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영주 | 영주의 여우에게 배우다

영주 국립공원야생생물보전원






영주라 하면 누구나 부석사와 소수서원을 떠올린다. 나 또한 그랬다. 첫 영주 여행을 계획하며 가장 설렜던 부분은 오랜 세월의 향내가 서린 부석사의 돌계단과 소수서원의 고요한 마당을 거닐 생각이었다. 그러나 여행을 마치고 나서 누군가 ‘영주에서 꼭 가봐야 할 곳이 어디냐’고 묻는다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국립공원야생생물보전원>을 이야기할 것이다. 처음 그 이름을 들었을 때만 해도, 솔직히 큰 기대는 없었다. 더운 여름날 굳이 그곳을 찾아야 할 이유도 크게 찾지 못했다. 다만 ‘여우를 볼 수 있다’는 말이 마음을 조금 흔들었다. 하지만 그곳에서 내가 만난 것은 단순히 한 마리의 여우가 아니라, 사라져가던 생명과 다시 연결되는 ‘나 자신’이었다.


프로그램은 사전 예약제로 운영된다. 우리는 마지막 회차에 예약을 했고, 시작 전 로비에서 직원의 제안으로 색칠놀이를 하게 되었다. 아이들을 위한 체험이었지만, 어른인 나도 어느새 몰입하고 있었다. 색연필을 쥔 손끝에서 저마다의 여우가 태어났다. 나는 어설픈 솜씨로 나만의 여우를 그리며 묘한 집중에 빠졌다. 그것은 단순한 그림이 아니라, 잊고 있던 생명의 감각을 되살리는 행위처럼 느껴졌다. 이 놀이의 취지가 그러한건가. 그 그림을 지금도 버리지 않고 사무실 벽에 걸어두었다. 그건 여행의 기념품이 아니라, ‘존재를 돌본 기억’이다.


‘국립공원야생생물보전원’은 국립공원 안의 야생생물을 지키고 되살리는 일을 맡고 있다. 2023년 명칭이 정비된 이후, 이곳은 본격적인 멸종위기종 복원사업의 중심이 되었다. 산양, 반달가슴곰, 여우—그 이름만으로도 신화적 생명들이 떠오른다. 그중에서도 영주에 자리한 중부보전센터는 토종 여우 복원의 거점이다. 경북 순흥면의 한적한 들녘 끝, 소백산의 품 안에 자리한 이곳에서는 ‘다시 돌아온 여우를 만나요’라는 생태체험 프로그램이 하루 세 차례 진행된다. 영상과 해설을 통해 여우의 복원 과정을 배우고, 실제로 보호 중인 여우 개체를 관찰한다. 동굴형 통로를 지나며 ‘여우의 세계’로 들어가게 되는 구조도 흥미롭다. 이 체험의 마지막 문장은 단 하나다. “이 여우들이 다시 숲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 말은 단순한 생태적 당위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귀환을 꿈꾸는 문장이었다.


해설사는 원래 초등학교 교사였다고 했다. 지금은 국립공원 직원이자 동시에 소설을 쓰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의 말투에는 교육자의 단단함과 작가의 서정이 함께 스며 있었다. 그는 여우의 복원을 설명하며 이렇게 말했다. “여우는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존재가 아니라, 우리가 잃어버린 생태계의 조각이에요.” 그러나 그의 마지막 고백이 더 오래 남았다. “농민들에게 여우는 농작물을 해치는 존재로 여겨져요. 그래서 저희는 수확철마다 농활에 나가요. 함께 땀 흘리며 조금씩 마음의 벽을 허무는 거죠. 하지만 저는 이 작업이 너무 고되요”. 공존이란 결국 이해와 노동의 반복 속에서만 자란다는 사실을, 나는 그날 배웠다.


해설사는 무더운 여름에는 여우를 보지 못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우리는 운이 좋았다. 해설사가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한 마리 여우가 햇살 속에서 우리를 바라보았다. 금빛 털이 빛에 반짝였고, 그 순간 나는 오래된 동화 속 장면을 다시 읽는 듯했다. 하지만 여우에게는 상처가 있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의 상처는 더 크다고 했다. 이 공간에 있는 여우는 야생에 나갔다가 다쳐서 돌아온 여우들이었다.

이 프로그램은 무료였다. 하지만 그 안에서 얻은 것은 어떤 비용으로도 환산할 수 없었다. 여우를 ‘본다’는 것은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라 존재를 향한 윤리적 응시였다. 여우는 다시 숲으로 돌아가지만, 나는 여전히 도시의 울타리 안에 있다. 그렇기에 나는 그들의 귀환을 응원하면서 동시에 나 자신의 귀향을 꿈꿨다. 여우의 시선 속에서 내 삶의 근원적인 방향을 배웠다.





20250822_153520.jpg
20250822_153614.jpg
20250822_153635.jpg
20250822_153715.jpg
20250822_153755.jpg
20250822_153759.jpg
20250822_155006.jpg
20250822_155013.jpg
20250822_155825.jpg
20250822_160109.jpg
20250822_161253.jpg
20250822_161309.jpg
20250822_161317.jpg
20250822_161326.jpg
20250822_161353.jpg
20250822_163831.jpg
20250822_163841.jpg
20250822_163943.jpg
20250822_164105.jpg
20250822_164235.jpg
20250822_164402.jpg
20250822_164449.jpg
20250822_164456.jpg
20250822_164640.jpg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일본 오사카 | 모퉁이에서 시작되는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