌다. 어리둥절할 틈도 없이 민주가 이끄는 대로 뒤를 따랐다.
#7-2. 술자리에서 술이 주연인 적이 없었지
“형, 먼저 여기서 잔을 받아야해. 보니까 보증금이 천원이고, 나중에 잔을 갖고 싶으면 그대로 챙겨가도 되는 것 같아.”
“오, 이런 시스템이구나?”
“근데 잔이 촌스럽다. 뭐 이게 중요한 건 아니니까. 따라와.”
촌스러움도 시대를 잘 타면 유행이 되고, 대세로 올라선다. 또 취하는 사람의 수준이 그 기품에 웃돌 정도면 고분고분하게 받아들인다. 레트로의 등장은 2012년과 거리가 멀지만, 축제를 참여하는 군중은 촌스러움을 운운할 연령대가 아니었다. ‘판이 벌어진다’는 표현이 그 당시를 말해줬다. 가만히 서 있는 내가 그들에게는 더 촌스러울지도 모른다.
그래도 우리는 원래 목적대로 ‘Drinking' 이전에 ’Tasting'의 절차를 잊지 않으려 했다. 나중에는 떨어져 움직여도 시작은 함께 부스를 전전했다. 과잉공급에 따른 선택장애의 해법은 순서대로 지나는 걸로 합의를 봤다. 술을 시음한다는 행위가 처음이라 잔을 들고 있는 폼도 자연스런 맛을 잃었다.
“형은 이 막걸리 어때?”
“난 다 맛있는 것 같애. 근데 이 막걸리 색깔 좀 봐. 나 노란색 막걸리는 처음 봐.”
“여기 라벨 뒤에 보면. 쌀, 물, 쌀입국, 아스파탐, 페닐알라닌, 효소, 젖산, 효모, 강황...그래 강황이 들어가서 노랗구만.”
“라벨도 처음 봐. 이런 정보가 맛을 보는데 도움이 되나? 아스파탐, 페닐알라닌. 뭐가 뭔지 모르겠다.”
“나도 아직 잘 몰라. 근데 형이랑 이렇게 마시면서 이야기하니까 좋다.”
술은 내게 최고의 아이스 브레이킹의 수단이라, 소통의 벽을 허물고 싶은 상대를 만나면 술을 권한다. 취중진담의 진위를 떠나서 술자리로 각자의 내면이 맞닿는 느낌이 좋다. 그런데 지금의 상황은 좀 다르다. 술이 주제가 되어 이야기를 주고받는다는 건 이 시간이 최초다. 흥미로워지려고 한다.
#7-3. 잘 알지도 못하면서
“니가 오자고 했으니까, 알아서 시켜봐.”
“오케이, 안주를 먼저 골라봐. 막걸리는 안주에 맞게 주문할테니.”
“뭐 잘 알고 하는 거지?”
그동안 친구들과 메뉴판을 보고 고민했던 건 ‘안주’였고, 주종은 주저 없이, 상의 없이 무조건 ‘소주’였다. 가끔 누군가가 소맥을 원하면 한 병 정도의 아량은 베풀어줬다. 애주가였지만, 주종의 스펙트럼은 워낙 좁다는 말이다.
한국술하면 ‘막걸리’란 등식이 성립할 정도로 대명사지만, 막걸리 외에도 약주(맑은술, 백화수복이나 청하 같은 술, 사실 엄밀히 따지면 주세법상 청주지만 편의상), 증류식 소주, 과실주(와인 등), 위스키(여기부터는 워낙 극소수라 소개에서 제외)와 같은 카테고리와 그에 해당하는 술도 어마무시하게 많다.
나도 배우기 전에는 몰랐다. 우리나라의 술은 약 2,000종이 넘는다. 산속의 약초마냥 소비자의 적극성이 따라야 어디 숨어 있을지 모르는 우리나라 술을 찾을 수 있는 구조였다. 함께 찾는 목소리가 커지니 유통채널도 늘어 포털사이트에 검색만 해도 배송이 가능한 시스템까지 진일보했다. 아무튼 난 빙산의 일각이라도 배웠다고, 마셔봤다고, 술에 무지한 친구들 앞에서 허세를 떨었다.
“닭볶음탕은 매운 국물이라 달달한 자희향 막걸리를 마셔야 해. 좀 비싼 것 같으면 지평으로 시작해도 되고.”
“막걸리 종류가 뭐가 이렇게 많아? 근데 왜케 비싸?”
소개하는 내 말투도 단언적이었고, 타자의 반응도 냉소적이었다. 전세는 나와 그렇지 않은 쪽으로 나뉘었다. 불현듯 난 한국술 업계를 대변했고, 친구들의 반문에 응대하며 혼자 수습하는 상황에 몰리기도 했다. 내가 무슨 한국술 전도사도 아니고, 도리어 부정적 말뚝을 박는 건 아닌지 노심초사했다.
