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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부산을 흔드는 것들 - 부산이 변하고 있다(1)





나에게 첫 부산은 언제였던가. 20대 초반, 의외로 늦은 나이였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우연히 들어간 홍대 재머스 클럽에서 스피커를 뚫는 보컬에 매료되어 팬이 되었던 밴드 자우림. 그들의 대형 콘서트가 부산에서 열렸었다. 그 당시 내 신분은 공군 병장. 휴가 일정을 자우림 콘서트 날짜에 맞출 정도로 진심이었다. 그렇게 생애 첫 당도했던 부산은 자우림의 팬심에 가려 기억조차 나질 않는다.           



제대 전 말년 휴가 때 부산을 다시 찾았다. 시네마 키즈였던 그 당시 내 장래희망은 영화감독이었다. 영화 전공자가 아니어서 진로에 관한 노하우가 전무했던 시절. 관련 정보를 수집하면서 참여할 수 있는 행사는 무조건 찾아갔다. 제대 휴가에 맞춰 시작되었던 우리나라 영화제의 가장 큰 행사인 ‘부산국제영화제’. 우리나라 영화계 사람들은 누구나 만날 수 있을 것 같아 부산행 무궁화호에 몸을 실었다. 부산은 영화의 도시라는 말이 부산역 도착과 동시에 아우라로 증명되었다. 영화를 관람하려면 영화제에서 지정한 부산의 극장과 시민회관 등 주요 지역을 섭렵해야 했다. 대부분 행사장이 부산 핫플레이스(해운대, 남포동, 요트경기장, 센텀시티)와 인접해 있어서 영화 보기 전 부산을 공부했던 기억이 난다. 부산의 1, 2호선을 주야장천 왕복하면서 두 다리로 걸으며 부산을 익혔다. 이렇게 공식적인 나의 부산 여행은 2002년 늦가을에 이뤄졌다.           



부산에 도착하자마자 풍기는 특유의 내음을 부산 사람들은 모를 것이다. 흔히들 ‘바다 짠 내’라고 하는데, 확실히 서울보다 밀도감이 높았다. 단순히 후각에서만 정의 내린 향도 다르지만, 살아온 생활양식의 차이가 확연히 보였다. 먼저 몸이 반응했다. 소극적이고 방어적 태세로 돌변했다. ‘낯섦’으로 저려오는 문화 신경계의 둔화가 서울과 멀수록 더 심해졌다. 서울과 부산은 대지의 끝과 끝이라 물리적인 시차마저 감지됐다. 아직도 거리감을 느끼게 하는 부분이 사투리다. 공명이 큰 부산역 플랫폼에서부터 들리는 사투리는 그 억양이 일본어처럼 흡수됐다. 특히 어린아이들의 말투는 딕션도 뚜렷해서 신기할 정도로 귀에 쏙쏙 박혔다. 청각의 적응이 다소 시간이 필요하다면 미각으로 먼저 친해져보자. 부산은 오감 중에 미각에 가장 민감한 동네다. 미식문화는 관계의 긴장감도 풀어주고, 배려와 여유의 기운도 불어넣어 준다. 매번 부산의 첫인상에 당황하다가도 부산역 돼지국밥으로 모든 경계심이 풀렸던 것 같다.            



이제 더 이상 ‘부산=해운대 해수욕장’이란 공식은 대입하지 않길 바란다. 부산이란 도시를 더 탐닉하면 도시 속 매력에서 헤어 나오기 어렵다. 부산은 서울만큼 문화적으로 진화했다. 부산이 ‘영화의 도시’, ‘구도의 도시’로만 각인되기에는 알리고 싶은 문화상품이 무수히 많다. 도시를 통틀어 정의하기 어려울 정도로 지역구 별로 대표하는 상징들이 우후죽순 나타나고 있다. 다소 난개발이 문제가 되고 있지만, 뚜렷한 목적성을 갖고 좋은 안목으로 다져지는 공간도 존재한다. 부산이라는 좋은 원곡을 새로운 느낌으로 편곡한 지역을 찾아가 보자.     


   




