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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부산을 흔드는 것들 - 부산이 변하고 있다(2)

복합문화공간 <F1963>






초대형 월마트가 진지를 구축한 부산 망미동에 도착했다. 월마트 옆에 부산의 도시재생사업의 성공사례라고 꼽는 복합문화공간 <F1963>이 랜드마크 역할을 하고 있었다. 고려제강의 옛 수영 공장 자리에 폐공장을 완전히 폐쇄하지 않고 그 골격을 유지한 채 탈바꿈한 복합문화공간이었다. 2021년에 완공된 <F1963>는 고려제강의 설립연도 1963년을 따서 명명했으며, 1960년대 산업 헤리티지를 살려 문화적 자산으로 역사를 이었다는데 의미를 담았다. F1963 안에는 다양한 테넌트들이 입주해 있었다.        



  

F1963은 옛 공장 터에 전시, 공연장을 비롯해 서점, 전통주 판매장, 맥주 양조장, 카페, 도서관 등이 조성.




월마트 쪽 입구로 들어가면 가장 먼저 <부산 현대모터스튜디오> 전시관이 보인다. 현대자동차가 브랜드를 알리는 체험관을 차례로 짓고 있는데, 부산에 여섯 번째 체험관을 개관했다. 직접적인 자동차 홍보는 지양하면서 오롯이 디자인 콘텐츠만으로 공간을 채웠다. 기업의 비전을 디자인에 녹여내 기업 정체성을 느슨하게 풀어내고 있었다. 전시의 키워드는 <Do You Miss the Future?>. ‘미래가 그리웁니까’고 질문을 던졌다. 현재를 즐기는 나로서는 미래가 그립진 않았다. 오히려 과거가 그리울 뿐. 1층은 필로티 구조라서 통유리로 된 2층부터 본 전시관이 시작되었다. 필로티 공간을 이용해 1, 2층으로 연결된 작품도 있었다. 작품은 시각예술가, 엔지니어, 그래픽 디자이너, 건축가 등 다양한 사람들이 가까운 미래에 보일 도시의 모습을 본인들의 스타일로 선보였다. 그런데 작품들을 이해하기에는 허들이 높다 보니, 진중한 관찰과 숙고가 동반되어야 했다. 최근 등장하는 이론들을 설명하는 섹션에 오랜 시간을 투자하며 학습을 시도했으나, 해체된 멘탈로는 오래 견디지 못했다. 전시장 지붕은 고려제강 폐공장 형태를 살렸고, 바닥재도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에서 나온 볼트, 유리조각 같은 폐자재를 바탕으로 제작되었다고 한다. 부담없이 가벼운 느낌만으로 관람하길 권고한다.     



     

현대모터스튜디오 부산은 전시 공간 외에 1층 카페 바이 해비치, 2층 굿즈 숍, 4층 레스토랑 마이클 어반 팜 테이블 및 러닝 존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마치 온실 속에서 자라는 화초처럼 전면에서 비치는 햇살을 받으며 책을 읽을 수 있는 유리온실 도서관 <Green House & Book>. 햇살 좋은 봄에 광합성 받으며 명상하다가 잠시 눈도 붙이기 좋은 공간이었다. 얕은 수면에 비치는 풍광이 유독 아름다운 <F1963 달빛가든>을 걸어보자. 소소하게 산책하며 잊고 지냈던 여유로움을 누려보자.          





온실 속 도서관인 Green House & Book.



     

복순도가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스파클링 막걸리를 제조하는 양조장이다. 울산 울주군에 양조장을 설립한 복순도가는 이미 서울에 안테나숍을 개업해 대도시 소비자와의 접점을 넓혔다. 부산에도 사업 영역을 확장하여 <복순도가 F1963>을 열었다. 주류 판매점과 레스토랑을 동시에 운영하고 있다. 복순도가는 한국술 제조 스펙트럼을 확장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으며, 로컬리티를 디자인과 브랜딩에 녹여내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양조사의 입장에서 부럽고 화가 난다. 너무 잘 해서.          




울산 울주군에 양조장이 있는 복순도가 양조장. 복순도가 F1963는 주류 판매점이자 레스토랑으로 운영 중.



    

<F1963 석천홀>은 부산시와 고려제강이 협약을 맺고 폐공장을 활용해 건립한 전시장이자 공연장이다. 부산시는 이곳을 20년간 무상 사용하기로 했다. 재단법인 아름지기의 20주년 기념 특별전인 ‘CONNECTING 아름답게, 전통을 이어 일상으로’가 <F1963 석천홀>에서 열렸다. 아름지기는 의식주를 주제로 한 전통문화를 끊임없이 연구, 계승, 발전시켜 오면서 현대인에게 전통적인 미감을 전파해왔다. 전통을 잊지 않으면서, 현대적으로 변형, 재창조해 작품화하였다. 미학적인 부분과 실용성을 모두 고려한 고민을 토대로 최대한 간결하고 실용적으로 작품을 만들어냈다. 전시 관람을 넘어 구매의욕까지 불타게 만들었다. 전통이 구식이라는 편견을 불식시킬 뿐만 아니라, 새로운 트렌드라 해도 손색이 없었다. 특히, 술을 연구하는 나로서는 일상을 담는 그릇과 유기에 눈이 갈 수밖에 없었다. 용이성에서 뛰어난 작품들이 많아서 일상에 녹여 낼 수 있는 그림을 많이 그렸다. 전통의 레퍼런스 중에 꼭 필요한 요소만을 끄집어내어 현대 의식주에 제대로 접목시킨 전시회가 아니었나 싶다.          