구원투수로 등장할 술이 필요한 시간. 꽤 드라이한 막걸리로 알려진 ‘송명섭 막걸리’를 주문해 친구들에게 권했다. 한순간 호기심의 기운이 돌았지만, 미각의 표현은 금세 얼굴에 드러났고, 맛이 밍밍하다며 채 마시지도 않은 잔을 내려놨다. 되레 장수막걸리로 통일하자고 다른 잔을 요구했다.
“난 장수막걸리가 제일 맛있는 것 같은데. 다른 막걸리는 비싸고 잘 모르겠어. 아님 소주로 돌아가자”
괜히 내가 머쓱해졌다. 내가 빚은 술도 아닌데. 그렇다고 내 고집만 부릴 분위기도 아니고. 나침반을 잃어버린 향해사 마냥 내가 시킨(애들이 먹는 않는) 막걸리를 차례로 비워 없앴다. 주종이 장수막걸리로 바뀌면서 근황을 묻는 대화로 넘어갔다. 장수막걸리의 위대함을 새삼 깨달았다. 기호식품의 고집은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괜히 잘 알지도 못하면서 흔들어 댔나보다.
#7-4. 눈으로 마시는 술은 없다
한국 술을 취급하는 주점의 리스트를 확보하려면, 부합하는 기준을 설정하고 해당 영업장을 검색하는 방식을 고민해야 한다. 공인된 건 없다. 자체적으로 정하면 된다. 과거에 출입했던 민속주점과는 카테고리가 전혀 다르다. 한식과 우리나라 술을 페어링하는 움직임이 젊은 셰프를 중심으로 나오면서 흔히 말하는 ‘모던한 한식 주점’이 우후죽순 적으로 생겨났다.
검색 노하우는 별거 없다. 지역 막걸리 중에 한식 주점에서 가장 많이 판매하는 주종을 선택해 검색창에 넣어 도출된 주점들을 정리하면 된다. 나는 ‘송명섭 막걸리, 금정산성 막걸리, 복순도가 막걸리’ 이렇게 세 개의 막걸리로 ‘나만의 한식 주점 리스트’를 완성했다. 이 확보된 장소들을 지워가며 ‘도장 깨기’가 시작됐다.
먼저 친한 지인과 모임 장소로 한식 주점을 선택해 찾아갔다. 새로운 패러다임이라고 극찬해준 친구도 있었지만, 평소처럼 무덤덤하게 넘어가거나 오히려 익숙한 민속주점으로 가자는 말에 상처도 받아 언제부턴가 연구소 수강생으로 조직된 멤버들을 중심으로 업장을 돌아다녔다.
“막걸리 뭐 마실래? 나 예전부터 이거 마셔보고 싶었어.”
“난 그거 좀 별로. 근데 좀 더 숙성해서 마셔봤을 땐 다르더라.”
“난 달달이(막걸리)만 아니면 돼. 화장실 갔다 올게”
“이건 아스파탐 들어가서 난 패스. 없는 거 위주로 마시자.”
한국 술에 대한 배경지식이 많고 적음을 떠나서 모두 다 관심사이기에, 기준도 제각각이고 호불호도 다르다. 우리나라 술을 모르는 친구들과 마셨던 모임에서는 허세를 부려도 부담이 동반되지 않았으나, 여기서는 검증된 정보만을 추려서 대화에 인용했다. 그렇다고 냉소적인 반응을 일관한 동료도 없었고, 모른다고 무시하는 분위기는 더욱 아니었다. 아주 자연스러운 무드 속에서 일상 대화 안에 술 관련 주제가 녹여졌다.
보통 소주는 모든 잔이 채워지면 건배하자마자 능력껏 잔의 내용물을 비운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마지막에 ‘음미’라는 과정이 추가될 뿐이다. 맛볼 땐 몇 초간 정적이 흐른다. 술을 바로 식도로 넘기지 않고 입안에서 저글링도 해본다. 정적은 맛의 정의가 정립된 순서대로 발표하면서 깨진다.
“난 이 술 별로야.”
단답형으로 끝내는 동료도 있지만, 대부분 평가에 논리를 담는다. 이 술이 좋고 싫음의 이유를 공개하고 동의를 구하거나 제청 형식의 대답이 나오기도 한다. 세상에 나쁜 술은 거의 없지만, 때론 호불호가 아닌 잘못되거나 안 좋은 술도 골라낼 줄 알아야 한다. 내 자신의 합의가 끝나고 바로 공론화하는 용기가 필요한데 이걸로 내공을 견줄 수 있다. 내공은 선천적인 혀의 감각과 후천적인 경험치의 합으로 결정되는데, 후자의 노력으로 판가름 난다. 술을 빚는 입장에서 시음은 평생 수련해야 할 과제다. 핑계 같지만, 내가 술을 마시는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