서울에서 부산까지 비행기를 타고 올 생각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 당연히 대중교통이라면 기차 아니면 버스. 그런데 부산으로 떠나는 오전 시간에 15,000원 편도 부산행 티켓이 올라왔다. 비행시간도 45분 정도. 따라오는 부가서비스(저렴한 가격과 빠른 이동시간)도 거절할 이유가 없어 바로 예매했다. 새벽같이 김포공항에 도착해 입국 수속을 밟았다. 얼어 있는 항공기 바퀴를 해빙한다는 안내방송이 나오고 약 25분 정도 시간이 지체되었지만, 그 정도의 아량은 준비되어 있었다. 비행기가 이륙하고 구름 위 바깥세상을 감상하다 잠이 들 때 즈음 부산 김해공항에 도착했다. 오전 끼니를 해결할 곳은 비행 중에 이미 정해놨다. 늘 도착할 때처럼 부산의 첫 끼는 ‘국밥’. 김해공항에서 경전철을 타고 괘법르네시떼역에서 내렸다. 정차 역명만 보면 파리 한가운데로 공중부양 온 게 아닌가 싶었다. 역명은 괘법동과 역 근처에서 영업하는 쇼핑몰인 '르네시떼(Renécité)'의 합성어라고 한다. 역 이름 느낌을 이어가려면 파스타집을 가야 하지만, 괘법동에서 가장 문전성시를 이루는 <합천일류돼지국밥집> 앞에서 멈췄다. 점심시간 훨씬 전인데도 이미 웨이팅 행렬이었다. 이렇게까지 기다려야 하는 명분은 주문한 순대 국밥에서 찾을 수 있었다. 입안에서 질척대는 피순대는 ‘마끼’만하게 컸다. 탕 속에 올려진 다진 마늘은 크림 가득한 프라푸치노처럼 담뿍 쌓여 있어서 비주얼만 봐도 침샘이 아려왔다. 스리슬쩍 부산의 대표 소주를 주문했다.           




속이 실한 피순대로 만든 순대 국밥이 시그니처인 합천일류돼지국밥





국밥으로 포만감이 생겨 게으른 감이 올라오니 커피로 ‘회개’하자는 의견이 나왔다. ‘커피로 회개를 한다고?’ 그리스도의 율법에 따라 죄진 자를 사하여 주는 곳은 ‘부산 전포동’이었다. 전포동에는 특색 있는 카페가 모여 있다. 부산 중심가인 서면과 인접해 있고, 최근 카페거리가 형성되었다. 거리의 인기도를 반영한 듯, 코로나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전포동 카페거리 일대의 표준지 공시가격도 약 10% 올랐다고 한다. 카페거리에서 찾아갈 카페는 바로 <베르크 Werk>. 통유리로 보이는 1층은 로스팅 룸이며, 클럽 같이 어둑한 조도로 꾸며진 지하 1층이 주문 데스크다. 직원분이 내어준 커피는 테이블 좌석이 있는 2층에서 즐기면 된다. 성스럽고 햇살이 신비롭게 들어오는 2층 홀은 가히 종교적 색채가 강하다. 콘크리트가 주는 차가움과 기둥 사이로 비치는 햇살의 따뜻함이 교차되니 독일의 오래된 수도원이 연상되었다. 베르크의 빨간 로고와 배치되는 블루 계열의 인테리어는 지하의 어둠과 지상 2층의 광명과의 대조와도 연결된다. 마치 천국과 지옥처럼 말이다. 2층에서 마신 커피의 맛은 천국의 열쇠 마냥 은혜로웠다.             




독일의 오래된 수도원처럼 인테리어한 부산 전포동 베르크 Werk 카페.





부산의 확 트인 바다로 장소를 옮겨보기로 했다. 섬 한가운데에서 자생 중인 미술관을 알고 있나? <부산 현대미술관>은 을숙도 한복판에 설립되었다. 부산 시내에서 떨어진 외곽이고, 자연의 상징인 을숙도에 위치한 지리학적 관점에서 봐도 미술관에서 기획한 프로젝트는 클래식할 것 같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자연과 인간을 중심으로 탐구하면서, 뉴미디어를 주매체로 작품을 기획, 전시하고 있었다. 내가 관람한 첫 번째 전시는 이창진, 무진 형제, 송상희 세 작가의 미디어 작품전이었다. 이창진 작가의 <번개>. 작품의 주제와 의도를 차치하더라도, 리얼리티가 단연 훌륭했다. 눈앞에서 리얼한 번개를 목격했다. 자연이 만든 섭리를 인간이 이렇게 비슷하게 재현하다니 놀라웠다.  


    

<그 후, 그 뒤, Posteriority>. 바다로 흘러들어온 환경오염의 예후적 징조를 추적하고 기후 변화에 대한 반성적 각본을 통해 가까운 미래의 모습을 그려본 전시였다. 진단은 분명하지만 해결책은 불확실한 지금의 양상이 지속된다는 가정 속에서 해양 환경과 인류의 미래를 질문하고 있었다. 해양 쓰레기가 만들어 낸 신개념 해양 생태계는 전시된 수조 속에서 보여줬다. 굳이 설명을 하지 않아도 이해되는 부분이었다. 또한 해파리의 일생을 약 18분 정도 체험하는 영상이 있었다. 연극적 요소를 담은 참여형 체험 영상이라는 점에서 상당히 독특한 시간이었다. 마지막은 가상체험 시간. <수리솔>이란 작품을 감상했다. 체험 시간은 총 20분 정도 소요되며 VR을 이용하여 물속을 탐험했다. 바닷속 환경오염이 만든 미래 상황을 설정하여 다음 세대의 환경이 어떻게 변할 것인지 보여줬다.       



    

부산 현대미술관은 낙동강 하구의 을숙도에 위치한 부산광역시 공공미술관이다.



<수리솔>작품은 VR을 이용해 환경오염의 경각심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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