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사카 <COFFEE HOUSE KADO>
여행을 다니면서 나는 몇 가지 사소한 규칙을 갖게 되었다. 일상에서는 잘 챙기지 않으면서도, 여행 중에는 꼭 지키고 싶은 작은 의례들. 그중 하나가 ‘모닝커피’다. 이것은 ‘아침에 커피를 마셔야만 하루가 유쾌하다’는 의미의 습관이라기보다, ‘마음에 드는 한 잔으로 하루의 첫 단추를 단단히 채워두면 그날 여행은 웬만해서는 어긋나지 않는다’는 일종의 징크스에 가깝다. 포르투갈에서의 아침, 에그타르트와 커피가 그 도시를 지금도 잊지 못하게 만든 것처럼, 나에게 여행의 기억은 아침 커피와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대충 근처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커피를 한 잔 때우는 방식은 이 의례에 어울리지 않는다. 가능하면 이야기가 깃든 집, 주인의 손맛이 느껴지는 집, 동네의 시간이 조금 묻어나는 집. 그런 곳의 문을 여는 것이 목적이다.
오사카에 도착 후 다음 날 아침, 한국에서는 비가 내리고 있다던데 이곳 하늘은 파랗고 건조했다. 출근 시간의 거리를 천천히 걸었다. 숙소에서 걸어 1분도 안 되는 곳, 사거리 모퉁이에 오래된 간판이 하나 눈에 들어왔다. <COFFEE HOUSE KADO>. 멀리서 봐도 이 집은 ‘카페’라기보다는 ‘커피집’이라는 말이 더 어울렸다. 전주의 오래된 가맥집처럼, 오랜 시간 동네 사람들의 시선을 받아온 집만이 갖는 단단한 안심이 외관에서부터 흘러나왔다. 이름이 궁금해 찾아보니, ‘카도(角)’는 모퉁이를 뜻했다. 정말로 길이 꺾이는 모서리, 차와 사람이 동시에 스쳐 지나가는 그 모퉁이에 붙어 앉은 가게였다. 나는 조용히 문을 열고 조용히 안으로 들어갔다.
실내는 밖에서 본 것보다 더 오래되었고, 그래서 더 안락했다. 목재로 둘러친 벽, 서부풍 장식, 오래된 커피밀, 나무와 벽돌이 섞인 색감이 한 세대쯤 전의 공기를 그대로 봉인해둔 듯했다. 마치 문을 넘어 들어오는 순간 한 겹 낮은 시대에 내려앉은 기분이었다. 카운터 안쪽에는 허리가 조금 굽은 어르신 마스터가 서 있었다. “카도는 여기 있어야 카도지.” 마스터가 나지막이 웃으며 한 이 말이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그 말은 이 가게는 자리를 바꾸지 않는다는 선언이자 믿음처럼 들렸다. 그리고 나는 그 한마디에서 이 집이 이 동네의 시간을 모아두는 작은 항아리 같은 역할을 해왔음을, 설명 없이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 커피집은 1970년대 중반부터 이 자리를 지켜왔다고 한다. 반세기 가까운 시간 동안 같은 모퉁이, 같은 간판, 같은 리듬. 누군가는 그것을 낡음이라 부를지 모르지만, 동네는 이런 지속성을 통해서만 자신을 기억한다.
이 집은 아침 8시에 문을 열어 저녁 무렵까지, 동네 사람들이 오는 시간에 맞춰 묵묵히 커피를 내리고 샌드위치를 만든다. 메뉴판에 ‘오늘의 커피’, ‘카도 커피’ 같은 이름이 적혀 있을 뿐이고, 대개는 손님이 앉으면 마스터가 사이폰을 꺼내든다. 내가 이곳을 좋아하게 된 건 바로 그 장면 때문이다. 사이폰에 물을 올리고, 콩을 갈아 넣고, 기다리는 동안 무언가를 하지 않고 그냥 서 있는 마스터의 모습. 그것은 숙련된 장인의 정교한 손놀림이라기보다 연륜에 의해 몸에 붙은 루틴에 가까웠다. 몇십 년 동안 같은 시간에 같은 자리에 서서 같은 방식으로 커피를 내린 사람만이 갖는 느린 리듬. 그 속도가 이 집의 시계를 결정하고, 그 시계에 맞춰 동네가 드문드문 들어왔다 나가는 것이다.
잠시 뒤 나온 커피는 영롱하게 맑았다. 짙고 쓴맛이 먼저 도드라졌고, 산미는 거의 없었다. 사이폰 커피 특유의 투명한 질감 덕에 곱게 걸러낸 듯한 맛이 입안에 천천히 퍼졌다. 마치 오사카의 파란 하늘을 컵에 담아 농도를 높인 듯한, 그런 인상이었다. 마스터는 커피를 내려놓고는 아무렇지 않게 자신이 앉던 자리에 돌아가 조간신문을 펼쳤다. 그 순간, 실내에 남은 소리는 내 숨소리, 커피를 마시는 소리, 잔과 접시가 아주 작게 부딪히는 소리뿐이었다. 도시의 하루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 가장 깊은 고요가 머무는 시간이 그렇게 지나갔다.
돌이켜보면 이 집이 마음에 든 건 커피의 맛 때문이라기보다 ‘모서리’라는 장소성 때문이었던 것 같다. 모퉁이는 대체로 목적지가 아닌 곳이다. 사람들은 모퉁이를 지나가기 위해서만 거기를 돈다. 그런데 이 집은 그 지나가는 자리에 스스로를 놓고 ‘여기가 목적지여도 괜찮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이름이 카도(角)다. 어쩌면 마스터는 이 동네 사람들에게 방향을 알려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길 잃으면 모퉁이 카도로 오라’는 암묵의 약속처럼. 여행 중의 모닝커피도 내게는 그런 표식이었다. 오늘 하루가 어디로 흐를지 알 수 없을 때, 먼저 하나의 모서리에 다녀오는 것. 목적지 이전의 작은 목적지를 만드는 것. 그렇게 해야만 하루가 너무 멀리, 너무 빨리 나아가지 않는다.