 

F1963 석천홀은 부산시와 고려제강이 협약을 맺고 건립한 전시장이자 공연장이다.




F1963 석천홀 옆에는 갤러리가 입주 중이다. 서울 삼청동에도 운영 중인 <국제갤러리>가 부산에도 뿌리를 잇고 있다. ‘Life 삶’이란 주제로 전시를 한 문성식 작가님의 작품을 감상하고 왔다. 거칠고 무수하게 그은 필체로 사물을 다듬은 풍경에서 한국형 토속적임을 표현한 박수근 작가님의 다른 결, 같은 분위기를 느꼈다. 유화로 거칠게 덧칠하며 스크래치 한 부분에서 비슷한 감흥이 전달되었나 보다. 겸재 정선을 오마주한 섹션 3에서는 새로운 버전의 진경산수화를 볼 수 있었다. 섹션이 뒤로 갈수록 채색이 첨가되어 마치 향까지 풍기는 착각까지 일으켰다. 전체적으로 포근하고 안온한 작가님의 삶의 감성이 나에게 전달되었다.           




문성식 작가의 작품



        

유럽 맥주 투어를 하면서 체코를 세 번 방문했었다. 극히 일부의 체코 맥주를 마셔본 거겠지만, 체코의 맥주는 “시원하고 깔끔하다.”로 정리하고 싶었다. 플젠의 필스너우르켈 양조장의 순도 높은 필스너 맥주의 인상이 강한 것도 있지만, 유독 체코의 맥주가 탄산감이 좋고 갈증해소에 탁월해 이와 비슷한 맥주를 마시면 ‘체코스럽다’고 한동안 말하고 다녔다. 광안리에서 맥주 바를 운영하시는 지인 형님이 이곳을 추천했을 때도 난 그 체코스러움의 연장선을 기대했었다. 심지어 체코에서 마신 IPA도 묵직한 풍미를 아우르는 청량감이 탁월했었다. <프라하 993> 맥주 양조장도 F1963 복합문화공간 안에서 영업 중이다. 당연하겠지만, 체코의 수도원 맥주 양조 방식을 매뉴얼로 제조하고 있으며, 체코에서 최초로 맥주를 제조했다고 알려진 993년도를 상호에 새겼다. 대표와 수석 양조사 모두 체코 출신이며, 맥주의 재료인 몰트, 홉, 이스트, 발효에 필요한 발효 탱크 등 양조도구 모두 체코에서 공수했다고 한다. 부산의 물이 체코와 성질이 비슷하다고 하여 이곳에 뿌리를 내렸다. 현재 6년째 영업 중이다. 주문한 클래식 버거와 IPA가 테이블로 전달되었다. 짭조름한 수제 소고기 패티를 씹는 순간, 유럽의 환영이 들어와 잊었던 현지 리액션이 발현되었다. 청량하고 다양한 플레이버가 가득한 맥주는 버거의 간 세기와 상극이라 입안에서 상호보완을 이뤘다. 부산에 프라하가 제대로 물들었다.          




프라하 993은 체코 전통 수도원 방식으로 맥주를 제조하는 양조장이다.




복합문화공간 F1963는 여러 테넌트들이 공간을 나눠 사용하는데, 옛 고려제강의 흔적을 가장 많이 발견할 수 있는 곳이 바로 <테라로사 커피>다. 테라로사는 강릉에 본점이 있는 우리나라 최고의 커피 브랜드다. 공간의 미학과 식음 문화의 융합을 중시하는 테라로사의 기업 정신은 F1963 공간에서 그 정점을 찍었다. 고려제강의 역사에 테라로사를 제대로 입혔다. 입구에 와이어를 이용한 손몽주 작가의 설치 작품이 보이며, 실제 공장에서 사용했던 철판을 재활용하여 공간을 구성하였다. 크고 작은 부품들을 인테리어 장식으로 활용하여 공업적 분위기를 자아냈다. 워낙 홀이 넓긴 하지만, 큰 테이블 위주로 배치하여 공간 활용을 최대치로 높혔다. 확 트인 공간에서 식음하며 휴식하기 충분했다. 가장 진화된 테라로사 커피 전문점을 부산에서 만났다.      



     

옛 고려제강의 모습을 가장 많이 찾아 볼 수 있는 테라로사 커피 전문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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